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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월 Aug 21. 2021

track 2- 첫 번째 회사 이야기

부케를 덧씌우다

다른 하나를 만들어


 신입사원으로서 회사의 문화와 이념을 교육받고 업무 하나부터 열까지 선배들과 상사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던 1년. 누구보다 성실히 그리고 빨리 업무를 쳐내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실수하나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 태도로 열심히 일했다. 누가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고 나 스스로 그렇게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놓치지 않는 습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조기출근이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일찍 일을 시작했다. 아무도 없이 방해받지 않는 그 오전 한 시간이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했고 11년 차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로 생활하고 있다. 그렇게 하나둘씩 익숙해지는 업무 사이에서 성실함은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것인지 원하던 직무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 하필 회사에서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는 사업 중에 하나인 부서에 속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업무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기 시작했다. 본가에 내려가 한 달에 한번 부모님을 뵙기도 어려운데 그 높으신 회장과는 매월 직접 만나 회의를 진행했다. 회장과의 회의를 위해 임원들과 매주 회의를 진행했고, 다시 그 회의를 위해 팀장과 매일매일을 밤낮없이 일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야근은 디폴트 값이었고 밤을 새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근처 사우나 가서 씻고 올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본 회의가 시작되면 폭언은 기본이었고 인격모독도 허다했다. 타 부서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업무 강도가 유난했는데 용케도 그 시간을 오롯이 버텨냈다. 정기 회의는 종료되었는데 종료되고 나니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었고 그제야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가 딱 4년 차, 새 직무로 3년쯤 되었을 때였다. 4년 동안 원하는 직무와 커리어는 얻었지만, 나를 잃었던 시간이었다.



해외 파견의 희망


  다행히 해당 프로젝트는 끝나게 되었지만 업무에 마음이 너무나 떠난 상태였는데, 마침 해외 지사에서 지사장의 콜이 있었다. 신입사원 때 한번, 실무에서 한번 그렇게 함께 일을 해서 연이 닿은 분이었는데 해외 지사장으로 계시다가 올 의향을 물어왔다. 너무 지친 상황이었고 변화를 모색하던 중이라 가뭄에 단비 같은 제안이라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희망으로 부푼 마음이 곧 순식간에 쪼그라들지도 모른 채.

 

 콜도 왔겠다 나도 가고 싶겠다 너무나 순탄히 진행될 줄 알았는데 인사팀과 해외지사와 논의 중에 결렬이 되어 버렸다. 속해있던 사업부의 사업부장이 보내기를 거절해버린 것이 사유였고, 면담을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담당으로서는 그 분과의 관계 자체가 좋지 않았는데, 보내지 않고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어 보여서 엄청 많이 원망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퇴사 카드를 내밀었을때 그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던지 몇 번씩 면담을 했었다. 사업부장도 다시 만나고 인사팀 임원도 다시 만났는데 회유와 협박 아닌 협박도 당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나가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미자막으로는 해외지사장이 한국에 들어올 타이밍이었어서 면담을 가졌다. 퇴사하지 않으면 해외지사 파견을 확정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평소 업무적으로 그분을 동경하고 존경해왔던 고작 4년 차 대리급으로서는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그분과의 문자를 마지막으로 결국 퇴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씀의 문자가 아직도 핸드폰에 남아 있는데, 힘들거나 혼란스러운 일이 있으면 다시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어디서든 열심히 하면 된다"



이력서와 자기 계발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가려는 의지도 의지지만 운도 참 좋았다. 그때 즈음에 두 회사에서 러브콜을 받았고 배신감에 흔쾌히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봤다. 자소서 이후에 4년이 지나 이력서를 처음 쓰는 터라 동료나 선후배들에게 물어물어 참고해서 이력서를 작성했다. 참 밤낮없이 스스로를 갈아넣으면서 바쁘게 많은 업무들을 해내 왔는데, A4용지 한 페이지에 서술해놓고 나니 허탈하기도하고 실망스럽기도했다. '남들도 과연 다 이럴까', 그럴 것 같지 않았고 스스로가 볼품없이 어겨지기도 했다.

 

  A4 용지 2/3을 가까스로 채워 넣고 제출한 이력서는 다행히도 면접으로는 이어졌다. 여기서 벌써 두 번째로 발목을 잡은 것이 영어 면접이었다. 탈락의 사유는 그렇게 '우리회사로 싶은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영어면접이 영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모자란 영어를 채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일한 지 4년이 넘어서야 그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설프게나마 이해가 되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상황이 빨리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부터 아로마에 부케를 덧씌우기 시작했다.



@hell_o_mon

toon by @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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