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월 Sep 12. 2020

track 1- 대기업 신입사원 면접 후기 1/2

아로마

취업준비생의 아로마


 평소 와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들어봄직한 단어인 '아로마'와 '부케'. 마치 사람에게도, 사회생활에도 적용이 가능한 것 같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포도의 품종에 따라 결정되는 아로마를 가지고 시작해서 나중에는 그 과정을 통해 부케로 이끌어내는, 그처럼 새로운 뜻을 가지고 면접에 임하는 취업준비생들은 각자의 아로마를 한껏 품고 있다. 과연 그 아로마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면접의 관건이라 생각한다.




형식적인 질문과 형식적인 대답들


 필자는 2010년 하반기 공채 시기에 20곳이 넘는 곳에 면접을 봤다. 짧은 시간, 협소한 공간이지만 수많은 면접관과 수많은 기업문화를 보는 계기가 스펙트럼을 넓혀주는데 도움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인트로에 언급했던 것처럼 면접 스터디는 생각조차 안 했고 학원이나 과외는 상상도 못 했다. 스스로 하향지원이라고 생각했던 곳들부터 면접을 보면서 서서히 실력을 쌓아갔다. 몇 개의 기억나는 후기들을 이야기해보자 하는데 기업 내외부적인 이슈를 고려해 사명은 공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쭈뼛했던 첫 번째 면접을 시작으로 5-6번 정도 면접을 보고 나니 그다음부터 긴장감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면접장에서 풀어내는 이야기의 레퍼토리도 생겨나니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도 급작스런 질문이나 흔히들 말하는 압박 질문들이 많아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었는데 앞서 말한 자소서와 마찬가지로 회사마다 질문이 형식적이고 과하게 말하면 따분했다. 그런 질문에 최대한 차별화된 요소를 넣어 이야기를 해보려고 애썼지만 스스로 생각하기도 탐탁지 않았다. 그러면서 스스로 또 해당 기업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다. 업계에서 10년 넘게 근무하신 것 같은 분들의 질문 수준이 기대 이하인 경우도 정말 많았다.



5만 원짜리 말다툼


 그러던 즈음에 모 건설회사 면접을 보게 되었다. 조별 면접 시스템이었는데 한 조에 4-5명 정도가 한 번에 들어가고 면접자 수와 면접관 수도 비슷했다. 해당 면접과의 악연은 대기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11시 면접 예정이었는데, 점점 시간이 밀리면서 면접이 연기되어 점심시간을 건너뛰었고 대기장에서 2시까지 3시간을 기다렸다. 먼저 일찍 도착해서 대기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거의 4시간을 기다리다 보니 대기장의 분위기도 다들 맥이 빠진 분위기였고 필자는 화도 많이 났다. 고작 신입사원 면접시간을 3시간씩 지연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일까, 일은 제대로 할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참고 기다렸다.


  그렇게 오래 기다려 들어간 면접장에서는 의외로 색다른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바로 '회계'관련 수강의 깊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필자는 경영학 전공인데) 모든 기업에 회계/재무 직군은 배제하고 영업이나 기획, 마케팅에 지원했던 터라 대학 때 회계 관련 수업을 적게 들은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는 몰라 당황했다. 지원한 직군에 포커스를 맞춰 생각한 바대로 대답을 했는데 해당 면접관에게서는 질문이 아닌 질책이 돌아왔다. "경영학도로 기본이 안된 건 아닌지",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등의 인신공격성 압박 질문이 돌아왔다.


