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 7월, 파리는 다시 한 번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샤를 10세의 독재와 언론 탄압,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에 분노한 민중이 거리로 나섰다. 바리케이드가 세워졌고, 사흘 간의 치열한 격전 끝에 왕정은 무너졌다. 그리고 그 순간을 역사에 새긴 작품이 있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 1863)의 걸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들라크루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캔버스에 유채, 260x325cm , 루브르박물관
이 그림은 혁명의 정신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상징적 작품이다. 자유의 여신이 삼색기를 휘날리며 민중을 이끌고, 그 곁에는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함께한다. 그 중에서도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 한 인물이 있다. 허름한 복장의 소년. 그리고 그의 손에 든 권총.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부분. 작품 속 소년의 총
작은 손에 쥔 ‘플린트락 피스톨’
소년이 들고 있는 권총은 혁명의 정신,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를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이 권총은 당시 프랑스에서 사용되던 ‘플린트락 피스톨(Flintlock Pistol)’로 추정된다.
플린트락 피스톨 /출처: 무기, 사이언스 북스
부싯돌의 마찰을 이용해 화약을 점화하는 방식의 권총으로, 한 번 발사하면 재장전에 시간이 걸리는 비효율적인 무기였다. 플린트락 피스톨은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널리 사용된 개인 화기다. 격발 방식이 원시적이고 재장전에 시간이 걸렸지만, 당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무기 중 하나였다. 1830년 7월 혁명에서도 시민군이 사용했고,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 소년 역시 이 권총을 손에 쥐고 있다.
'플린트락 피스톨'과 '퍼커션 캡' 작동 방식 /출처: 무기의 세계사(NODE MEDIA)
라이플(장총)을 든 성인 남성들 사이에서, 소년은 손에 쥔 작은 무기를 들고 혁명의 대열에 뛰어든다. 그의 권총은 작기에, 역설적으로 더 큰 자유의 몸짓처럼 보인다.
혁명은 누구의 것인가?
1830년 7월 혁명은 부르주아 계급과 자유주의자들의 주도로 일어났지만, 거리에서 바리케이드를 쌓고 총을 들고 싸운 것은 민중이었다. 그 민중의 일부는 바로 소년들, 가난한 노동자 계층의 아이들이었다. 19세기 프랑스 거리에는 신문을 팔거나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들라크루아는 바로 그 현실을 포착했다.
소년이 들고 있는 플린트락 피스톨은 전투의 도구이자, 억압된 자들이 직접 자신의 권리를 찾아 나서려는 상징이다. 성인 남성들이 라이플을 들고 싸우는 가운데, 소년은 작은 무기라도 활용하며 최전선에 선다. 혁명의 냉혹한 현실이었다.
이후 플린트락 피스톨은 ‘퍼커션 캡 방식(약실 점화 방식)’으로 점차 대체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7월 혁명의 결과 성립된 7월 왕정이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통치로, 18년 뒤 2월 혁명으로 무너지듯이.
퍼커션 캡 피스톨 /출처: 무기, 사이언스 북스
한 소년, 그리고 혁명의 얼굴
소년의 모델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는 혁명 속에서 싸웠던 모든 무명의 시민들을 대표하는 존재다. 그의 손에 쥐어진 플린트락 피스톨은 1830년 7월 혁명의 진정한 얼굴이 아닐까? 자유를 위한 싸움에서, 때로는 작은 손이 큰 불꽃을 피운다. 들라크루아는 그 순간을 포착했고, 소년이 들고 있는 권총은 오늘날까지도 자유를 향한 열망을 상징하고 있다.
[미술 속 총 이야기 ③]'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 등장하는 소년은 어떤 권총을 들었나? < 미술일반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