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에서 내년 3월 30일까지 대표 연례전 2024 타이틀 매치 홍이현숙 vs 염지혜 《돌과 밤》을 개최한다. 올해로 11회를 맞는 타이틀 매치는 10년 만에 여성 작가 2인의 전시로 구성되었으며, 두 작가는 전 지구적 위기와 그에 대한 물질적, 신체적 감각을 바탕으로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전시는 신작 프로젝트 4점을 포함한 영상, 설치, 회화 등 총 35여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제목에서 ‘돌’은 재난과 위기에 대응하는 신체적이고 물질적인 연결감을, ‘밤’은 극단으로 치닫는 재난적 상황을 의미한다. 홍이현숙과 염지혜는 이 화두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독창적 시각 언어를 통해 연결성과 책임감을 탐구하며 관객과 소통한다.
홍이현숙, 돌을 통해 연대를 이야기하다
1층 전시실에서는 홍이현숙의 신작이 중심을 이룬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돌’을 주요 모티브로 삼아 민족과 국가,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연대의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계 곳곳의 갈등과 난민 문제를 조명하며, 재난 속에서도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영상 작품 <아미동 비석마을>(2024)이 소개된다.
또한, 홍이현숙은 서울의 상징적 바위인 인수봉을 모티브로 한 설치 작품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인수봉>(2024)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높이 10미터에 달하는 대규모 설치물로, 관객이 기후 위기와 비인간 생명체와의 관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작가는 “돌을 닦는 행위는 곧 ‘자기-만짐’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는 과정”이라며, 이를 통해 서로 얽혀 있는 존재들의 관계성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전시장 내 프로젝트 갤러리1에서는 이번 신작의 뿌리가 된 기존 작품 11점이 함께 전시된다. 이 영상 작품들은 돌을 매개로 한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을 물질적이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홍이현숙의 예술적 여정을 폭넓게 보여준다.
염지혜, 밤이 내포한 파국과 새로운 가능성
2층 전시실과 프로젝트 갤러리2에서는 염지혜의 신작들이 전시된다. 그녀는 팬데믹 동안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는 세계의 폭발적 가속과 그로 인한 소진, 그리고 파국의 징후를 작업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신작 <마지막 밤>(2024)과 <한낮의 징후>(2024)는 가속과 소진의 감각을 담아내며, 파국으로 내달리는 세계를 재조명한다. 염지혜는 기존에 사용하던 디지털 몽타주 대신 현장 촬영을 통해 영상 작품에 영화적 형식을 도입했다. 동시에 영상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책과 회화 작업을 통해 가속 대신 방향 전환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의 흐름을 제안한다. 염지혜는 작품을 통해 “가속의 결과가 실은 파국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암시하며, 관객에게 이러한 속도와 방향성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의 영문 제목인 'Fold the Time with the Ground(땅과 함께 시간을 접어)'는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홍이현숙은 땅과 시간을 접어 세계 곳곳의 소외된 이들을 감싸 안으며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염지혜는 파국을 지연시키고 탈피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돌과 밤》은 지구적 위기 속에서 예술이 어떤 응답 능력을 제안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두 작가가 제시하는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예술 세계는 관객에게 새로운 사유의 기회를 제공하며, 우리가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장이 될 것이다.
밤의 심연에서 돌로 쓰는 연대의 서사, 홍이현숙 vs 염지혜《돌과 밤》 < 전시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