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쯤이었다.
가족과 다 같이 평창에 있는 리조트로 여행을 떠났다.
실내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스키장에서 눈썰매도 탔지만
당시 다섯 살에 불과한 셋째에게는
리조트 내의 키즈카페가 가장 즐거운 곳이었다.
키즈카페에 들어선 아이는
평소 좋아하던 중장비 장난감이 가득한 편백나무 놀이공간으로 들어섰다.
그러더니 갑자기,
"친구들 안녕? 나는 00이. 여기는 우리 엄마"
라고 소개를 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내 눈엔 그저 사랑스러운 아이의 인사.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아무도 호응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그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중장비를 가지고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다른 장난감에 눈을 돌린 아이.
과일가게 놀이였던 거 같다.
그곳엔 어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같이 놀고 있었다.
그들은 남매인 듯했다.
멀찌감치 우리 아이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곧 아이가 씩씩거리며 나에게 왔다.
"엄마, 저 형아가 안 끼워줘. 나랑 같이 안 논대!"
"그래? 그럼 저 형아랑 누나가 다 놀 때까지 다른 거 하면서 기다리자.
둘이 가족이라서 같이 놀고 싶은가 봐"
"으... 싫어... 난 같이 놀 거야"
말을 마친 아이는 다시 형과 누나가 있는 곳으로
비장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아이가 어떻게 하는지 멀찌감치서 지켜보았다.
형과 누나는 여전히 아이에게 냉담했다.
왜 또 왔냐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뚝 끊겨 이어진 곳은
바로 그 형과 대단히 친해진 아이의 모습이다.
둘이 같이 뛰어놀고 미끄럼도 나란히 탔다.
나이차가 적어도 네다섯은 날 것 같은 형이었다.
나중에 헤어질 때는 잘 가고 또 놀자며 아쉬워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런 일은 얼마 전 한 식당 실내놀이터에서도 있었다.
식당에서 같은 나이의 남자아이를 만나
둘도 없이 재밌게 놀았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집에 갔다.
이제 실내놀이터에 남은 사람은 단 세명.
우리 아이와 어떤 자매였다.
우리 아이가 또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 쟤네가 나랑 안 논대"
"그래? 그럴 수도 있어. 여자 아이들은 친한 사이끼리
같이 놀고 싶어 하기도 해. 우리가 이해해 주자"
"아니야. 난 같이 놀 거야"
지난번과 같은 흐름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였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중간에 아이가 우리 테이블로 오자,
자매 중 언니가 우리 아이에게 소리쳤다.
"일로 와. 빨리 놀자~"
그러더니 본인 엄마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 우리 저 애랑 친해졌어"
나도 남에게 다가가는 것이, 조심스러워서 그렇지
그렇다고 엄청나게 어려워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나를 거절하는 이에게까지 다가가는 일은,
당연하겠지만 내키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하물며 그 사람의 마음문을 열게 하고
스스럼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건...?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그건 이 아이기에 가능한 걸까.
그저 어린아이이기에 가능한 걸까.
난 대체 이 아이에게 얼마나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걸까...
이 아이에 장착된 이 용기가
시간의 흐름 속에 마모되지도,
탈착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왠지 정말 그럴 것이라는 믿음도 생긴다.
내게 먼저 믿음이 생겼는데,
믿음의 내용은 전하라고 있는 것 아니던가. : )
그러니
앞으로 마주하게 될 다양한 거절의 순간들도
너끈히 이길 수 있는 힘이
바로 네 안에 존재한다는 것,
그게 너의 멋진 특기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건 내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