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소운 Feb 21. 2024

짧은 2주

더 짧은 52년

직항이다. 운이 좋다.


가격이야 조금 차이 있겠지만, 하루 남기고 두 자리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소식 전하자마자 먼저 강아지를 돌봐주시겠다고 하는 동네 언니도, 등하교길에 들러 고양이를 들여다 보겠다는 아는 아이도 참 고마웠다. 대강 짐을 싸는 듯 아무거나 구겨넣었다. 제일 중요한 여권과 지갑. 어차피 고향 가는 길이니 이것만 있으면 걱정없다.


세월을 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반질반질 이름값을 하는 포르쉐에 올라앉아 편안히 공항으로 향했다. 돌아올 비행기 편도 알려줘야한다는 옆집 할아버지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와 배낭 둘을 나누어 맨다. 작은 캐리어 하나를 돌돌돌 밀며 정말 오랜만에 비행기에 올랐다. 2주다. 딱 2주만 있다가 돌아올거다..


자야할까.. 게임을 뒤적거린다. 잊고 있었다. 나는 원래, 모든 게임을 잘 한다... 왕년에 테트리스와 핵사로 오락실의 모든 이목을 끌기도 했던, 나름 베테랑이다... 근육이 바들바들 떨릴때까지, 왼팔 오른팔을 번갈아가며 기록을 갱신한다. 불이 꺼지고 코고는 소리가 들려도, 영화보던 아이가 지쳐 잠을 청해도, 나의 게임 머리는 도무지 멈추질 않는다.


도착했다. 버스로 가려는 찰라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찌어찌 딱 맞춰 공항에 와있다고.. 덕분에 한번 더, 고생없이 목적지까지 얹혀간다. 시끌벅적한 공항을 나와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초라한 변두리를 지난다. 몇년만의 방문인데 별로 반갑지 않다. 미세먼지인가 우중충한 하늘은 더 보기 싫다. 속도 탐지기 앞에서만 슬쩍 줄이는 척 하는 운전자도 마음에 들지않고, 한뼘 사이로 비집고 드는 선수들도 꼴보기 싫다.


25년... 한국을 너무 오래 떠났었나보다. 길은 당연히 모르고, 교통카드도 찍을 줄 모른다. 지하철이 두배로 늘었다면, 빌딩은 무한재생 복사+붙이기로 숨 쉴 틈 없다. 다행인지, 유행처럼 번졌다는 운동화와 통바지 차림에, 내 촌티나는 옷차림이 그다지 눈길을 끌지는 않는다. 그냥저냥, 섞여지낼수 있을것도 같다. 4살에 처음 와보고 다시 7년이 지나 두번째 방문인 아이는, 두리번두리번.. 두려움 반, 호기심 반.. 피로를 잊었다.


새로 오픈했다고 한다. 잘못하면 다른 지점으로 갈 뻔 했다. 알려주는 사람도, 방문하는 사람도, 별로 꼼꼼하지 못한 탓이다. 내 오랜 공백기를 챙겨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알아듣겠지.. 헤매더라도, 살던 곳인데 지가 알아서 찾아오겠지.. 나의 등장은 그런 것이었다. 그저 멀리 다른 나라에서 국경 넘어오는 게 중요할 뿐, 이 작은 나라에서 헤매는 건 관심거리가 아니다. 왔으니 되었다, 봤으니 되었다.. 이제 편히 보낼 수 있겠다.


이런 일로 오는게 아니었다. 이렇게 짧게 2주 있다 돌아갈 걸 피곤하게, 아깝게, 재미없게.. 짜증났다. 자리를 지키는 내내 화가 났다. 양복 입은 남자가 내게 말을 건다.

"동생 분도 한마디 하세요."  

귀가 제일 나중에 닫힌다.. 죽어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 열리건 닫히건, 소리가 들린다고 뜻을 알아들을 것도 아니고, 내 말을 듣는다고 답 할 것도 아니고..


화가 많이 나서, 슬프지 않았다. 좋은 남편, 아빠, 사위, 아들, 선생님.. 수많은 타이틀을 다 가지고 있던 오빠가 오십둘에 죽었다. 빌어먹을 심장마비. 개나 소나 심장마비... 술 끊으랬지..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마지막 화풀이를 꾹 참았다. 소용없으니까. 말해봐야 고치지 않을테니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말해봐야, 다른 사람의 흐느낌에 묻혀 귓구멍 근처에도 가지 않을테니 없는 말인 척, 그렇게 못되먹은 침묵이 더 나을 때가 있다.


고딩 대딩 두 조카가 제법 어른인 척 한다. 아빠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한참 어리지만, 자리에 누운 엄마를 챙기느라 괜찮은 척 한다. 사람 되라고 파무침을 잔뜩 올려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 였다. 고작 선생인 내가 한심하다. 봉투 척 내놓으며 애들은 내가 책임진다 큰 소리 칠 수 없는 그저그런, 고만고만한, 볼 것 없는 월급쟁이다. 50살 생일에 셀프 선물 할 무언가 - 필요하지도 않은 정말 '무언가' - 를 찾아 인터넷을 뒤지던 내가, 참 한심하다.


오늘도 톡을 한다. 전화는 아직 힘드신 모양이다. 밤사이 또 카톡이 와있다.

'사랑한다 우리 딸'

외동딸이 되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의 목소리를 듣는것도 슬퍼, 글자로 대신하신다. 귀찮게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힘들지 않게만.. 적당히 울고, 적당히 그리워하기를. 시간을 좀 드려야겠다. 본인 팔자가 세서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냈다 한탄하는 진심을 못 들은 척, 대꾸없이 딴짓을 했다.           


2주짜리 한국 방문은 정말 짧다. 생각해보면 52년도 짧다. 마음은 허전하지만, 똑같이 살아질거다. 그렇게 또 지나다보면, 새로운 어떤 것이 빈 자리를 채워주겠지. 14시간 비행기 안에서의 끊임없는 게임.. 팔이 아파 멈추면 그제야 흘러내리던 눈물. 나는 아직도 화가 난다. 그래서 어제도 티비를 틀었다. 화라도 나서 슬프지 않으려면, 아마 앞으로 한동안은 티비 앞에서 잠들어야 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참 예쁜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