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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Aug 28. 2020

친환경-ICT 시대, 선박도 변화한다

순풍에 돛 단 듯 가보자



기술 발전은 흔히 '산업 혁명'의 역사로 불린다. 기술은 상상할 수 없던 일을 실현한다. 한때는 새로웠던 기술들도 언젠가는 점점 뒤로 물러나고 그렇게 또다른 기술의 필요성을 낳는다. 따라서 기술이란 숱한 시도와 실패 끝에 혁신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요즘 기계들은 직접 명령어를 입력하는 번거로움 없이 터치 몇 번으로 조작할 수 있다. 클라우드, 인공지능 등의 신기술이 등장한 이후에는 '무인'과 '무선'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도 했다. 이제 인류는 자율주행하는 전기차를 만들고, 우주로 쏘아 올린 로켓을 다시 지구에 착륙시킬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하늘과 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구 표면의 70.8%를 차지하는 바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은 어선, 화물선, 여객선 이외에도 해양을 탐사하고 자원을 채굴하는 특수작업선 등으로 분류된다. 몇 만 톤에 육박하는 거대한 선박들을 만들어서 움직이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올해 1월 1일부로 국제해사기구 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가 대기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IMO 2020' 규정을 시행하면서 바다 위에도 '친환경'은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과연 조선업계는 앞서가는 ICT 신기술과 친환경이라는 글로벌 이슈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170,000㎥ LNG-FSRU for Hoegh LNG/ 출처=현대중공업 공식 홈페이지




한국의 조선산업, LNG 운반선 이후가 관건


국제해사기구 IMO는 올해 초 대기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IMO 2020 규정'을 시행하기로 했다. 본 시행 요지에 따르면 향후 세계 선박들은 배출하는 황 함량 비중을 3.5%에서 0.5%로 낮춰야 한다. 따라서 선박들은 함량을 낮춰주는 설비를 선내에 추가로 장착하거나, 친환경연료(LNG)추진선 선박을 새로 발주해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등의 글로벌 대위기를 직면하면서 규정 실천이 그리 녹록한 상황은 아닌 듯 하다. 실제로 지난 5월 전세계 선박 보유량의 50%를 차지하는 유럽선주협회(ECSA) 회원 중 75%는 친환경 선박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거나 줄일 예정이라 밝힌 바 있다. 은행권 역시 초기 비용이 막대한 해양 관련 투자나 기업 대출 등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친환경을 선박 등에 접목하기 어려운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선박 건조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선박 한 척을 건조(제작)하기 위해서는 통상 1.5년 정도가 소요된다. 따라서 선박은 당장의 재고량 뿐만 아니라 '올해까지 얼마나 계약을 추가로 성사했는지', '완성된 배는 얼마나 되는지' '더 만들 배는 얼마나 남았는지' 등으로 세분화해서 매출을 파악하게 된다. 이는 각각 수주량, 건조량, 수주잔량으로 불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약 2년 후 조선업계에 뒤늦은 불황이 찾아온 것은 이런 산업적인 특성 때문이었다. 2000년 중반까지 1위를 차지했던 한국의 세계 조선산업 시장 점유율은 이 시기 중국의 저가 물량 수주 경쟁과 경쟁하기도 했다.


현재 LNG 운반선 시장만 보면 한국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LNG 운반선의 주 기술이 '모스'에서 '멤브레인'으로 변화하는 동안 일본은 '모스'를 고집했고, 한국은 빠르게 '멤브레인'을 받아들인 것이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 90년대 전후 국내에서 유일하게 모스 기술을 확보했던 현대중공업은 화물창(저장탱크) 기술 특허를 보유한 프랑스 GTT(Gaztransport & Technigaz)사와 협력해 멤브레인 기술을 받아들였다. 이후에도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한국의 주요 조선기업들은 멤브레인에 접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기화되는 LNG를 다시 재액화/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에도 LNG의 충격을 최소화)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선점했다.


IMO에서 권장한 친환경연료 추진선(이하 LNG 추진선) 발주를 위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투자가 필요하다. 또한 LNG로 운항선 역시 실제로는 디젤 등이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있어 아직 완벽한 친환경 에너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탄소를 발생시키는 연료를 대체하기까지 과도기의 '대안'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LNG추진선 수요는 앞으로도 급증해 2029년까지 최대 3,000척 발주가 예상된다. 국내의 경우 2020년 이후 연 20여 척 이상 건조로 시작해 2030년에는 국내 건조 선박의 약 60% 수준인 200여 척을 건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NG 운반선 기술도 함께 필요로 하는 추진선 시대에는 한국이 시장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기/수소 등이 적용될 미래 시장에서는 LNG 기술 보유가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2019년 8월 연구회 CCR(Japan’s Carbon Capture & Reuse)가 결성되된 이후 얼마 전 첫 번째 회의를 가졌다. 9개 등의 주요 회사는(아래 참조) 각 회사별 주요 강점별로 단계에 참여하는 등 '이산화탄소 메탄화 기술의 선박 연료 시스템 적용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실질적인 측면에서의 이산화탄소 메탄화 시스템을 연구하고, 해상운송에서의 온실가스(GHG) 발생량을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처럼 LNG 이후 선박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기업/국가 간 경쟁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일본 CCR 연구회의 구조 및 '이산화탄소 메탄화 기술의 선박 연료시스템 적용을 위한 구체적 계획' / 출처 : CCR 공식 홈페이지





