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마
수많은 기업들에 제대로 된 이해도 조차 없이 지원한다는 것은 돌이켜 보면 스스로에게는 시간낭비요, 기회를 잃을 다른 경쟁자를 생각하면 이기적인 행동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리 절박했던 이유가 바로 인트로에서 소개드렸던 출신과 환경의 제약이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나는 서울에 연고가 없이 말 그대로 서울로 유학을 왔다. 처음에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어색하고 다가오는 것도 모두 거절하고 살았던 것 같다. 흔히 말해 셀프 아웃사이더가 되어 지냈다. 다행히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닫혔던 마음은 열리게 되었고 뒤섞여 서울 살이를 하다 군대를 다녀왔다. (재미없는 군대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어쩌면 영원히 미루고) 본가에서 한 달 정도 쉬다가 취업 준비를 명목으로 서울로 다시 올라와서 원룸텔을 하나 잡았다. 1년 정도 쉬엄쉬엄 천천히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마련해둔 자금은 빨리 떨어져 나갔고 취업이 시급했다. 한 달에 50만 원이라는 월세마저 못 내게 생겼으니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며 자소서를 기계처럼 써냈다. 서울 살이 6개월 만에 취업하지 않으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다시 본가로 내려가야 할 판이라 절박했다. 적어도 부모님은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다.
취업준비를 하던 초반에는 근자감과 달리 하도 탈락의 고배를 많이 마셔, 그만 잠을 잘 못 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술을 마셔도 마찬가지라 약에 의존까지 하려고 했는데 수면제는 처방용 약이라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고 해서, 약국의 수면유도제로 그나마 잠에 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자동차 회사, 그야말로 누구나 가고 싶어 했던 회사에서 면접 기회를 주었다. 다른 회사들과 다르게 차근차근 잘 준비했고 서투르지만 영어 면접도 준비했다. 성격 탓인지 너무 절박하면 긴장하기 십상이라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고 가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실수는 없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처음 하는 영어면접은 더더욱 서툴렀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나왔나 싶을 정도로 멍한 상태로 나왔다.
예상외로 합격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지만 그날은 감이 왔다. 아 여긴 안 되겠구나. 씁쓸하면서도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는지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화려한 거리가 보였다. 멋진 광경에 눈과 마음을 뺏기면서도 거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고 서둘러 한 칸짜리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진탕 술을 마셨던 것이 아마 그날이었던 것 같다. 이미 멋진 곳에서 멋진 사람들과 직장 생활을 잘해나가는 친구를 앞에 앉혀두고 하소연을 수없이 했다. 생각 보니 원룸텔을 구하기 전에 그 친구 집에서 신세도 많이 졌다. (얼마 전 오랜 시간 고생하고 득녀한 그 친구에게 아기 신발 한 켤레를 선물했는데 별도로 새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다음날 숙취에 눈을 떠보니 술 취한 와중에도 노트북을 잃어버리면 안 되겠던지 노트북을 꼭 안고 침대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음을 다잡고 남은 것들을 준비하면서 그 화려한 거리가 자꾸 떠올랐다. 나도 할 수 있다.
결국 11월이 다되어가던 어느 날 모 시중은행의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빡빡한 면접이었다. 면접 일정이 조별로 면접관과 같이 하루 일과를 같이 하는 여정이라, 오전부터 저녁 가까이까지 함께 했고 일거수일투족을 평가받는다고 생각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다행히 1차는 합격했고 2차 임원 면접을 보게 되었다.
임원면접도 다수의 면접자들이 들어갔는데, 이날이 아직도 선명히 생각난다. 같은 질문을 순서대로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다른 면접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내 대답을 준비하고 생각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질문에서 군 생활의 사례를 기초로 한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앞 면접자가 그만 유사한 내용을 발표해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는지 면접관이 두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보고는 내가 당황한 이유를 알아차렸던 것 같다.
"자, 시간을 드릴 테니 좀 더 생각해보고 답변 하시라"고 하시고 다음 차례 사람으로 넘어갔는데, "어떻게 대답하실지 기대가 된다"라고 하셨다. 사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 자체가 관심이요, 기회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주 솔직하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맞습니다. 너무 유사한 내용을 준비하고 있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앞으로 일함에 있어서도 거짓으로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업무에 임하겠다는 방식으로 대답하고는 내 답변을 마지막으로 면접이 종료되었다. 잘한 것 같기도 하고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앞 면접자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시간이 지나 최종 발표가 되었는데 합격이었다. 웬걸 기쁘지가 않았다. 너무나 감사하고 기분은 좋았는데 몇 번 겪어본 해당 기업문화에서 오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덜컥 겁부터 났다. 아직도 합격 이메일이 남아 있는데 11월 중순에 합격을 하고 11월 말에 연수원에 입소를 해야 하는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다른 백화점도 한 군데 합격을 해서 말 그대로 선택을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최종 합격을 두 군데 해놓고 나니 마음이 얼마나 편했는지 모른다. 관심 있던 소비재 회사의 최종 면접을 하나 앞두고 있었는데, 합격한 곳이 있다 보니 보험이 있다는 생각에 엄청 든든했고 면접을 임하는 태도가 달랐다. 면접장에 도착해 보니 지난번 놓쳤던 그 화려했던 거리가 멀리 보였다. '아 같은 지역이구나' 싶었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회장을 포함한 임원 면접을 보는데 그때도 다수의 면접자들과 함께 보는 방식이었다. 여러 질문들을 지내고 마지막 질문 차례에서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라는 취지의 질문이었고 쟁쟁한 경쟁자들의 답변이 이어져갔다. 중간쯤이었던 내 차례에서 말씀드린 건 "다 잘한다, 그동안 살면서 못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사소한 일도 없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 해낼 수 있다"라고 얘기했는데 그만 거기서 제동이 걸렸다.
다른 사람들의 답변에 스무스하게 넘어가고 있었는데 바로 추가 질문이 들어왔다. 다 어떤 걸 구체적으로 말하느냐, "외국어는 어떠냐", "해외 경험이 없어 보이는데 옆에 이민후 돌아온 사람보다 외국어들 더 잘하느냐" 등등. "그동안 공부할 기회와 마음이 없었는데 필요하다고 하시면 지금부터 준비해서 빠른 시간 안에 실력을 올려내겠다"라고 했다. 너무 무책임한 답변이라며 방금 설명한 내용들을 그럼 영어로 다시 말해보라고 했다.
잠깐의 침묵과 긴장이 흐르고 서투르지만 당당히 "To..."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합격했음을 직감했다. 가장 높아 보였던 사람이 "그만, 왜 그렇게 괴롭히고 그래" 하고 다음 사람으로 질문이 넘어갔다. 등으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속으로는 보험이 있다고 자신만만했는데 왜 또 새삼 긴장하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최종 합격을 받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었다.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그리 절박하다가도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고민되다 보니 그 상황마저 부담스러웠다. 이런저런 고민을 부모님과 대화하며 풀어나가는 도중에 스스로 어떤 걸 더 하고 싶은지 스스로 알게 되었다. "돈보다는 마음이 더 끌리는 곳을 선택하자" (아마 평생 후회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한걸 지도 모른다.)
면접장에서의 질문은 정확한 답을 내놓으라는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사람이 가진 태도와 생각의 깊이를, 논리의 과정을 알아보고자 하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면접자는 올받은 태도와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표현해내야하고 무엇보다도 실력의 자신감과 입사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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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n by @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