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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인 출판사, 나 홀로 대표 >

2화. 내 책이 세상에 나왔다

by 릴라

지난 금요일, 나의 첫 책이 세상에 나왔다.
보통은 인쇄소에서 책을 집으로 보내주지만, 나는 파주의 제본소로 직접 찾으러 갔다.

금요일 저녁 파주로 가는 길은 막히고 피곤했지만, 완성된 책이 마지막으로 머물던 곳을 내 눈으로 꼭 보고 싶었다.
‘이런 경로를 통해 세상에 나왔구나’, 그 순간을 직접 느끼고 싶었다.

인쇄소를 거쳐 제본까지 마친 500권의 책은 상자에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 파본을 우려해서인지 실제로 총 540권의 책이 나왔다.)
제본소의 기사님께서 상자들을 차에 조심스럽게 실어주셨다.
차에 실린 책 상자를 바라보며 뿌듯하고 설레는 마음, 동시에 부끄럽고 수줍은 마음이 뒤섞여 올라왔다.
이 책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겠지. 그리고 나의 가족들도.
특히 엄마와 어머님께 책을 보여드리는 상상을 하면 얼굴이 벌써 뜨거워졌다.
너무나 우리의 민낯을 드러낸 것 같아서.

내가 쓴 책 <직업은 있지만 직장은 없습니다>는 프리랜서 촬영감독 김해인 씨의 26년 촬영기를 관찰한 이야기다.
김해인씨는 나의 남편이고, 우리는 20년 차 부부다.
별일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하나하나 끄집어 올려보니 별일별일 다 겪으며 살아왔구나 싶었다.

정해진 출근도, 퇴근도 없고 , 월급도 연금도 , 휴가도 없는 삶은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자유와 불안 사이를 적당한 균형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 모든 일을 잘 지나올 수 있었던 건, 우리가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요란한 연애를 하고, 대학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결혼을 했다.
사랑하나 믿고 결혼한 우리는, 어느 순간 우리는 깊이 연결되어 연대하며 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엄마는 한 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큰 산이 무너지고 큰 물이 밀려와도 두 사람은 서로의 품 안에 있으므로 안심할 것이다.”
지나고 보니 우리가 정말 그리 살았구나, 지나온 날이 안심이 되었다.

그 이야기를 썼다. 특별하지만 평범한 이야기.
삶의 틈 속에서 작게 빛나는 순간들, 가족 안에서 스쳐가던 불안과 기쁨들.
그 모든 순간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려니, 마음이 무척 떨렸다.

책을 받은 날, 파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상암동에 살고 있는 엄마에게 제일 먼저 갔다.
엄마는 딸이 작가가 되었다며, 앞으로의 인생이 더 멋져진 것 같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스무 권 살게.”
“스무 권이나 뭐 하려고?”
“선물도 하고 싶고, 책꽂이에 열 권쯤 그냥 쭉 꽂아두고 싶어.”
엄마 마음은 충분히 이해됐지만, 열 권만 팔았다.

이번 책은 절대 선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무조건 제값에 팔고, 고마운 마음은 밥과 커피로 전하기로 했다.

두 번째 구매자는 우리 꼬맹이 주원이었다.
내가 책을 쓰는 동안,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던 주원이는 책 뒷면 ‘홍보’ 란에 이름을 올렸다.
독립출판의 기쁨이란 이런 것.
난처하고 당황스러운 일이 많은 만큼, 따라오는 기쁨은 맘껏 누려주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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