자율운항선박 등 스마트십 경쟁 치열


선박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최근 선박업계에는 에너지로부터 자유로운 ICT 선박, 이른바 '스마트십(Smart ship)'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스마트십이란 자율운항제어시스템, 선박원격제어기술 등의 신기술을 접목하여 인건비 등의 운영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안전한 운항이 가능한 선박을 말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작년 말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의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사업'이 승인되고 올해부터 추진이 시작되면서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정부사업 내용을 토대로 자율운항선박 도입 시 국내 해운기업은 최대 22%의선박 운영비를 감축할 수 있으며, 현 해양 사고의 80%가량의 인적 과실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세계 최초의 스마트십을 선보인 기업이 현대중공업이란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선박에는 엔진과 제어기, 각종 기관 등의 운항 정보를 위성을 통해 육상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기능이 탑재되었다. 다양한 제어/조종 기술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한 독자적 선박통합통신망(SAN : Ship Area Network)이 이 선박의 핵심이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2020년, 최근 현대중공업은 KAIST와 공동 개발한 자율운항 시스템 '하이나스'를 SK 해운의 25만t급 벌크선에 성공적으로 탑재했다. 또한 선박용 IoT 플랫폼 'ISS(통합스마트십솔루션)', 이안이나 접안 등 운항 시 주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접안지원 시스템' 등도 개발해 냈다.


하이나스 실행화면 / 출처=현대중공업


선박의 자율운항이 육지의 자동차나 하늘의 드론에 비해 쉽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친환경적인 에너지인가 이전에' 운송, 운항수단으로서의 안전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자율운항선박 역시 다른 이동수단 및 로봇 등과 마찬가지로 보안을 함께 강화할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선박 내 선원이 최소화됨에 따라 인적 피해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나 금전 목적의 선박 탈취 등 위협은 증가할 우려도 있다. 그러나 선박의 경우 일단 바다로 나아가면 주변에 장애물이 거의 없고, 속력 조절이나 센서 인식 등에 있어서도 자동차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있다. 차선을 읽고 따라가는 대신 파도와 암초 등을 파악하는 세밀함이 요구되는 쪽에 가깝다. 현 기술 단계에서는 단순 조업 감시, 어군 탐지, 해저조사, 해양 청소용 등의 무인 선박에 자율운항기술을 우선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중이다.


IMO KOREA의 소식지에 따르면 이달(8월) 들어거는 자율운항선박의 실용화를 위한 국제협력조직 'MASSPorts'도 출범했다. 한중일, 싱가포르, 북유럽 국가 등 총 8개의 국가가 참여한 이 조직은 싱가포르 정부 주도로 탄생했으며, IMO가 제시하는 자율운항선박 잠정지침을 기준으로 새로운 지침 마련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처럼 국경을 초월한 기술경쟁력 협업을 바탕으로 자율운항선박의 시대는 더 빨리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산자부와 해수부의 정부사업 관계자에 따르면 자율운항선박이 상용화되는 2025년경에는 세계 조선업계 관련 시장 규모는 약 1,55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순풍이면 좋겠다... 관건은 글로벌 시장 선점


무인 카고 운반선 / 출처= kongsberg 공식 홈페이지



현재 스마트 선박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곳은 유럽이다. 세계 최고 선박자동화시스템 개발사로 알려진 노르웨이 '콩스베르그'는 독자적 플랫폼 개발과 기관 협력을 통한 실선건조 단계에 도입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2018년에는 롤스로이스의 상선 부문을 인수합병해 완전무인선박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이웃나라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통해 조선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지난 2017년 이미 Green Smart호를 건조완료했다. 일본 역시 스마트십 시장 선점을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고 '해사생산성혁명 정책'을 추진중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본 정책을 통해 2025년까지 250척의 스마트십 건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자율운항선박의 경우 한국은 유럽 등에 비해 기술/정책적으로 뒤쳐져 있는 실정이다. 선박 건조기술은 선점했지만 일부 핵심 기자재와 기술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기술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커넥티드 카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무인선박 시대에도 정보 보안의 중요성이 제기된다. 게다가 선박의 경우 국경을 넘나들며 이동하기 때문에 협력의 범위는 더욱 크고 세밀해야 한다. 조선업계뿐만 아니라 정보와 통신, 나아가 환경에 이르기까지 각 업계의 초월적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글로벌 위기 이후로 깊은 침체기를 맞은 조선업계에 친환경과 기술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산자부와 해수부가 함께 추진중인 이번 정부사업은 10년 뒤 자율운항선박 시장의 50% 선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순풍이 될지, 역풍이 될지 아직 가늠하기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선박업계도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박을 칠하는 페인트를 친환경 소재로 바꾸고 대체 에너지로 나아가는 선박의 시대가 숫자로 보면 고작 10년에서 30년 사이의 미래로 다가와 있다. 과거 기술이 새 기술에게 자리를 내어주면서 더 앞으로 나아간 것처럼 조선업계 역시 새로운 역사를 향해 힘차게 순항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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