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만 듣고도 목적지를 짐작하는 차
자동차가 그저 '탈 것(vehicle)'이던 시대가 갔다. 자율주행이라는 신기술이 등장되면서 자동차에는 운송수단 이외의 가능성이 부여되고 있다. 핸들과 기어 조작 등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면 사용자는 운전 중에도 자유롭고, 그만큼 자동차 안에서 많은 것을 실행할 수 있다. 이렇게 자동차의 역량이 달라지자 자동차 산업 역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지금까지의 자동차가 단순히 이동을 위한 '내연기관'이었다면, 미래의 자동차는 '전자제품'일 확률이 높다. 그것은 라디오, 녹음기, 오디오, 내비게이션 등 수많은 전자기기들이 스마트폰 하나에 모두 담기게 된 역사와 비슷할 것이다. 내 손 안에 스마트폰이 있다면, 이제 사용자에게 자동차는 모빌리티 '디바이스'에 가깝다.
지금보다 더 자율주행 시스템이 보편화된다면, 운전대에서 손을 놓고 집에 있는 아이와 화상 통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주차를 위해 지하 주차장을 뱅글뱅글 돌아다닐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딥러닝과 인공지능이 적용된 자동차는 운전자의 탑승시간, 말투만으로도 목적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자동차는 이미 실행 명령 없이도 '스스로' 운전자의 상태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미래자동차의 결정체로 불리는 이른바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의 시대가 이제 정말 멀지 않은 듯하다.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란 자동차 시스템에 인터넷, 통신 등의 IT 기술을 접목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량을 말한다. 흔히 자율주행차와 혼용되지만, 자율주행차는 커넥티드 카 단계로 가기 위한 중간 과정으로 커넥티드 카가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커넥티드 카는 자동차와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해 양방향 인터넷 서비스 등이 가능하며 그만큼 네트워킹 여부가 중요한 차량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반드시 자율주행 기능이 없어도 통신이 적용되어 있는 경우에는 커넥티드 카라고 볼 수 있다.
커넥티드 카는 실시간 길 안내, 음성 인공지능 통제 시스템, 음악 재생 등을 제공한다. 또한 스마트홈 등 사물인터넷을 통해 자택, 회사 등과 자동차 공간을 연계해 스마트시티를 구축하는데 일조한다. 특히 홈투카(Home to Car) 서비스는 집이나 혹은 차량 밖에서 인공지능(AI) 스피커를 이용해 차량의 기능을 원격 제어하는 기술을 뜻한다.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는 '블루링크'를 통해 커넥티드 카 내부에서 원격으로 집 안의 에어컨이나 히터를 작동시키는 등의 홈투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차량 탑승자의 컨디션을 확인하는 점도 커넥티드 카의 특징으로 꼽힌다. 커넥티드 카는 인공지능 등을 통해 운전자의 상황, 컨디션 등을 체크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운전자의 표정들을 파악하는 안면 인식 기술이 개발 중이다. 또한 자동차는 운전자의 컨디션에 따라 주행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다. 기아자동차는 커넥티드 카 전용 'UVO' 서비스를 제공해 차량 사고로 에어백이 펼쳐지는 경우 긴급 구난 센터로 해당 신호를 전송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커넥티드 카 시장, 선점 경쟁 치열
실제로 커넥티드 카 시장은 매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기관 맥킨지는 커넥티드 카 관련 시장 규모가 2030년 기준 1조 5000억 달러(약 1806조 원)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기존 완성차 기업 이외에도 커넥티드 시장에 참가하는 글로벌 대기업들도 많아진 상황이다. 구글과 완성차 기업 GM은 커넥티드 카 동맹을 맺는 등 다른 업계와의 협업으로 커넥티드 카 시장에서 기업의 잠재 가치를 키워가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주요 자동차 그룹인 현대자동차는 2022년까지 자체 커넥티드 카 서비스 가입자를 천만 명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또한최근 발표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커넥티드 카 사업과 관련해 삼성전자와 펌웨어 기술을 협업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펌웨어란 소프트웨어의 운영 체계를 무선으로 업데이트해 하드웨어를 개선하는 기술을 말한다. 펌웨어 기술은 커넥티드 카의 리콜 가능성을 줄이고 자율주행과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 등의 성능을 최상으로 유지해 줄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2016년 인수한 하만은 테슬라에도 기술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안정된 통신망을 필요로 하는 커넥티드 카의 특성상 통신 업계의 시장 선점 열기가 뜨겁다.세계 5G 이동통신 자동차협회(5G AA)에는 퀄컴, 화웨이 등의 제조사를 비롯해 BMW, 아우디 등의 완성차 기업과 이동통신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커넥티드 카 시장 육성을 위해 운전자가 없는 자율 주행 차량 구현에 필요한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안정적인 5G 환경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5G AA 참가기업인 SK텔레콤은 지난 11일 볼보자동차코리아와 '차량용 통합 인포테인먼트 서비스 기술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2017년부터 토요타자동차와 현재 최대통신기업 NTT이 5G 이동통신망을 기반으로 한 커넥티드 카·자율주행차 공동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미래차 커넥티드 카, 가능성은 무궁무진
한편 이러한 커넥티드 카들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프라이버시와 보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선을 통해 해킹이나 사이버 공격을 받은 차량은 급발진, 브레이크 오작동, 속도계 조작 등의 사고가 일어날 우려가 있다. 또한 통신사와 보험사, 보안업체, 자동차 부품 업체 등을 유기적으로 묶여 자동차라는 완제품과 별개로 커넥티드 카 시장 생태계를 함께 꾸려갈 필요성도 함께 제기된다. 앞서 언급한 업계 간의 경쟁-협업 구도 등이 장기적으로는 상생할 수 있는 탄력적인 시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넥티드 카 시대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가까운 미래에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커넥티드 카로 대체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딥러닝, 사물인터넷 등 기존에 우리가 접하는 새로운 기술들은 이미 커넥티드 카 안에 탑재되어 있다. 아마 멀지 않은 세상에서는 자율주행이 가능한 커넥티드 카를 '카카오택시' 부르듯 불러 이동하고, 이동하는 중에도 운전석에 앉아서 자유롭게 회의를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게다가 최근 전기차 등 미래산업 관련 정부 정책이 발표되면서 어느 때보다 미래차에 대한 관심이 드높은 상황이다. IT 업계에 불고 있는 '음성과 무선'이라는 트렌드는 과연 '전자제품'이 될지도 모를 커넥티드 카에도 무사히 안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