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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운 Apr 10. 2024

극복

아직도 하는 중

"지금 학교에 계시겠네요, 따님!! 엄마가 잠이 안 와서 ㅠㅠㅠ"


한국 시간으로 밤 11시 40분. 팔십 되신 엄마가 카톡을 하셨습니다. 평생을 규칙적으로 사시는 빈틈없는 분이십니다. 9시면 잘 준비를 시작하죠. 정리하고, 씻고, 약 먹고.. 9시 반이면 자리에 들어 10시에는 꼭 주무셔야하시는 분. 지난 달에 소포로 보내드린 수면 유도제를 드셨지만,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왠만하면 누구 도움 청하시는 분이 아니기에, 얼른 전화를 드렸습니다. 일부러 실없는 농담을 하며, 결과적으로는 더 잠을 깨워드렸죠...!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닙니다. 제가 아는 제 어머니는, 드라마에서 보는 따뜻한 밥 한끼를 차려놓고 예쁜 우리 새끼 우쭈쭈하는 그런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니시니까요. 제가 기억하는 한국에서의 제 평생, 그리고 저의 부재 중에도 여전히 바깥 일에만 전념하셨기에.. 70 훨씬 넘어 정말정말 찐 은퇴를 하시기까지 제게는, '엄마'라기 보다는 능력 아주 좋은 '매니저' 같은 분이셨습니다.


똑똑하고 예리한, 본인 말이 법이고 진리인.. 그래서 학교보다 군대보다 더 어려운 곳이 집이었다면 믿으실까요? 야근, 특근, 출장.. 뭐가 되었든 평소보다 늦게 들어오시는 날은 두가지 이유에서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는 적당히 풀어지는 자유, 둘째는 한손에 들려있던 KFC 치킨. 그러나 늦은 시간에 귀가하셔도 그 날의 숙제와 문제집을 확인하셔야 직성이 풀리시던 분이라, 헛점 많던 두 살 위 오빠는 늘 전전긍긍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교육 수준이나 직업, 경제적인 면에서는 전혀 모자람이 없었지만, 대신 그만큼의 성과가 뒤따라야했습니다. 무려 40년 전 초등학교 시절 (저는 국민학교 세대입니다 ^^) 에 이미 온 동네 학원이라는 학원은 다 들린 후에야 집에 왔으니까요. 주산, 서예, 태권도, 독서, 수학, 미술, 피아노... 강남은 아니었지만 서울 한 복판이었고, 사실은 두 분의 귀가 시간에 맞춰야했거든요. 집에 있으면 논다고.. 기타 '돌봄'은 늘 할머니와 살림 해주시는 아주머니의 몫이었구요.    


그러나 어머니의 기획안대로 잘 성장한 저는 여기 이렇게 '뚝' 떨어져 남처럼 살고 있습니다. 벌써 20여년째 해외를 나돌고 있지요. 그리고 늘 부족하다, 안된다 하던 아들은 엄마 잔소리를 온 몸으로 부딪치며 살다가 두 달 전에 세상을 떴구요. 엄마 때문은 아니에요. 과체중에 고혈압 - 술, 고기 좋아하더니 정말 마지막 날에 삼겹살에 소주 먹고 심장마비로 갔습니다.


엄마가 왜 80년 루틴을 깨고 잠을 못 자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약을 박스 째 쌓아 놓아도, 지지고 볶던 아들과의 티격태격이 훨씬 더 좋은 보양식이었을 겁니다. 매년 가던 휴가였지만 올해는 하필,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녔다는 마지막 여행, 죽기 이틀전에 갑자기 찾아와 김치찌개 집에 가서 억지로 먹은 맛없는 점심 (엄마는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를 싫어하십니다), 나이 때문인지 숨이 차다며 환갑 전에 살이나 뺄까하던 시시껄렁한 농담.. (심장마비의 전초였을까요)


오빠와의 추억과 똑닮은 두 손자들에 쉽지않은 날들을 보내고 계실겁니다. 살림만 하던 언니의 경제사정도 걱정이고.. 아직 돈 들어갈 일이 많은 두 아이도 한숨의 이유 일 거구요. 많고 많은 생각들이 수면제를 이길만큼의 괴로움이 되어 매일 밤을 쳐들어 오겠죠. 50키로에서 1-2키로만 늘어도 악착같이 다이어트 하시던 분이, 이제는 체중이 줄어들까 걱정을 합니다. 근육이 빠져 가늘어진 다리에 키까지 쪼그라들어 옷도 헐렁해졌으니까요.     


이미 지난 수년간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백내장, 오십견, 갑상선을 수술하고도 벌써 두번이나 크게 넘어져 뼈가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몇년 전 까지도 아빠가 자꾸 넘어진다며 짜증 내시던 분이, 이제는 '노인성'을 인정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아빠도 오빠도 없는, 완전한 '혼자'십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늙음을 받아들이십니다. 매년 치매 검사를 하고, 매일 두뇌 게임을 하십니다. 마지막 자존심이라 응원은 하지만, 그 발버둥이 안스럽기도 합니다.    


작년만해도 여기 들어와 같이 살자는 말에 들은 체도 안하더니, 어제 국제 우편으로 필요한 서류와 사진을 보내셨다네요. 바로 들어오시겠다는 건 아니지만요 (친구들이 아직 많이 살아계시답니다... ^^;). 이번 주말이면 서류가 도착할겁니다. 하다 만 봄청소를 며칠 더 미루고 영주권 신청을 먼저 해드려야겠습니다. 아시죠? 청소만 하려 하면 어찌나 이렇게 많은 일들이 생기는지요. 이번에도 역시.. 이런 중요한 국제적 사안 (!) 에 과감히 걸레를 놓습니다...


수수료라도 청구해야겠죠? 평생 매니저로 살아오셨으니, 이제 남은 생은 저를 매니저로 삼으셔야 할거에요. 예전처럼 스케줄 빡세게 한번 짜 볼까봐요. 아.. 저는 페이가 달라 (US$) 라서 좀 비싼데 말이죠. 감당하시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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