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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Nov 02. 2020

그 반대입니다.

인간답게 사는 데에는 보통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의 식 주

옷이야 있는 거 대충 빨아 입으면 되고, 먹는 거는 세 끼 중 하나라도 빼먹으면 쓰러진다는 엄마의 양육 방침에 세뇌된 덕분에 틈만 나면 뭔가를 입에 넣고 있다. 하지만 주는....


바쁘면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고 최악으로 치달을 때까지 티도 나지 않는 것이 주이다. 바쁜 아침 귤 하나 주머니에 넣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건 가능해도 이불을 개고 이곳저곳에 늘어진 옷을 옷장에 걸어 넣기는 쉽지 않다. 또 그렇게 멀끔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사람들은 방이 엉망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다. 예를 들면, 집에서 방이 돼지우리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은 나지만 어디 가서 방이 참 더러울 거 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오히려 깔끔할 거 같다는 말을 듣고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곤 한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랬다. 출근 15분 전에 깨어나 허둥지둥 머리만 감고 빨래걸이에 걸린 옷을 대충 주워 입고 나오는 동안 헝클어진 이불과 쌓인 설거지거리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아침 출근 준비 동선이 모두 추적이 되듯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엉망이 되어버린 집. 우다다 뛰어나왔지만 마음 한구석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불쾌감과 죄책감은 나를 계속 집으로 끌어당긴다.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강의를 듣고 있지만 단 30분 전의 폭풍은 아무도 의심하지 못한다.


집은 사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지러운 집 상태가 떠올라서 속이 쓰렸다. 내가 사람이 이상해서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은 엉망이라 집이 그렇게 엉망인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순서가 틀렸다. 마음이 엉망이라 집이 어지러운 게 아니라, 집이 엉망이라 마음이 어지러운 거였다. 강의 중 계속 집으로 쏠리는 신경과 퇴근해도 더러운 집이 나를 맞을 거라는 한숨 나오는 미래가 나를 심란하게 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집을, 이 마음을 깨끗하게 하리라. 어제도 그제도 한 그 다짐을 오늘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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