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소운 Jul 20. 2023

밀과 보리가 자란다

번외/ 딱 내 노래

저는 공기에 떠다니는 이물질에 약합니다. 꽃가루, 풀, 나무... 먼지...등등. 그래서 매일 방콕에 실내에서만 시간을 보냅니다. 앞마당 잔디밭은 주차용이고, 뒷마당 호수는 관상용입니다. 사실 얼마전에 있었던 캐나다 산불 때문에도 저의 소중한 눈코입이 고생 꽤나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편지라도 가지러 밖에 나가면 이웃분들이 무척 반가워하시죠.


 "다행이다! 너 아직 살아있구나?"     


밖에 있는게 참 싫어요. 게다가 요즘, 정규 학기는 아니어도, 여름 학기동안 집 근처 학군에서 일을 합니다. 잠깐이지만 운동장도 나가구요. 아마 더운데 애들하고 놀다보니 힘들었는지, 목이 붓고 귀에도 약간의 통증이 생겼어요. 병원 갈까 하다가도 쉬면 낫는 것 같고 해서, 집에 있는 약으로 때우며 경과를 보는 중입니다. 저의 약통 안에는, 각종 알러지 약이 상시대기합니다. 왠만한 알러지로는 끄떡 안하도록..


요 며칠 왜이러나... 꽃피는 봄도 아니고, 추수하는 가을도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찾았습니다. 저의 노동요..를! 아이돌이나 신곡을 따라갈 형편 (!) 도 아니고, 스스로 창작 할 실력도 없기에, 어릴적 참 많이도 불렀던 동요를 있는 그대로,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제목하여, <밀과 보리가 자란다>... 다들 아시지요?


/밀과 보리가 자란다, 밀과 보리가 자란다, 밀과 보리가 자라는 것은 누구든지 알지요../


몰랐습니다. 그렇게 많은 노력과 노고와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바람타다 내려앉으면, 떨어지는 빗물이나 받아먹으며 알아서 쑥쑥 크는 줄 알았지요. 마치... 째끄만 아가를 낳아만 놓으면 숨쉬고 먹고 자고 하면서 때되면 훌렁 커버리듯이... 남의 집 애들은 그렇게 잘도 크는데 제 애들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동감하시죠??) 어찌나 손도 많이 가고, 그럼에도 뜻대로 안되는지..  


이쯤되니...

농사와 애키우기와 글쓰기의 공통점이 보입니다....!


다시 그 농부가 된 심정입니다. 참 많은 생각들을 뿌리고 심어서, 다독이고 먹이고, 키우고 다듬고... 매일같이 그 생각만 하면서 수확을 준비합니다. 학교 일은 그냥 일상이니까 하는 거고, 저의 글쓰기는요.. 마음이 더 가는 쪽이 본업이라면, 돈 안되는 이 글농사가 저의 본업입니다. 물론 시간도 몸도 부업에 더 많이 쓰고 있지만, 그건 생계를 위해 어쩔수 없는 걸로.. (아하하... 아니요, 슬프지 않습니다.. 절대로.)


성격 상.. 뭘 쓰고 다듬고 고치고 하는 꼼꼼한 스타일이 아니라서... 단편은 상대적으로 쉽게쉽게 한방에 휘리릭 써 올렸었는데요. 몇몇 가까우신 작가님들이 살며시 알려 주시곤 했었죠 - 어디 오타있어요.. ㅎ 아직도 있을거에요. 시작에서 마무리까지, 쉬지않고 한번에 구요, 일단 달려왔으니 뒤는 돌아보지 않구요. 또 보면 감정이 식고, 또또 보면 감정이 없어지거든요. 첫 기분대로, 브레이크 없이 써왔습니다.


그런데... 두둥

대본이라는 형식의 길고 긴 드라마를 쓰자니... 작가님들은 혹시 다들 알고 계셨나요?


이것이... 전편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전편에서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와.. 절반 넘어가니 제 뇌의 저장 용량이 딸리는게 느껴집니다. 등장인물이 몇배가 많아지고요, 사건도 꼬여야 하고, 그러다 극적 효과를 주며 뿅 하고 해결되어야 하는데... 물론 생전 처음 써보는 대본 -그것도 초(?)본이라 빈틈도 많고, 고칠것이 많다는 걸 각오했긴했지만, 앞에 쓴 걸 하나하나 기억해서 이어가야 한다는 게 숨어있는 덫이네요 - 저같은 초짜에게는 완전 지뢰밭에 떨어진 기분입니다 (흑)


그래도 이 힘든 글농사를 어찌어찌 9회까지 끌고오며 얻은 게 있다면,


첫째, 등장인물들의 성향이 뚜렷해졌습니다. 두리뭉실하게 대충 이런 사람이다, 나이, 학력, 가족 등 겉핥기 식으로만 분류했던 특징들이, 각자의 화법이나 표정, 동작들로 디테일해지고, 옆 사람과 확연히 다른 인물이 되어갑니다. 아마 초안 완성하고 교정 볼 때는, 더 많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래서들 수백번 수천번 고치고 고치고 하나봐요..)


둘째, 주연조연 말고도 '기타' 의 비중도 무시 못하네요. 큰 줄거리만 생각하고 자신있게 덤볐는데, 주변 풍경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 대화, 몸짓.. 구름, 해, 달.. 모든게 대본 속에 명시되어야 비로소 한 장면이 완성된다는 걸 늦게나마 발견했습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라도, 드라마를 더 열심히 봐야겠어요.. 열공!


세째 .. (이게 제일 기쁜 소식).. 저의 알러지는, 밀과 보리에는 악화 될지언정, 글농사에는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산불도, 풀쪼가리도.. 한톨도 들어오지 않는 저만의 요새에 꽁꽁 숨어, 행복한 글심기에 몰두하겠습니다. 한달 반 남은 여름 방학... 될까요? 한번 후루룩... 개학 전에 끝까지 촤라락 정리해놓고 싶어요. 그러고나면 틈틈히 교정 볼 수 있을것 같은데.


16편 모두를 수확하는 그날까지, 얼음 동동띄운 냉커피를 들이부으며 집중, 또 집중!     


근데, 그거 아세요?

밀과 보리가 자란다...에서요,

농부가 다 심고 나서, 발로 밟고 손뼉치고 사방을 둘러보는 거...

/친구를 기다려, 친구를 기다려. 한 사람만 나오세요, 저와 함께 춤 춰요../


끝도 안보이는 대본 쓴다고 혼자만 떠들자니 너무 허전합니다. 단편이나 간단한 수필 쓸 때는 대화도 하고 그랬잖아요, 아웅... 우리 그런 사이였는데..  


오늘은 작가님들이 그리워 번외 한번 써봤습니다. 길어도 읽어주시는 작가님들, 너무 길어 패스하지만 하트 꿍으로 응원해주시는 작가님들.. 제게는 큰 힘이 됩니다. 어깨 톡톡 격력해주시는 것 같아요. 비 쏟아지는 오늘 밤에도, 몇 씬 더 진도 나가보렵니다.


모두 화이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