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향의 부케
그렇게 첫 번째 이직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고 이어진 두 번째 이직 면접도 순탄치는 않았다. 이력서 제출 후 한참이 지나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해당 이직 면접은 총 세 번이었는데 팀장면접, 사업부장 면접, 마지막이 인사팀 면접이었다. 팀장 면접은 커피숍에서 캐주얼하게 보게 되었는데 워낙 편하게 대해주셔서 부담 없이 면접을 봤고 두 번째 사업부장 면접은 직접 방문해서 면접을 봤다. 이런저런 대답을 잘해나가던 와 중에 "입사한다면 얼마나 다닐 것을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한다는 것이 그만 "한 3년 정도 생각한다"는 어이없는 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해당 사업부장이 웃으며 "잘못된 답을 한 것 같다. 다른 면접에서 그렇게 대답하시면 안 될 것 같다"라고 해서 크게 당황하고 낙심하며 돌아왔는데 의외로 결과는 합격이었다. "여기는 앞에 일했던 회사와 같은 업무지만 방식이 매우 다를 수 있는데 버텨 낼 수 있겠냐"는 앞 직장에 대한 이해 높은 말씀을 해주셔서 이때는 어느 정도 감이 왔었던 것 같다.
마지막 인사팀과의 면접과 연봉 협상 단계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참 순진하고 어리석게 연봉협상을 했다. 최종 인사팀 면접에서는 이상하게도 대학 졸업 학과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패션 연관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격적인 질문을 많이 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다른 인재,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답으로 응수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다 연봉협상을 우월하게 하기 위한 공격이었던 것 같은데 그땐 몰랐다. 연봉협상이 잘 되지 않아서 첫 팀장 면접이 4월이었는데, 최종 입사가 8월이었다. 결국 어리석은 연봉협상으로 지고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직 의지가 컸고 물러날 곳이 없었기에 너무나 적은 인상폭을 얻고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유인책은 "이직하며 승진되는 거나 마찬가지지 않나, 입사 후 내년 연봉 인상 때 충분히 고려해 주겠다"였는데 이직 후 익년 연봉 인상률이 너무나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직을 하는 동료 선후배들이 있으면 늘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후에 어떻게 해준다는 이야기 절대 믿지 마라. 그때 챙길 건 그때 나 스스로 챙겨야 한다."
합격하고 출근해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수많은 레퍼런스 체크를 당했었다. 그때는 어렴풋이 만 알았지만 패션업계는 그야말로 작은 세상이다. 속된 말로 "한 다리 걸치면 다 안다."라고 할 정도로 업계 인력 풀 자체가 좁기 때문이었다. 감사하게도 함께 일했거나 한 다리 걸친 분들이 좋은 말씀들을 해준 덕분인지 합격이라는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좁은 패션업계에서 기업들 별로 문화가 아주 다르다는 것이었다. 친정이었던 L회사는 그야말로 남성 임원들과 고위직 위주의 고압적인 분위기의 수치 중심의 회사였고, 옮긴 회사는 흔히들 '여초'라고 하는 여성 임원들과 여성 중심의 분위기와 디자인과 감성 중심의 회사였다. 극단적으로 표현해보면, 이전 직장은 오로지 이익 추구만을 위해 일을 했다면, 새로운 직장은 정말 패션회사 다운 면모들이 많았다. 특히 숫자로 시작해 숫자로 끝나던 이전 회사와는 달리 이미지와 사진들이 넘쳐났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제법 애를 먹었지만 동경하는 회사였던 만큼 금방 적응하려 노력을 많이 했다. 예전에 하던 버릇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경우도 많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도 많았지만 이는 경력직 입사자가 스스로 잘 받아들이고 적응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나하나 직접 일로 부딪혀 나가면서 사업부장 면접 때 들었던 말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는 앞에 일했던 회사와 같은 업무지만 방식이 매우 다를 수 있는데 버텨 낼 수 있겠냐" 아마 그분께서는 비슷한 경험을 하셨거나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지금도 승승장구하셔서 좋은 자리에 계신 걸 보면 기분이 좋다.
당시 업무를 맡은 팀은 신규 브랜드를 론칭하는 팀이었고 기존 회사의 문화와 여러 경력 입사자들의 문화가 뒤섞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중이었다. 모두들 처음 겪는 시행착오에 모두 함께 발맞춰 일했고 비슷한 또래가 많아서 참 즐거이 일했다.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해볼 수 있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값진 기회였던 것은 물론 마음 맞는 팀원들이 있어서 참 좋았다. (물론 모두가 잘 맞을 수는 없지만) 당시 그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 형누나들과 함께 참 많이 식사하고 회식하고 했다. 울고 웃고 즐거웠던 그 시간이 참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지금도 새삼 느낀다. 그리고 그 소중한 인연들이 지금도 이어짐에 너무너무 감사하다. 그러나 그 힘들지만 즐거운 일도, 소중한 인연들도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는 못했다.
안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