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반사 Feb 26. 2024

최고령 고교생의 최우수 졸업


그녀가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장녀로서 엄마의 일을 도우려고.



그 시절 여자들에게 흔한 일이긴 했다.


게다가,

가끔씩 집에 들렀다 가는 아버지를 대신해 

가정 경제를 책임졌던 어머니도

진학을 굳이 막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권하지도 않았기에


그녀의 양심은 깃털보다 가볍고 쉽게 

학업중단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녀의 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의 콤플렉스를 인지했지만

긴 세월 이어진 그녀의 체념 또한 알고 있었기에

남아있는 미련이 꽤나 뚜렷하다는 건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뒤늦게나마 딸들에 등 떠밀려 시작한 고교생활.



남들에겐 작은 불씨 정도로 보였던

열망이

사실은 그녀 자신만 아는 활화산이었을까.



00방통고 최고령자로서 

신입생 대표 선서를 하며 입학한 그녀의 3년은

60여 년 회환을 

흔적도 없이 불태워버릴 만큼 뜨거웠다.



학생의 신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주부이자 엄마였던 그녀는

새벽같이 일어나 남편의 아침상을 차리면서도

총 세명의 딸 중 같은 지역에 사는 두 딸의 집을

각각 오전과 오후에 방문하여

모자란 집안일을 살폈고


공부는 정해놓은 시간 없이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하고 또 했다.



격주로 학교에 가는 날엔

부담감과 설렘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며

시간이 짧다는 불평의 말로, 

사실은 그 짧은 시간이 

아쉽고

소중함을 에둘러 표현하였다.



만학도들이 대부분인 

방통고 특성상

시험기간이면 교사들이 범위를 정해

문제를 가르쳐주기도 했지만,

그녀는 절대로 문제와 답만을

기계적으로 외우지 않았다.



문제를 이해하고 풀고 싶어

이해가 될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물론 이해하기보다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했다가도

잊어버리는 일이 더 많았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은 

결국 빛을 발했다. 


3년 연속 학력우수상 수상에 이어

모든 여정을 마친 졸업식에서는

도지사상을 수상하며

최고령 졸업생의 위엄을 과시한 것이다.






일찍이 병원 청소, 식당일 등으로

몸을 써가며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했던 그녀.


새벽같이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 불씨가 

이토록 뜨거웠음을 알고 있었을까.



스스로를 눈치챌만한 

여력조차 없이

때론 잃고 때론 잊고 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야 기억난 

그녀 자신만의 삶.



이젠 그 기억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기를.


경도인지장애라는 지병도

무력케 할 또렷한 기억을 안고

멈춤 없이 달려가기를.



그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일흔다섯, 나의 엄마.

나는 당신을 뜨겁게 응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들이 넷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