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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월 Feb 14. 2022

엄마 안녕

엄마 안녕?


 나야 엄마 아들. 엄마, 어디 멀리 갈 때는 가족들한테 말하고 가야 된다더니 왜 말도 안 하고 갔어. 멀리 가는 게 아니라서 그런 거 맞지? 지금 엄마 눈 감으신 방 침대 옆에 앉아 있는데 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엄마 향기가, 엄마 기운이 가득한데 엄마는 어딜 가고 없네. 평생을 그리 고생하시고 이제 좀 집안이 화목하고 다들 안정을 찾아가는데 조금만 더 우리랑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게 가장 속상해.


 전에 엄마 앨범을 보다가 엄마 소녀 시절을 유심히 봤는데 참 그대로더라. 엄마의 소녀시절을 내가 돌려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그래서 내가 그때부터 거꾸로 엄마 엉덩이 두드리면서 오구오구 하고 장난치고 그랬었는데. 여리고 약하고 순하고 착하고 배려심 있고 생각이 깊고 지혜로운 사람. 그동안 살아오면서 엄마를 보면서 참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되더라고. 엄마 말마따나 지혜 총명하게 살도록 말이야.

 

 엄마는 다른 사람들 평생 한 번도 안 받을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그 걸다 버텨낸 대단한 사람이야. 얼마 전에 아버지가 일로 만나신 분이 엄마 돌아가신 얘기를 듣고 엄마 생년월일을 물어보셨대. 그러더니 6년 전에 갔어야 할 사람이 행복하게 더 살고 갔다고 했대. 두 번째 수술을 안 받으셨으면 1년 있다 가셨을 거란 얘기인가 봐. 고귀하고 깨끗한 사람이라 벌써 좋은 곳으로 갔다고 하더라고. 몰라 예전 같으면 콧방귀 뀌었을지도 모를 텐데 엄마 좋은 곳으로 가셨다고 하는데 어찌나 마음이 편하던지.


 엄마한테 말을 안 했던 것 같은데 엄마 두 번째 수술 잘 끝나고 의식 없으실 때 병원에서 면회를 시켜줬었어. 의식이 없으신 상태라 불러도 대답이나 반응은 없으시니 보고 가라고 해서 아버지랑 들어갔어.  아버지가 우시며 '여보' 불러도 대답이 없었는데 내가 '엄마'를 부르니 온몸을 덜덜 떨면서 몸을 일으키시며 날 찾으려고 하더라. 자식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 의식 없는 상태에서 아들 목소리 듣고 일어나려는 엄마 모습을 보고 한참을 울었어. 그리고 그 이후로도 가끔 생각나서 그때마다 눈물이 났어. 간호사들이 놀래서 우리 나가라고 안정하셔야 된다고 해서 쫓겨났었어. 아직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아.


 우리 엄마 그렇게 반평생을 아프시고 반 의사가 되어서 건강관리 철저하게 하시고 돌아보니 가족들을 위해 그렇게 무섭게 철저하게 하셔서 이렇게 함께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엄마 노트를 보는데 그날 저녁까지도 혈압 혈당 다 기록해두셨더라. 어찌나 꼼꼼하고 꾸준하신지. 그래도 그 과정이 혼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아무리 남편 자식이 있어도 그 아픈 몸과 속마음을 누가 깊이 알아줬을까. 그게 내 한이야. 우리 엄마 말마따나 아까워서. 내가 엄마 아까워서 가슴이 쓰려. 이제 안 아프지? 거긴 안 춥지? 엄마 추운 거 싫어하잖아.

희한하게 그 춥던 겨울이 엄마 돌아가신 날부터 초재 때까지 추위가 완전 누그러 졌었어. 엄마 추운 거 싫어하시는데 다행이라고 다들 한 마디씩 했어. 주말에 좀 춥던데 어떻셨으려나.


 누나가 준우를 가지고 난 뒤로 참 많은 게 바뀌었던 거 같아. 엄마 아버지 환한 미소를 참 쉽게 볼 수 있게 되었거든. 우리 조카 준우 얘기만 나와도 아기처럼 까르르 좋아하시는 엄마 얼굴이 떠올라. 나는 사실 준우가 이쁘기도 하지만 더더 준우 이뻐하고 사랑한 건 준우가 우리 엄마 아버지 행복하게 해 줘서였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나한테는 은인이지 준우가 그리고 자형이 누나가. 엄마 안 계실 동안 아버지, 자형, 누나, 준우, 그리고 주영이 내가 잘 챙길게. 엄마 성격 외모 제일 닮은 사람은 자타공인 나자나. 엄마 친척들 친구들 오셔서 나보고 엄마랑 눈이 똑같이 생겼다고 한 말씀씩 하셨어. 엄마가 들었으면 엄청 좋아하셨을 텐데.


 주영이가 엄마 눈 감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보다 더 많이 울었어. 그런 주영이를 보니 내가 또 눈물이 흐르더라고. 우리 엄마 며느리를 참 이뻐했는데 그렇지? 며느리를 그리 애기같이 이뻐하는 시어머니가 있으신가 싶을 정도로 엄마는 참 남달랐어 참 대단하셨어. 어느 날 주영이가 출근 안 하고 쉴 때 산책하면서 엄마랑 한 시간을 넘게 떠들었잖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랑은 다르게 다했다며. 엄마는 그런 주영이가 더 그리 이뻤는지 누나한테도 주영이 이뻐 죽겠다고 했더라. 내가 만날 엄마랑 주영이랑 비슷한 성향이 많다고 얘기하면 둘이서 맞장구치고 웃곤 했었는데 두 집순이 여성 두 분. 주영이가 꺽꺽 우는 나를 안고 내가 오빠 내가 안 되겠지만 어머니 빈자리 채워볼게. 내가 엄마 오빠도 해줄게 하는데 정말 아들처럼 안겨 울었어. 세상에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인 줄은 처음 알았지 뭐야.


