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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라 Nov 15. 2024

<직업은 있지만 직장은 없습니다>

13화. 달콤한 나의 도시 episode2




연애시절, 김해인 씨는 운전을 하다가 나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내가 세상의 모든 길을 다 가도록 해줄게. 같이 살자.

뻔한 말이 아니고 빈말이 아니라서 나는  결혼을 결심했다.

고생안시킬께, 손에 물 안 묻게 해줄께, 이런 뻔한 말 따위 하는 사람이었으면 연애도 안 했을걸, 이야기하곤 하지만 결혼 이십 년 차, 가끔은 빈말과 뻔한 말이 고프다.

역시 연애할 때의 장점은 결혼 후 단점이라는 울 엄마의 말은 진리였던 것이다.



중국 촬영을 시작한 김해인 씨 덕분에 나는 프러포즈 때의 약속처럼 대만이나 홍콩 국경 남부지역부터 내몽고까지, 비행기 환승은 기본이고 미어터지는 버스, 무면허 택시등을 타고 중국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는 중국 원정단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오히려 더 좋아




그리고 첫 촬영이 혜주였던 덕분에 나의 첫 중국 이야기도 혜주에서 시작되었다.

혜주는 심천에서 버스를 타고 세 시간쯤 들어가는 도시인데 심천공항보다는 홍콩과 무척 가까워서 홍콩에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것이 훨씬 더 가깝다고들 했다.

히지만 나는 첫 중국 여행인만큼 중국 심천 공항에 내려 시외버스를 타기로 했다.

당시 나는 지구의 절반은 돌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혼자 배낭을 메고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이상하게 중국은 조금 겁이 났다. 영화나 뉴스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이렇게 무서운 거였다. 눈뜨고도 코베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런 기분덕분에? 아이없이 혼자서 홀가분하게 중국으로 떠날 수 있었다.

내가 심천행 비행기를 타던 날은 심천 신공항이 오픈하는 첫날이었다.

당일 오전 6시에 오픈한 공항에 오전 9시에 착륙했으니 거의 신 공항을 처음 이용한 이용객 중 하나였던 것이다. 완전 모든 것이 새로운 최첨단의 공항이었지만 신기하게 중국냄새가 났다.

그게 웃음이 나고 정감이 갔다.


영어가 한마디도 통하지 않아 손짓발짓, 필담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시외버스표를 끊고 택시를 타고, 이 과정에서 내가 아는 한자가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한자들이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내 걱정과 달리 내가 첫날 온몸으로 부딪힌 중국은 따뜻했다. 어쩐지 이름만 들으면 겁이 나는 공안들도 친절했다.

택시 안에서는 솔직히 긴장이 극에 달해서 약간의 위경련 증상까지 느껴졌던 나는 경험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어리석은 일인지 생각하며 김해인 씨가 촬영 중인 도시 혜주에 안전하게 도착을 했다.




두 달 만에 혜주에서 다시 만난 저녁, 김해인 씨는 길거리 노점상에서 국수와 칭다오 병맥주를 사 주었다.

오랜만에 만나 먹는 것이 노점상 국수라니.

한결같은 김해인 씨의 낭만에 나도 어느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혜주라는 소도시에서 전국구 드라마를 촬영한다는 사실에 촬영이 진행되는 동네에서는 설레는 흥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상점마다 달콤한 나의 도시 촬영 현수막이 붙어 있는 것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어쩐지 나를 이 도시가 현수막 휘날리며 환영해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걸어 다닐 때마다  최고치의 행복이 가슴에 꽉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혜주는 정말 말 그대로  달콤한 나의 도시가 되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었던 현수막





통역도 부서마다, 혹은 일대일로 있어서 촬영과 생활에 불편이 없어 보였다.

촬영 중에 길가에 차가 불법 주차되어 있어서 운전자를 찾는데 운전자를 못 찾으니 창공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현장 노동자들이 단체로 그 자동차를 번쩍 들어 올려 옮기는 모습을 보았다.

우와. 우와. 중국에서의 첫 촬영은 놀랄 일이 흘러넘쳤다.




당시 혜주에는 스타벅스가 2개 있었다.

차 문화가 발달해서인지 생각보다 커피를 사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커피가 생각나면 스타벅스로 달려갔다. 그래서인지 스타벅스에는 커피가 그리운 외국인들로 늘 꽉 차 있었다.

마지막 날 저녁, 촬영 나간 김해인 씨를 기다리며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고 있는데 등 뒤에서 은혜야! 부르는 소리가 났다.

한국인을 만난 적이 없는 이곳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다니!!

뒤돌아보니 내 뒤에는 10년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남자 동창이 서 있었다.

아.. 아.. 아.. 결혼 후 서울에서는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살았던 친구를 남의 나라에서 만나다니.

김해인 씨에게 문자로 남자 동창을 만났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이 세상에는 꿈같은 로맨스는 없으니 꿈 깨라는 독설을 날렸다.

타지에서 오랜만에 만난 이성동창이라니.

이거야말로 영화에서나 보던 로맨틱한 상황이 아닌가!

혜주는 이래저래 달콤한 나의 도시였던 것이다.


대기업의 공장들이 많은 혜주는 알고 보니 기업들이 출장으로 많이 찾아오는 도시였고 친구도 출장을 왔다고 했다. 혜주는 앞으로도 자주 출장을 와야 하는  도시인데 이 도시가 너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며 끊임없는 불만을 주르륵 늘어놓았다.

“마음을 쭈욱 펴고 돌아다녀봐,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도시야.

도시에 정이 붙으면 출장길도 즐거워질 거야.

어차피 회사돈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즐거우면 얼마나 좋아!”

나의 이야기에 친구는 무한긍정 김은혜는 여전하구나, 해인이는 좋겠네. 이야기를 했다.


동네친구여서 결혼 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만나 집 앞 포장마차에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곤 하던 그 친구는 그 사이 매뉴얼대로 사는 인간이 되어있었다.

어쩐지 그 친구와 대화를 하는 내내 앞 뒤가 꽉꽉 막혀 나갈 길이 없어진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깨달았다. 김해인과 이야기를 나누면 마치 내 마음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이 자유롭고 훨훨 날 수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그건 김해인 씨도 그랬겠지?

좋겠어. 김해인 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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