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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규 Jan 28. 2021

#아들과함께새로움찾기_14

겨울이야기

승후가 제법 뛰어놀고 어느 정도의 추위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올 겨울, 제법 접한 눈 소식에 승후와 함께

마음 가득 청순한 입김을 온전히 담아보았다.

     

한파가 절정일 무렵

잠시 잦아든 바람을 뚫고 함박눈이 내린다.

나 또한 오랜만에 보는 함박눈이다.     

마음이 먼저 승후를 바라보고 이끈다.


“눈이 온다 승후야 우리 눈사람 만들러 나갈까?”

“으응!”     


여린 몸이 감당할 추위가 조금 걱정이긴 했지만

눈치없게 소복소복 쌓여만가는 눈과

동심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이내 곧 나갈 채비를 돕는다.

     

어느 곳 하나 성한 바람 불어와 닿지 않도록

한 겹 두 겹 세 겹 단단히 옷을 여민다.

    

손짓을 보아하니 장갑과 목도리를 찾는다.

엄지손가락을 넣어 벙어리장갑에 끼우고

예쁘게 감는 법은 원래 모르지만

최대한 따뜻하게 감쌀 수 있도록

목도리도 나름 둘둘 승후의 목을 감싸 본다.

     

집에 가득한 장난감을 뒤로할 만큼

아직 밖이 좋을 나이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전거와 자동차를 타며

밖에 나가기를 좋아했던 아이다.


나름 처음으로 추위 속에 돌진하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내적인 심한 갈등이 생기긴 했지만

추위보다는 경험이다!

흰 눈 속에서 뛰어노는 승후의 값진 호흡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래! 처음 보는 하얀 세상을 승후의 눈에 담아주자!

힘찬 결정을 심으며 단지 옆 놀이터로 나가본다.

 

난생처음 눈과 함께 뛰어노는 승후

누군가 먼저 남긴 발자국의 흔적에

내심 안도가 된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함박눈 사이사이의 공간이

누군가의 온기로 가득 매워져 있다.

늘 그렇듯  시끌벅적 가득 찬 함성으로

놀이터가 따뜻하다.     


걱정과는 다르게 오랜만에 내린 함박눈에

형, 누나들이 먼저 나와 길을 터주었다.     

태어나 처음 직접 맞아보는 눈이

제법 시릴 만도 한대

여기저기 뛰며 함박눈을 온 몸으로 쓸어 담는다.

눈은 전부다 내 거야!

손으로도 만져보고 발로도 꾸욱 꾹 만져보고

쌓인 눈을 모아도 보고

내리는 함박눈에 비친 승후의 모습이

눈처럼 예쁘다.   

  

눈이 오면 꼭 해보자 약속했었던

눈싸움을 직접 해본다.

눈을 모아 승후에게 던져보니

사내의 승부욕으로 복수를 한다.  

   

사내대장부의 눈싸움


고사리 손으로 있는 힘껏 나에게 던져진 눈.

눈 앞에 있는 나의 아들이

벌써 이렇게도 컸구나 하는 마음에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이 가슴에 맴돈다.   

  

태어나 처음 경험한 놀이를

아빠라는 존재가 함께 해줄 수 있어서

고맙고 또 고맙구나

     

아빠에게 웃어주고

아빠라는 존재를 사랑해주고

나는 그저 아주 작은 용기만 내어주었을 뿐인데

승후는 나에게 많은 울림으로 매번 보답을 해준다.

    

우리는 육아를 하며 사랑의 의미를 배워나간다.

아이가 성장하듯 부모도 함께

새로움으로 찾아오는  순간을  배운다. 

   

때론 화가 치밀어 힘에 부치는 상황도 여러 있지만

승후가 내어주는 웃음과 행복은

늘 한결같고 거부할 수 없다.  

   

승후라는 존재는

나에게 늘 고마운 존재이다.   


그 어떤 추위도 꽁꽁 막아주는 부모의 마음처럼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생각의 깊이를 재어볼 수 있는 작은 능력이 있으니
사랑의 마음이 더욱 단단해지도록
성장을 바라만 보지 말고 먼저 다가가 고마움을 표현하라
고마움은 더욱 사랑하며, 앞서서 더욱 매진하는 것이다.

펑펑 내리는 눈이 나에게 이야기를 전해온다.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수북이 마음에 내려와 깊은 울림을 주었다.




형아 누나들이

쌓아둔 눈사람을 뒤로하고 하나 둘 집으로 간다.


어느새 승후의 옷과 모자에도

하얀 눈이 겹겹이 쌓였다.     

서둘러 눈이 오면 꼭 해보자 약속했었던

눈사람을 만들어본다


바람이 점차 차가워지기에

서둘러 눈사람을 만들어 보여주니 흐뭇해한다.

눈코입은 승후가 장식하고

주위에 나뭇가지로 손을 만들어 보니

제법 눈사람다워졌다.     


아빠와 처음만든 눈사람


뒤를 돌아보니 주위에 승후와 나뿐이다.

누군가의 웃음과

누군가의 설렘으로 가득했던 발자국에 

새로운 눈이 내려와 앉고

주위  또한 휑한 바람이 분다.


따뜻하게 서로의 방식으로

온기를 전했던 친구들이 이내 그리워진다.     


“승후야 미끄럼틀을 타볼까?”

“야호!”


이왕 옷도 다 망가졌으니

시원하게 미끄럼틀을 타고 집에 들어가기로 한다.

눈 속에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겹으로 입힌 바지가

훌렁 내려앉을 것 만 같아 너무 귀엽다.


먼저 다가가 옷가지에 쌓인 눈과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잡아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즐겁게 놀고 있는 승후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저 순간은 오로지 승후만이 누릴 수 있는

온전한 승후의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눈과 혼연일체


마스크와 깊게 눌러쓴 모자,

흩날리는 눈발

눈만 빼꼼히 내디딘 채 타는 꿀 맛 같은 미끄럼틀.


미끄럼틀이 조금만 더 큰 것 이었다면

나라도 성큼 올라가 놀고 싶을 만큼

재미지게 타는 승후를 보니

결코 이 추위가 외롭지 않았다.

   

이제 들어가 씻고 잠을 잘 시간이다.


늦은 시간 내리는 눈에 급히 나가

정신없이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늘같이 따뜻하게 내리는 눈을

승후가 마음 깊이 간직했으면 좋겠다.


나 또한

내리는 눈이 전해준 다짐과 약속

옆에서 깊이 간직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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