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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cha Apr 30. 2024

터키 이스탄불에서, 입맛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2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실망도 하지 않았을까? 올바른 기대를 한 것일까?

오직 음식만을 위해 터키 이스탄불 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이스탄불에서 방문했던 레스토랑들은 대부분 현지에서 몇 년 간 살았던 분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와 구글 맵 평점 / 후기들을 참고해서 선별한 곳들이었다. 그렇게 꽤 까다롭게 선별해서 레스토랑을 여럿 방문했지만 그중 만족스러웠던 곳은 디저트집, 카이막집, 그리고 호텔 조식 밖에 없었다. 런던에서 지내며 꽤 많은 곳들을 여행해 본 결과, 앞서 말한 방식으로 레스토랑을 찾아가면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스탄불은 너무나도 달랐다.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실망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내가 터키 음식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런던에서 맛있는 곳들을 많이 방문해 보았고, 그래서 신선한 재료들로 맛있게 요리한 터키 음식들을 많이 먹어보았다. 잘 생각해 보면, 런던 중심에 있는 (도너 케밥처럼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케밥을 제외하고) 많은 터키 레스토랑들은 가격대가 저렴하지 않은 편인데, 런던 중심가에서 가격대가 조금 있는 터키 레스토랑을 운영하려면 맛이 없이는 절대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그런 곳들에서만 터키 음식을 먹어보았으니, 이스탄불 여행을 계획하면서 음식에 대한 기대가 점점 높아졌었다. 이스탄불을 여행한 한국인들의 리뷰도 다수 보았는데, 서울은 런던에 비해 상대적으로 터키 음식 문화가 덜 발전되어 있으니, 런던에 있는 터키 음식점만큼 맛있는 터키 음식점을 방문해 본 적이 없어 기대가 상대적으로 낮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점이 높은 레스토랑의 음식들이 너무나도 실망이어서 터키의 식문화에 대해 공부를 조금 해보았는데, 우선 터키는 외식문화 자체가 비교적 최근에 생긴 문화이고, 외식보다는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외식 문화 자체가 관광객들 위주로 발달되었다고 한다 (이스탄불의 경우 더욱 심각할 것 같다). 또한 터키의 전통적인 식문화 저널에 따르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자랑하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는 문화도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조용히 가족들과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잘 생각해 보니, 터키는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기보다, 바로 가정을 돌보는 경우가 아직까지 많기 때문에 외식을 당연히 적게 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스탄불 여행을 계획하면서 음식에 대한 기대를 했었는데, 내가 과연 올바른 기대를 한 것일까? 아주 방향성이 다른 기대를 해 놓고서는 혼자 실망해 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터키의 식문화를 조금 공부해 보고 내 여행을 돌이켜보니, 어떤 레스토랑이던 현지인보다는 관광객들이 붐볐고, 레스토랑의 주인들도 더 많은 (관광객) 손님들을 모으기 위해 "맛있었다면 구글 리뷰를 꼭 남겨주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평균 이상 정도하는 음식점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작성한 4-5점짜리 구글 리뷰가 많았고, 결국 높은 리뷰를 보고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붐비는 레스토랑들을 현지인들은 피하게 된 것 아닐까.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구글 리뷰를 사는 레스토랑도 이스탄불 시내에 꽤 있는 것 같다. 정말 맛도 서비스도 인생 최악이었던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도 다들 화가 나 있었고, 음식이 냉동 음식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곳이 구글 평점 4.9점인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나도 이곳의 구글 리뷰를 남겼는데, 주인이 욕설에 가까운 아주 무례한 답변을 남겨서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혹시 이스탄불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리뷰를 꼼꼼하게 확인할 것!).


이스탄불에는 듣던 대로 고양이들이 아주 많았다

지금껏 계속 이스탄불의 음식들이 실망이었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막과 디저트, 그리고 정말 맛있었던 두 가지 요리가 있다. 기억에 남는 몇 곳을 소개하려고 한다. 


1. Gulluoglu Karakoy 지점 (메뉴: 바클라바와 각종 전통 디저트)

런던에서도 바클라바를 몇 번 먹어보았지만, 보통 너무 기름지거나 너무 달거나, 아님 시럽이 밍밍한 느낌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곳의 바클라바는 적당히 달고, 적당히 기름지고, 적당히 바삭했다. 바클라바 특유의 약간 기름진 느낌이 싫다면,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넣은 삼각형의 바클라바를 추천한다. 다른 디저트 집들도 많지만 Gulluoglu가 좋았던 이유는, 가게 자체가 위생적이고, 넓고, 직원들이 친절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행하면서 거의 3-4번 같은 지점에 방문해서 이것저것 먹어봤는데, 지점이 많고 넓으니 매일 방문해 보면서 하나씩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 Karakoy Muhallebicisi (메뉴: 카이막!)

