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책을 쓰는 동안, 내 문장이 너무 후지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마치 내 몸이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문장을 세상에 내놓아도 될까’ 하는 부끄러움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계속 그런 마음만 품고 있다면, 나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스물일곱 살.
김해인 씨(지금의 남편)가 대학을 졸업한 지 보름쯤 되었을 때, 우리는 결혼했다. 결혼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처음에는 부모님들은 많이 반대하셨다.
“어차피 너희 둘이 결혼하게 될 텐데 , 뭐라도 이룬 다음에 하는 게 낫지 않을까?”
“ 너무 어려서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야.”
그때 우리는 생각했다. 세상에 완벽한 ‘때’란 없다.
완벽한 순간만을 기다리다 보면, 세상이 끝나도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선 해보자. 조금씩 나아가며 천천히 그 완벽을 향해 걸어가 보자.
그런 마음으로 불완전하고 허술한 나의 첫 책을, 수줍게 세상에 내어놓았다.
이후북스에서 책이 팔리기 시작하자, 인디펍에 한 시간이라도 빨리 올리고 싶었던 조급함이 사라지고 조금 느긋해졌다.
'오픈 빨'이라는 게 있으니, 그 힘으로 이후북스에서 최대한 많은 독자들을 만나보고, 그다음에 더 큰 플랫폼으로 가고 싶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동네 서점들이 오래도록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 일종의 팬심이었다. 게다가 인디펍보다 공급률도 훨씬 좋다. 나도 좋고, 서점도 좋고. 그야말로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두 번째 입고는 주책필름이었다.
술과 책, 영화가 함께하는, 서점 겸 카페.
책을 쓰기 전부터, 책이 나오면 단 한 권이라도 꼭 입고하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공간이다.
입을 떼자마자, 주인 부부는 망설임 없이 흔쾌히 입고를 결정해 주었다.
내 추측이지만, 아마도 남편분이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게 아닐까 싶다.
토요일 저녁 8시, 입고가 결정되자마자 책을 포장해 들고 주책필름으로 달려갔다.
밤 9시, 따뜻하고 멋진 공간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놀랍게도 그곳의 손님들과 주인 모두가 내 책이 입고되는 순간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5년을 영화 현장에서 일하신 김해인 감독님께 꼭 이 박수를 전해주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 이렇게 따뜻한 환영 속에서 내 책이 들어가는 순간.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눈물이 핑 돌았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살았던 봉천동의 홀로 상점에도 입고가 결정되었다.
보통은 작가 개인과 거래하지 않는 곳이지만, 내가 봉천동에 살았다는 이야기만으로 흔쾌히 매입 입고를 해주셨다.
내 책 속에도 등장하는 동네, 봉천동. 십여 년을 살며 오랫동안 나는 ‘봉천댁’으로 불렸다.
세상 물정 모르던 나를 잘 품어주고, 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안아주던 고마운 동네.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걸었던 그 거리의 따뜻한 상점에 내 책이 놓이게 되었다.
서점을 찾아가는 길,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렇게 동화 같은 순간들이, 정말 존재하다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울 밖의 서점들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나는 서울, 강릉, 제주, 부산(혹은 포항), 이 네 곳에는 꼭 내 책을 입고하고 싶었다.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던 어느 오후, 길을 걷다가 강릉 윤슬서림에서 메일을 받았다.
“좁은 서점이라 신중하게 고민하느라 답장이 조금 늦었습니다.
최근에 영화 공작새를 봤는데, 너무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입고하고 싶습니다.”
나는 길 위에서 나도 모르게 “와~” 하고 소리를 내며 그 메일을 읽었고,
곧장 김해인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입고는 자기가 한 거야.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
드디어, 강릉에 갈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