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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Nov 20. 2024

호암미술관《니콜라스 파티: 더스트》전시 리뷰

고미술만을 다뤘던 호암미술관은 처음으로 동시대 작가의 전시를 선보였다. 바로 스위스 작가 니콜라스 파티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최대 규모의 서베이 전시  《더스트》이다.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한명인 니콜라스 파티는 이번전시를 통해 그의 대표작과 조각, 더불어 신작 회화 20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니콜라스 파티의 작품 전반을 다루는 대규모 서베이 전시라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전시전경, 사진:원정민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배치하고 구성하는데 많은 관여를 했다. 작가는 호암미술관의 전시실을 아치모양의 통로로 만들어 구분하고, 또 각층의 전시장들도 아치를 통해 잇고 있다. 특히 여러 개의 아치들은 일직선상에 놓이면 완전히 포개지며, 어느 지점에 서면 전시장의 끝과 끝을 한번에 볼 수 있게 했다. 또한 아치의 둥근 곡선은 작품의 형태와도 완전히 일치하여, 관람자들은 니콜라스 파티가 구현해낸 공간 속에서 작품을 느끼며 소요할 수 있게 했다.

니콜라스 파티, 해마, 리넨에 소프트 파스텔, 작가 및 하우저앤워스 제공, 2024, 사진:원정민


전시의 제목 《더스트》는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주요한 키워드이다. DUST는 먼지, 가루를 뜻하는 단어로, 니콜라스 파티 회화작업의 주재료인 파스텔을 떠올리게 한다. 가루로 된 안료를 물에 풀어서 굳힌 파스텔은 재료의 고유의 특성상 부드럽고 은은한 느낌이 난다. 여러 색을 지나치게 덧칠하면 탁하고 어두운 색감이 표출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특성 때문에 원색의 밝은 느낌을 잘 낸다는 특징이 있다. 파스텔을 주로 사용한 니콜라스 파티의 작업 역시 원색의 강렬함과 파스텔의 부드러움이 공존하며 오묘한 느낌을 준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 <해마>의 경우도 심해를 유영하는 해마의 모습을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했다., 푸른 바다로 추정  되는 배경은 일렁이는 물속의 해마의 잔영과 깊은 심해의 짙은 코발트 색을 부드럽게 이어준다. 이렇듯 작가의 작품은 파스텔의 부드러움과 강렬함을 조화롭게 어울어지게 해, 파스텔의 매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니콜라스 파티, 나무기둥, 벽에 소프트 파스텔, 작가제공, 2024 / 니콜라스 파티, 버섯이 있는 초상, 리넨에 소프트 파스텔, 개인소장, 2019, 사진: 원정민


작가는 2013년 스위스 바이델러 파운데이션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파스텔 초상 작품을 보고 매료되어 파스텔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미술사를 자신의 작업 세계의 영감을 위한 보고이자 아카이브로 활용했던 작가답게 파스텔화의 역사를 공부하여 미술사적 가치를 재조명했다. 미술사의 맥락에서 파스텔화는 18세기 유럽에서 한창 유행했다가 식어버렸다. 이탈리아 여성 미술가 로살바 카리에라가 로코코 시대 파스텔화 선구자로서 큰 부를 축적하였는데, 그에 따라 파스텔은 여성화가의 매체로 자리잡게 되었다. 여성이란 이유로 아카데미에서 정식수업을 받기 어려웠던 여성작가들에게 파스텔은 유용한 매체로 부상하였고, 그에 따라 파스텔은 진지한 매체가 아니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파티는 파스텔화에 대한 오해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꾸준히 파스텔화를 제작하였고, 지금은 그를 대표적 파스텔 작가로 떠올리게 한다.

(뒤)〈산〉, 2024, 벽에 소프트 파스텔, 350 x 800 cm, 작가 제공. ©니콜라스 파티 (앞) 〈금동 용두보당〉, 고려 10-11세기, 청동·도금, 104.3 x 20


또한 전시의 제목 《더스트》는 파스텔의 물성과 더불어 먼지처럼 쉽게 사라지는 영원 불멸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전시에만 존재하는 벽화가 그에 해당한다. 미술관 벽에 6주동안 직접 그린 거대한 파스텔 벽화는 전시 동안만 존재하고 사라질 예정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총 5점의 벽화를 그리며 노동집약적 시간을 가진 작가는 벽화의 일시성을 좋아한다고 한다. 캔버스에 담지 못하는 여러 많은 주제를 벽화에 담을 수 있고, 전시 공간에서의 수행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전시의 제목이자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벽화는 죽음, 소멸과 연계되어 먼지로 와서 먼지로 돌아가는 인생사를 느끼게 한다. 