 아버지가 참 많이 놀라셨어. 새벽 2시에 아버지 전화받았는데 '놀라지 말고 들어라' 하실 때, 목소리가 애써 침착한 척하시는데 덜덜 떨리시더라. 사실 새벽에 아버지 전화가 울려서 깼을 때 알았어. 아 엄마 눈 감으셨구나. 느낌이 오더라고. 그 길로 첫차 타고 가서 장례식장에 혼자 자형 옆에 있는 아버지를 안았는데 아버지가 내 품에 안겨서 꺼이꺼이 우셨어. 애기같이 서럽게. 온몸이 파르르 떨리는데 아버지가 너무 놀라신 거 같더라. 그리고 예전 같지 않으시더라. 그래서 내 속이 너무 상했어 나라도 중심을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더라. 발인 전에 아버지가 엄마 마지막 제사 올려 드릴 때 엄마한테 하신 말씀들이 참 와닿았어. 엄마에게도 전해졌을 거라 생각해. 우리 아버지 이제 혼자 남게 되어서 그게 가족들의 가장 큰 걱정이야. 혼자 진지는 잘 챙겨 드실지 혼자 부담하셔야 할 각종 집안일에, 참 걱정이 태산이야. 어제는 집도 크다고 작은 집으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는데 참 나도 속이 말이 아니야.


 누나는 엄마랑 서로 제일 친한 친구자나. 엄마도 잘 알겠지만 누구보다 힘들어하고 있어. 누나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서 엄마가 다이어트하라고 잔소리하더니 눈물로 살 빼게 하나보다 하며 둘이 울다 웃었어. 장례 중에 준우가 걱정되어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더 고생도 했어. 누나가 준우를 재우고 올까 엄마 곁을 지킬까 하는데 어른들 의견들이 좀 달라서 고민하길래 내가 엄마처럼 얘기했어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야가 뭐라 하니 지금 뭐가 중요하니 아 빨리 안 챙기나' 했겠지 누나도 그제야 갔다 오겠다 하더라고. 누나는 늘 아침마다 엄마랑 한 시간씩 혹은 그 이상씩 엄마랑 통화했잖아. 우리 누나는 이제 또 어떡해 베프가 없어졌네. 주영이게 누나도 좀 잘 부탁해야겠다 싶어. 누나가 있었기에 엄마가 참 행복하셨던 거 같아. 누나는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엄마 아버지에게 곁에서 잘했더라고. 늘 알고는 있었고 감사 표현도 한다고 했는데 참 부족했던 거 같아. 앞으로 누나에게도 더 의지하고 더 잘할게. 누나가 있었기에 엄마 아버지가 더 행복하실 수 있었던 것 같아.


 맞아, 자형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엄마는 사위도 참 잘 두셨어. 가까이서 제일 먼저 달려가 아버지 옆을 지켜주셨고, 큰일에 어른답게 함께 해주셔서 경황없는 상황 속에 엄마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어. 자형 없었으면 주저앉았을지도 모르겠어. 둘째 날 졸다가 일어나서 옆에서 주무시는 자형 얼굴을 봤는데 너무 피곤한지 안색이 너무 안 좋더라고. 양옆의 자형과 주영이를 보고 너무 속상해서 한참을 또 울었어. 자형이 내내 이리저리 부지런하게 움직이시고 내가 놓친 것들 일일이 챙겨주시고 나 힘들까 봐 걱정해주시고. 엄마 덕분에 내 주변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아 그렇지.


 참 애들도 봤지? 상녕이, 호탁이, 주경이, 성배, 광구, 선필이 애들이 다 와서 3일 내내 곁을 지켜줬어. 친척 어른들이 대견해하시더라고. 엄마 리무진에도 태워드리고 그 친구들 덕에 엄마 편하게 가셨을 거 같아. 어찌나 든든하던지 엄마도 참 좋아하셨을 거 같아 그렇지? 근데 엄마가 그러고 계시니 그 재밌다고 좋아하시는 상녕이도 그만 얌전해지더라 안타깝게도. 명복공원으로 엄마 모시고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할 때가 되었는데 친구들이 밖에서 추운데 기다라고 있더라고. 다들 고생 많았고, 고마웠다고 작별 인사하는데 친구들이 모두 펑펑 울고 있더라. 나도 친구들한테 기대서 한참을 함께 울었어.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지? 그러니까 나는 너무 걱정 마. 서울에서 친구들 동료들도 참 많이 조문을 와주셨어. 너무나도 감사하고 힘이 되더라. 엄마한테 배운 데로 보은하고 살게.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니 슬픔 다음에는 막막함이 오더라.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을 참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어. 내가 내린 결론은 '엄마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야. 매번 어떤 결정의 순간에 엄마의 결정을 생각해보며 살게. 그러면 나도 엄마처럼 훌륭한 사람에 좀 가까워지지 않을까. 엄마, 내가 엄마 귀여워서 윤경희 여사라고 안 하고 엄마가 준우 이뻐할 때 말투 따라 하면서 윤공희 여사라고 장난치고 했는데. 진지하게 마음을 못 전한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아려와. 엄마, 고마워. 사랑해. 그리고 존경해. 감사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하곤 했는데 존경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 해 드린 것 같아. 난 참 엄마를 참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존경해.


 사랑하는 우리 엄마, 이제 아프지 말고 그 많던 걱정도 이제 다 놓고 편안하게 엄마 좋은 거 하시고 다니고 싶은데 자유롭게 다녀. 자유롭게 넓은 세상 여행하며 쉬셨으면 좋겠어.


사랑해 우리 윤경희 여사. 우리 다시 만나.


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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