1편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카이막의 맛에 아주 민감하지 않다면 호텔 조식의 카이막을 더 추천한다. 정말 맛있는 카이막 맛집들은 자리가 협소해서 아주 붐비고 시끄럽거나, 테이크아웃 전문 지점인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우리도 호텔 조식에 나오는 카이막이 만족스러워서 카이막 맛집들을 여러 곳 찾아다니지는 않았지만, 이곳의 카이막은 확실히 호텔의 카이막보다 맛있었다. 다만, 한국인들에게 꽤 유명한 곳이라 주인아저씨가 계속 한국말로 말을 걸어와서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하

3. Gaziantep Kozde Kunefe ve Kebap Salonu (메뉴: 베이란, 퀴네페) 

우연히 찾은 레스토랑인데 이곳도 한국인에게 꽤 유명한 곳이었다. 베이란이 칼칼하게 맛있었고, 퀴네페도 바로바로 직접 만들어주셔서 맛있었다 (퀴네페 자체가 내 취향은 아니지만!). 케밥은 닭날개와 양고기를 시켰는데, 신기하게도 닭날개가 더 맛있었다. 

4. Golden Shish Cag Kebap (메뉴: 그냥 다 맛있다!!!) 

이스탄불 미식 여행에 지쳐있던 우리에게 한 줄기의 빛 같던 곳. 정말 유일하게 케밥이 맛있었던 곳이라 3번 가서 먹었다. 케그 케밥이라는 형식의 케밥만 파는 심플한 곳인데, 케그 케밥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잘 아는 도너 케밥을 눕혀놓고, 꼬치에 잘 익은 겉 부분을 두툼하게 꽂아서 다시 한번 직화로 구워내는 케밥) 기본, 케그케밥 + 밥, 그리고 이 스켄다르 형식의 케그 케밥, 딱 이 세 가지만 메뉴에 있었다. 세 가지 다 먹어봤는데 기본적으로 케밥이 맛있어서인지 다 맛있었다. 기본적으로 케그 케밥이 다른 형식의 케밥보다 비싼 편이지만, 정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족스러웠던 정석 케밥 레스토랑이라서 값어치 이상을 했다. 

5. Meshur Balikci Eyup Usta (메뉴: 고등어케밥)

딱 정석 고등어 케밥집인데 시즈닝과 고등어의 조합이 정말 맛있었다. 다만, 소스가 아주 강하기 때문에 향신료와 시큼한 맛에 약한 사람들은 아주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먹어봐야 알 수 있는 맛! 

6. Murver Restaurant (메뉴: 타이거쉬림프와 필라프, 문어, 각종 애피타이저, 디저트) 

이스탄불 미식 여행을 하면서 거의 유일하게 모든 면에서 아주 만족스러웠던 식사. 카라쿄이의 노보텔 루프탑에 있는 호텔 레스토랑이었는데, 뷰도 아주 좋고, 분위기와 서비스도 아주 좋았다. 모든 메뉴가 만족스러워서 2번 정도 방문해 봤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이곳에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했기 때문에 다시 방문할 수는 없었다. 타이거쉬림프와 필라프, 그리고 디저트가 아주 맛있었다. 


끝으로 입맛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의 입맛은 변했다. 한국에서 지낼 때는 내가 먹는 음식의 스펙트럼이 넓지 않았고, 레스토랑에 가서 새로운 음식과 서비스를 경험하는 즐거움을 잘 몰랐기 때문에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라고 했을 때 그냥 떡볶이 정도?라고 떠올리는 수준이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내 소울푸드는 단연코 떡볶이지만, 그때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런던에서 지내면서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을 경험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고, 일주일에 1-2번씩 다양한 나라에서 꿈을 안고 런던으로 건너온 셰프들이 진심을 다해해주는 음식들을 맛보는 것이 일상에서 꽤나 큰 즐거움이 되었다. 


이제는 나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라고 했을 때 "아침에는 크림치즈와 베이글 반조각 또는 오버나이트 오츠 & 각종 베리, 아플 때는 하노이식 포, 스트레스받을 때는 집에서 내가 직접 만드는 꾸덕한 쌀떡볶이, 고기 중에서는 터키식으로 양념한 양갈비, 해산물 중에는 버터갈릭 타이거쉬림프나 커다란 클램, 간식으로는 영국식 버터 비스킷과 캐러멜 루이보스 티"라고 답할 수 있다 (물론 간단하게 대답할 때는 여전히 떡볶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한 나는 지금껏 '소유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무엇을 소유하는 것보다 경험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다는 것을 알고, 그래서 20만 원으로 옷을 사는 것보다는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는 것을, 100만 원으로 핸드백을 사는 것보다는 가까운 곳에 여행 다녀오는 것을 택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나의 '넓은 의미에서의' 입맛 (Taste)과 '좁은 의미에서의' 입맛(Taste) 모두 변했다.


나는 경험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라 느끼는 사람이라, 이번 이스탄불 여행도 너무나도 즐거운 경험이었으나, 동시에 나는 (특히 음식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신기하기도,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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