(좌) 렘브란트 판 레인, 커튼이 있는 성가족, 1646년 / (우) 니콜라스 타티, 커튼(렘브란트 판 레인, 커튼이 있는 성가족), 파스텔지에 소프트 파스텔, 작가소장, 2021


작가가 그린 벽화 앞에는 <금동 용두보당>, <백자태호>, <묘지석> 등 리움미술관 소장 고미술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지금까지 고미술만을 전시를 해왔던 호암미술관에서 왜 동시대 작가를 다루는 지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현대미술작가 니콜라스 파티는 고미술과의 연계를 통해 전통을 재해석하고 현대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동굴>이라는 벽화 앞에는 <백자태호>가 놓여있다. 태호는 말 그대로 태를 담는 항아리를 일컫는다.  조선의 왕실과 사대부 계층이 자손을 낳으면 그 '태'를 항아리에 넣어 보관했다. 예로부터 태아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태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백자태호>는 생명성을 상징한다. 이 밖에도 <백자태호>는 오랫동안 고미술로서 보존되어왔고 앞으로도 보존되어 전시될 것으로 영원성을 상징한다. 반면 새롭게 만들어냈지만 사라질 벽화 작품을 태호와 병치하여 미래와 과거의 연결성을 만들어내고 생명의 시작과 예술의 탄생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냈다.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더스트>의 소멸성을 떠올린다면, 니콜라스 파티의 벽화와 고미술의 병치는 미래와 과거의 연결을 넘어서 지속과 소멸에 대한 사유까지 확장시킨다.


니콜라스 파티, 나무가 있는 세폭화, 동판과 나무에 유채, 좌대: 나무에 유채와 아크릴릭, 작가소장, 2023, 사진: 원정민

(좌) 니콜라스 파티, 복숭아가 있는 초상, 리넨에 소프트 파스텔, 작가 및 하우저앤워스 제공, 2024, 사진: 원정민 (우) 니콜라스 파티, 청자 주자가 있는 초상, 리넨에 소


작가가 이렇게 과거와 전통을 잇는 작업을 선보인 이유는 평소 미술사를 자신의 작업의 영감으로 삼고 끊임없이 공부해왔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술사 작업에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하며 미술사 공부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나무가 있는 세폭화> 처럼 중세시대 재단화의 형태로 작업을 하기도 하고 <커튼(렘브란트 판 레인, 커튼이 있는 성가족)>처럼 작품의 제목에 직접적으로 고전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작가의 태도는 한국에서 열린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졌다. 앞서 언급한 단순 고미술과 병치한 작업을 넘어서 <십장생도 10곡병>, 김홍도의 <군선도>의 장생과 불멸의 염원을 상징하는 여러 요소를 샘플링한 신작 초상 8점이 그에 해당된다. 니콜라스 파티는 복숭아, 학, 연꽃, 등 한국의 고미술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을 상상의 팔선(八仙)을 형상화한 초상화로 재해석하였다. 또한 <십장생도 10곡병>과 <군선도>는 전시장에 함께 전시되어있는데, 관람자들은 고미술과 외국인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초상작품들을 함께 보며 이색적이기도 익숙하기도 한 신기한 시각체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좌) 니콜라스 파티, 리넨에 소프트 파스텔, 작가 및 하우저앤워스, 2024 (우) 호암미술관 주변 전경, 사진: 원정민


이렇듯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많은 노력과 애정을 쏟았다. 호암미술관의 전경을 4계절로 표현한 연작도 그에 해당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전시 《더스트》는 호암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니콜라스 파티의 유일무이한 전시라고 생각된다. 특히나 이번 전시가 끝나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벽화의 희소성과 한국에만 있는 고미술과의 조합들 전시를 관람한 관람자들로 하여금 더욱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호암미술관에서 내년 1월 19일까지 만날 수 있다. 먼지처럼 흩어져 버리기 전에 니콜라스 파티의 작품을 실견할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출처 : 데일리아트 Daily Art(https://www.d-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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