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어머니께 첫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부터 줄곧 들었던 생각이 있는데, 어머니는 마치 태고부터 혼자 살아온 사람 같다는 것이다. 사람도, 환경도, 시간마저도 빈 틈 없고 질서 있는 느낌이랄까?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관리하는 집에는 제 철 식재료로 만든 정갈한 맛의 저장식품, 칼각으로 다림질한 옷과 패브릭, 재래시장과 백화점을 부지런히 오가며 알뜰하게 마련한 생활용품들이 적재적소에 놓여 있고 누구라도 그 질서를 흐트러뜨리면 안 될 것 같은, 오직 어머니 한 사람이 마지막 퍼즐조각인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그렇게 어머니의 삶은 손수 딱 맞게 지어 입은 그녀의 원피스처럼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고 완벽하게 보였다.
그런데 치매발병의 원인이 외로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서야 누구에게든 혼자 꾸려내는 삶이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며 더구나 완벽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자타공인 살림의 여왕으로 사는 한편 수채화에 재미를 붙여 밤낮으로 열중했어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몹쓸 외로움은 혼자 맡기엔 힘에 부치는 상대였을 것이다.
반려동물 한 마리라도 곁에 두었다면 송곳니를 드러내며 어머니 편을 들어주었을까?
"엄마도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그래?"
"뭐? 개나 고양이 말이야? 어휴, 난 싫어!"
"왜? 말벗도 되고 좋잖아!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이들 키우던데?"
"글쎄, 난 싫어~"
사실 남편이 어머니에게 반려동물을 키워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어머니의 의견에 동의했다.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만으로도 반려동물 키우기를 거절할 명분은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반려동물에게 받는 위로와 활력이 얼마나 큰지 알았더라면 어머니에게 좀 더 권했을 것 같다. 사실 당사자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니 그야말로 의미 없는 후회가 아닐 수 없는데, 그럼에도 미련이 남는다.
우리 집 반려견은 어머니보다 훨씬 일찍 한 식구가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기르고 싶어 했는데도 내가 반대하다가 딸이 우울증을 앓게 되자 마음을 바꾸어 유기견 입양센터를 통해 두 살배기 믹스견을 가족으로 맞아들인 날이 2017년 9월 23일이니, 어머니보다 2년 반이나 앞선 시점이다.
지금까지도 쉽지 않은 적응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유기되어서 두렵고 고통스러웠던(정말이지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질 때가 너무 많다 ㅜ) 날보다 훨씬 많은 날들을 우리 가족 구성원으로 살며 생명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특히 딸에겐 말할 수 없이 소중한 껌딱지이고.^^
그 '껌딱지'(물론 예쁜 이름이 있지만 그야말로 개인정보라^^)는 워낙 사람을 경계하는 녀석인 데다 어머니와 합가 하기 전에는 식사시간에 잠깐 만나고 헤어졌으니 둘 사이에 이렇다 할 해프닝은 없었다.
그런데 합가하고 나서는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생겼는데 나는 그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며 관계개선에 따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슬그머니 방치했다.
현관 앞에 위치한 딸의 방앞을 지나갈 때마다 천둥번개 방불케 하는 요란한 소리로 짖어대는 통에 어머니의 무단외출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 혹해서 그만...(어머니에게 반려동물을 권할걸 하고 후회하는 마음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ㅜㅜ)
어머니의 잠자리까지 봐드리고 내 방으로 들어와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왈왈왈왈!!!"
느닷없이 짖는 소리가 나면 후다닥 달려 나가 어느새 딸의 방앞을 서성이던 어머니를 돌려세우고
"쓰읍 조용히 해! 할머니한테 어디!"
말로는 어머니에게 하극상을 저지른 것을 혼내면서 눈으로는 하트를 날리며
'오호 그래그래 잘했어!! 그래야지 암암!!'
나의 이중메시지를 알아들을 리 만무하건만 혼자 메소드 연기를 펼치곤 했다.
보통 유기견들이 보이는 모습 중 하나가 주보호자에게 과도한 애착을 보이며 다른 가족들이 접근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인데 우리 껌딱지는 그 전형적인 모습을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있어서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다.
큰 소리로 짖기만 할 뿐 가까이 오지도 못하는 겁쟁이인 걸 아는 나도 그 녀석이 별안간 짖어대면 간 떨어지는 것 같이 깜짝 놀란다. 그러니 평화로운 순간에조차 강아지가 곁에 오는 것을 꺼리는 어머니야 혼비백산할 일이 아니겠는가!ㅜㅜ
그렇다고 어머니가 항상 껌딱지를 두려워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 딸의 방에 접근만 하지 않으면 대체로 조용하고 말썽을 부리지 않는 녀석이라 어머니도 평소에는 미소를 띠고 그윽이 바라보다가
"참 예쁘게 생겼어!"
라고 감탄하시며 제법 애견인 같은 면모를 보일 정도였다.
센터에서 돌아오실 때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무섭게 집안에서 왈왈 짖는 소리가 나지만 내가 호위하고 있어서인지 어머니는 안심하다 못해 대범하게,
"얘! 너는 주인도 못 알아보고 그렇게 짖어대니?"
하시며 살짝 꾸짖을 때도 있고 말이다. 하하하
아, 식사 때는 사정이 달라졌다.
식탁 밑으로 껌딱지가 들어오면 어머니는 다리에 털이 스치는 것이 싫어서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는데 눈치 없는 녀석은 냅다 그 자리에 드러눕는다. 어머니는 쩔쩔매는 목소리로
"얘 저리 가! 아유 참, 내가 좋아? 어쩜 좋으니? 저리 가래도!"
하면서 아래를 봤다 다리를 옮겼다 하면서 안절부절..
내가 껌딱지를 불러내고 나서도 어머니는 경계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식사를 시작했다.
가끔 껌딱지의 사료가 궁금해서 살그머니 맛보기도 하셨는데
"어머니! 지금 뭐 드세욧!" 하면서 애들에게 하듯 어머니 턱 밑에 손바닥을 대고
"패! 패!" 뱉으라고 하면 놀라서 뱉어내기도 했다.
사실 사람이 못 먹을 건 아닌데 아무래도 꺼림칙해서 순간적으로 그렇게 반응하게 된다.
해마다 9월 23일엔 껌딱지의 입양을 기념해서 작은 케이크와 몇 가지 선물(주로 간식)을 놓고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어느 해에는 어머니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너는 참 좋겠다!"
하시는데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애들 말로 '개부럽' 이런 정도의 뉘앙스가 아니었다.
간절하고 진심 어린 표정으로 읊조렸는데, 몇 날 며칠 우려낸 사골 곰탕도 그리 진하고 뜨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은 나에게
"나는 너보다 못한 신세야!"
라는 의미로 들렸다.
나는 못 들 은 체하는 것으로 그 순간을 모면했다.
껌딱지만 못하게 느끼도록 어머니를 대한 내가 달리 어떤 반응을 할 수가 있었을까...
참으로 조용했지만 또렷한 장면으로 영구각인된 일갈.
너 는 참 좋 겠 다
시시때때로 그 한마디가 마음을 아릿하게 파고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무심했고, 그러니 다시 그런 순간이 온대도 어머니에게 위안이 될 대답을 내놓을 수 없어 그저 못 들은 체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품기엔 외로움이 너무 큰 그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