 사실 융통성 있게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대기실에서 4시간가량의 대기는 이미 마음속에서 해당 기업이 나에게서 탈락을 먹은 터라, '면접 시간을 컨트롤하지 못해 4시간 기다리게 한 것이 더 기본이 안된 거 아닌가요'라고 대답을 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가 없으니 오죽 당황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 속에 우리 조는 전원 탈락. 주변 지원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며 마녀사냥까지 당하고 정말 불쾌하게 면접장을 나섰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만 다른 지원자분들에게 까지 피해를 입힐 것 이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오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고 스스로의 언행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함께 했던 지원자들에게 죄송하다며 사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면접비 5만 원이 손에 쥐어졌다. 다른 면접 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면접비. 급여로 보상을 하는 회사 문화를 들었던 터라 회사 문화에 대해 이해가 되기도 했고 입사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은 면접자가 회사를 고르는 자리도 된다.

 


워너비 게임회사


 위압적이고 거친 건설회사 면접을 보고 극히 대비되는 곳이 있었다. 모 게임 회사.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업이었고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예상치 못하게 면접의 기회를 갖게 되어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회사 사옥을 통해 들어갈 때부터 기대조차 못한 복지환경이 눈을 사로잡았다. 해당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면 커질수록 대기실에서부터 긴장감이 커져만 갔다.

  

 게임 회사답게 지원부서 직군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관련 질문들이 정말 많았다. 함께 했던 지원자들도 마찬가지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분들이 많았다. 특히 해당 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모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흥미도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이어지는데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가진 정보로는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었고 자연스레 흥미와 관심도가 떨어진 지원자로 보였을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가장 당황한 질문은 해당 게임의 레벨을 물어보시는 질문이었는데, 아이디 조차 없던 나로서는 다른 미사여구로 포장해보려 해도 모자람이 컸다. 역시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기업의 사업분야가 명확한 곳을 지원할 때에는 아무리 지원부서라 하더라도 해당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와 몰입도가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방심은 늘 금물.



인적성 테스트와 논술 시험, 운


 이번 track의 마지막 스토리는 논술 시험이다. 면접 스토리에 잇기는 딱 들어맞지 않지만 그저 재밌는 이야기로 첨언하고자 한다. 연이어 몇 개의 면접 탈락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조급해져 갔다. 많은 곳을 지원하다 보니 면접 일정이나 인적성 시험이 겹치는 경우도 더러 있어서, 스케줄을 잘 조율하고 우선순위를 선정하는 것도 중요했다.


  모 은행권 회사의 인적성스케줄을 다른 회사와 고민하다가 즉흥적으로 다른 회사를 포기하고 모 은행권의 인정석 시험장으로 향했다. 가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 일화는 지금도 낯 뜨겁기도 하고 한편에는 웃음이 나기도 하는 이야기이다. 인적성 시험장으로 향해 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착석했는데 무엇인가 그 공간의 분위기가 그동안 참석했던 곳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많은 지원자들이 자리에서 대부분 신문 혹은 책을 읽고 있었다. 아무리 기업의 문화가 있고 그에 유사한 지원자들이 많이 지원자들이 지원한다고 해도 뭔가 이상했다.


 인적성 테스트인 줄 알고 참석했던 곳은 바로 논술 시험장이었다. 해당 회사는 인적성이 없이 논술로 테스트를 하는 곳이 었는데, 고민하다가 즉흥적으로 오는 바람에 어떤 시험이 정확히 이루어지는지 그만 잊어버리고 사인펜 하나 들고 태연히 앉아 있었다. 마치 고등학교 때나 보던 긴 논술 시험지를 받는 순간 스스로 실소를 뱉었다. '하, 망했다.' 사인펜으로 이름부터 써 내려갈까 하다가 부끄럼을 무릅쓰고 감독관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펜을 빌렸다. 수많은 시선이 낯 뜨겁게 느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빌린 푸른색 펜으로 질문을 선택하고 서술해 나갔다. 시작부터 꼬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말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정도로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다녀와서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다들 웃어넘기고 부모님께는 가볍게 혼도 났는데, 결과는 웬걸 합격이었다. 운칠기삼.

 

@hell_o_mon

toon by @엄군


매거진의 이전글 intro-11년 차 서울 유학파 직장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