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쇠 이름 乭釗
중국에도 없는 글자 乭
여린 새 모가지 돌을 얹고
굽신굽신
釗, 힘써 일하라
마당쇠 돌쇠 변강쇠가
양반님네 권력 증표
굽신거릴 수 만 있다면
뭘 해도 좋다
다만
똑똑해서는 아니 된다.
이 돌로국에 이방(異方)
나그네 하나, 둘 들어섰다
각기 머리에 짊어지게 할
돌을 하나씩 들었는데
산골(散骨), 유신(遺身) 피 묻은
동포의 머리통을 말린
그 돌 일지 모른다
손아귀 속
이마에 찍힌 낙인 지워
새로 새긴 그 돌 이름 敎였다
참으로 그럴듯한 윤기가 흐르는데
그저 맹물에 넣고 끓이기만 하여도
만 사람이 먹을 기름이 번지르르
흐를 듯 하였겠지
이 공포, 황금
들끓는 냄비 맹신하니
속으로 어찌 '나'를 찾으랴
돌로국에 들어온 교
일찍이 공자도 말하지 않았는가?
회(誨)!
너 그럴듯한 교리에 괴춤을 풀어
이미 가진 '나'를 버리지 말지니
그저 각기 아는 빛을 내어
서로를 비추어 줄 나름
빛이 없는 엉터리 教
말씀, 말씀들로
Stone Soup 지글지글 우리다
*공자는 생전 남을 가르치는 일에 싫증을 내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질색하였다.-생략
가르침에 관해 1인칭 화법으로 이야기할 때, 예컨대 '나는 가르침에 싫증 내는 일은 없다" 같은 경우 공자는 늘 '회'誨 자를 썼다. '훈'訓 자를 써도 될 것 같은데. 두 글자 다 '가르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1세기에 편찬된 사전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보면 '회'는 "빛을 비춰줌으로써" 가르친다(曉敎)는 뜻이고, '훈'은 "말로 이야기해 줌으로써' 가르친다(說敎)는 뜻이다. -안핑친 [공자평전] '가르친다는 일' 편 中.
*루쉰의 《故事新编-铸剑》에 삽화를 그린 陆燕生(1944年12月生于北京,现任北京鲁迅博物馆副研究员. 1981年 作品《泰山烟雨》获北京市美展优秀奖,作品《故事新编》参加中国美术馆纪念鲁迅诞辰100周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