1화. 좋아하는 일을 하겠습니다.
지긋지긋한 고 3 생활을 끝내고 그저 그런 대학에 경영학부에 들어갔다.
그 시절 나의 꿈은 대부분의 수험생이 그러하듯 일단 서울에서 대학을 가는 것.
그래서 성적에 맞추어 그저 그런 대학, 그냥 남들이 많이 가니까 대충 경영학부에 들어갔다.
너무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내기 대학생으로 1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나는 마치 절여 놓은 파김치 같은 모양새였다.
미팅도 재미없었고, 학교 축제는 더 재미없었고, 학교 동아리도 너무 재미없었다.
수업도 학사 경고 맞지 않을 만큼만 들었다.
하지만 학교는 누구보다 일찍 가서 늦게 돌아왔다.
그 긴 시간 나는 매일 학교 도서관 영상자료실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영화들을 보고 보고 또 보았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는 연극영화과가 있었고 그 덕분에 영상 자료실에는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일본영화까지 자료가 넘쳐났다.
지금이야 일본영화를 쉽게 보지만 그 당시는 아직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에는 개방되지 않았던 시대여서 불법 복제한 비디오테이프를 몰래 숨어 돌려보며 문화적 허기를 달래곤 했다.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화를 미친 듯이 좋아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밤 열두 시가 넘었지만, 그 시간부터 거실에 쪼그리고 앉아 졸면서도 매일 영화 한 편씩 보고 짧게 감상평을 쓰곤 했다.
그 시절, 영화는 고단한 수험생활의 꿈이었다.
눈 뜨고 꾸는 꿈.
나는 그저 그런 대학을 졸업하면 혼자 중국 북경 영화 학교로 유학을 가야지, 속으로 조용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나는 장예모, 첸카이거, 왕샤오슈아이 등 중국의 거장들의 영화에 깊이 빠져 있었고 그저 그런 대학을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그 멋진 감독이 졸업한 북경 영화 학교로 꼭 유학을 가겠다고 , 속으로 남몰래 결심을 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말이다.
어쩐지 말을 하는 순간 그냥 그 결심이 연기처럼 사라질 것 같기도 했고, 누군가는 비웃을 것 같기도 해서였다.
( 결국 나는 북경 영화 학교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5년 후, 20년 후 두 차례 왕샤오슈아이 감독과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다.)
대학교 2학년때는 LA에 사는 친척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되었는데, 나는 LA에 도착하자마자 그 유명한!! 할리우드 표지판을 보러 갔다.
그리고 그 순간 일생 경험해 본 적 없을 만큼 강하게 가슴이 뛰었다.
단 하루를 살아도 나는 영화를 위해 일을 하다가 죽겠어.
당장 서울로 돌아가면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과에 입학을 해야지.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속으로 주먹을 꼭 쥐며 다짐했다.
마침 그날 밤 내가 본 영화는 시네마 천국이었다.
영화 속에서 알베르토 아저씨는 영사실에 놀러 온 토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다.
언제나,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앞으로의 내 삶은 몽땅 가슴 뛰는 시간으로 채워나갈 것이라는 생각에 한국으로 올 때까지 잠도 잘 안 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회계학 시험을 보던 날, 그대로 강의실을 나와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해, 나는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대학의 영화과 신입생이 되었다.
말하자면 삼수생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학교에 들어가니 우리 과의 신입생 대부분이 학교를 자퇴하거나 졸업하고 왔기 때문에 나이가 제 각각이었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어떻게 합격을 한 거지? 생각이 들 만큼 소문대로 학교 전체에 끼가 넘치는 또라이들이 가득했다.
절여놓은 파김치 같던 나는 매일매일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지금의 내 신랑, 김해인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