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행
항소심 공판이 있기 전 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언니의 성장 배경과 현재 갖고 있는 망상장애의 심각성을 가족인 내가 정확히 알고 있음을 기재하고 속히 사회로 복귀하여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게 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고 나서 항소심 공판일이 되어 살면서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법정에 처음으로 가보았다. 아침에 이모를 만나서 법정으로 향했다. 기분이 참 이상했다. 언니 순서 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했기에 앞서 몇몇 미결수들이 자기 순서에 나와 변론을 하고 선고기일을 듣고서는 들어갔다. 나는 수갑도 차고 포승줄도 차고 나올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더라. 그냥 수의에 고무신만 신고 나왔다.
언니 순서가 되어서 언니가 나왔고 판사님은 집행유예가 몇 월까지인지 물어보셨다. 집행유예가 끝나기 전에 징역형 이상의 형벌을 받게 되면 집행이 유예되었던 6개월도 추가로 살아야 된다. 그래서 너무나도 절망스러웠고 여름 징역이 정말 고통스럽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본인이 죄를 지은 것을 어쩌겠나..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판사님께서 이유 없이 속행을 해주셨다. 양형조건의 변경이 없지만 재판을 한 달 뒤로 미뤄주신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데 내 탄원서를 읽으셨을까? 그게 영향을 미쳤을까? 아무튼 언니가 초범인 점과 여러 가지 상황을 참작해 주신 것 같았다. 상고심까지 진행하게 되면 그래도 집행유예 기간은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속행이라는 단어가 뭔지도 몰랐기에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변호사님께 상황을 여쭤보니 집행유예 기간 때문에 재판을 뒤로 미뤄주신 거라고 했다.
우리는 살면서 알게 모르게 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 언니도 이번일을 통해서 1심 국선변호사님과 2심 국선변호사님 두 분 다 너무 좋은 분이셨고 사선 변호사님 못지않게 열심히 변호해 주시려고 애써주셨다. 심지어 판사님까지도 정말 인간적이신 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언니도 본인이 뼈저리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 돌이킬 기회가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