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온유함
성경에는 3명의 야고보(James)가 나온다.
두 명은 예수님의 제자이고, 나머지 한 명은 야고보서의 저자인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바로 이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을 맞대고 살아왔지만
예수님이 부활하고 나서야 그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충만을 받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권면하는 야고보서의 저자가 되었다.
요 며칠 야고보가 쓴 야고보서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5
나는 이 말씀을 상당히 좋아한다. 나에게 지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참 많기 때문이다.
특히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순간순간 대처해야 할 일들이 생길 때
내 생각대로 급히 반응하다 보면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누가 와서 내 삶의 순간마다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그럴 때 나는 이 말씀을 떠올리며 기도를 하곤 한다.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데, 왜 그렇게 지혜가 부족하냐고 꾸짖지도 않는단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후하게 준단다.
내 기도가 응답이 되었나.
3장 13절에 (내가 느끼기에) 기가 막힌 말이 나온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이 말씀이 왜 기가 막히게 느껴졌느냐면,
지혜가 온유함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한다는 말이 나에게는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나는 지혜는 머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경험이 부족하고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아서
시의적절한 행동과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라 여겼고, 그래서 머릿속 지혜가 넘치길 바랐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지혜와 온유함을 함께 언급한다.
이러한 것이 위로부터 난 지혜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내 몸의 에너지가 고갈된 것을 핑계로 부드럽게 행동하지 못할 때,
그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다툼과 오해가 생겼다. 당연히 전혀 지혜로운 모습이 아니었다.
온유는 순진함이 아니다.
다 알고 있음에도, 절제하는 부드러움. 외유내강이다.
온유와 절제로 이어지는 부드러움.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지혜였던 거다.
그러나 온유함을 억지로 행할 여력이 내게는 없다.
이번에도 또 구해야 한다.
온유함 자체도 구하고 지혜를 구할 때도 함께 구해야 한다.
그것이 예민하나 아둔한 나에게 가장 지혜로운 처방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