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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서아빠 Apr 10. 2024

연문위키 - 15편. 너의 이름은?②

2) 사람은 특별하니까. 

이름이 곧 운명(Nomen est omen)
- 로마 격언

이름은 다른 것들과 구별하기 위해 대표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이든 처음 발견하면 가장 먼저 이름을 붙입니다. 2023년 새롭게 발견된 혜성의 이름은 C/2023 A3입니다. 가장 유명한 혜성 중 하나인 '12P/폰스-브룩스 혜성(12P/Pons-Brooks)'과 비교하면 먼가 좀 성의 없어 보이지만 어쨌든 구별하려는 목적에는 딱 부합합니다. 


동물원에서도 특별히 사랑받는 동물에게는 '이름'을 지어준다.

또,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던 국내 최초의 자연번식 자이언트판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갈 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배웅하기도 했죠. 푸바오의 이름은 ‘행복을 주는 보물(福寶)’이라는 뜻이에요. 많은 판다 중에서 유독 '푸바오'에게 애정을 쏟는 이유도, 우리가 이름으로 부르는 관계 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사람에게는 생물이나 사물과 달리 더욱 세분화된 이름 구분법이 있습니다. 바로 성씨(姓氏)를 이름과 함께 쓰는 거예요. 성씨는 그룹을 구분하기 위해 부르는 말입니다. 성은 가계의 이름(Family name)이고, 씨는 가문(droughty)의 이름(surname)이에요. 물론 요즘에는 surname과 family name을 크게 구분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씨(surname)  

서양에서는 성씨라고 지칭하는 별도의 이름은 없어요. 모두 다 이름(name)이지요. 그래서 가문의 이름에 '~를 넘어', '~보다 위'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sur-'를 사용하여 본인보다 윗대에 있던 조상들의 이름을 의미하는 surname 이 만들어졌어요.

사실 surname은 영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중세 라틴어인 "super nomen"에서 파생된 말이에요.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는 대부분 surname과 family name을 동일하게 여기고 사용하지만 오히려 일본에서는  "성 (姓, surname)"과 "가족 이름 (氏, family name)"을 구분하여 사용합니다.


가족과 친척 중심의 사회였던 고대에는 이름 자체가 없었을 거예요. 그저 개울 앞 방앗간집 넷째 아들이라던지, 키 큰 붉은 머리라고 만 해도 충분했겠죠. 하지만 사회가 점점 발달하면서, 대충 불러도 구분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구별을 위한 '이름'이 생겼지요.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교수의 책 사피엔스(Sapiens)를 보면 인류가 기록으로 남긴 최초의 이름은 '쿠심(Kushim)'이었다고 해요.

최초의 이름일지도 모르는 기원전 3천 년경 점토판. '쿠심'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보리 135,000 단위, 37 개월, 쿠심"



농경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노동력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에, 씨족의 이름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도 어쩌면 당연했을 거예요. 그 시절, 유일한 부의 증식 방법은 자손(특히 남자)의 번창이었을 테니까요. 노동력 = 생산력인 시대기 때문에 "씨(氏)"를 특별한 이름으로 구분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성(姓)이자 영어권에서 surname이라고 불리는 가문의 이름이 됩니다. 


씨(氏, surname)

우리나라는 현재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본관(surname) + 성(family name)의 형태로 씨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의 경우에는 본관이 덕수이니 '덕수 이 씨' + 순신이 됩니다. 

귀족들이 자신의 가문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토지를 다스려야 할 때 새로운 성(family name)을 부여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가문이 더욱 번영하게 되면, 자손들은 가문의 땅 외에 다른 곳에서 정착하려는 시도를 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귀족에게는 자손들이 많았고, 이들에게 부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다 보면 가문의 부는 쇠락할 수밖에 없어서 장자 중심으로 토지를 물려주려는 관습이 자연스레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그러니 토지를 유산으로 받지 못한 가족은 새로운 땅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가문을 만들게 된 거예요. 이것을 조상들의 이름과 구별하여 별도의 family name을 만든 이유이지요.


McDonald는 Donald의 아들이라는 스코틀랜드에서 온 말입니다. 이름에서 조상을 대략 알 수 있어요.

새로운 가문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아버지 혹은 선대의 이름을 가지고 짓는 경우가 많았을 거예요. 선대의 이름을 자신의 미들네임으로 사용하는 거죠. 예를 들어 아버지가 John Smith라면, 그 자식인 James는 아버지의 이름인 John을 Johnson으로 바꾸고 James Johnson Smith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Johnson, Peterson, Robinson, Wilson, Thompson과 같이 -son을 붙이거나 Fitzgerald, MacLaren, O'Brien, de la Cruz 등 지역 특색에 따라 특정 가문의 자손을 의미하는 성씨도 있어요. 

- Fitzgerald : "Fitz"는 "아들"을 의미하는 게일어에서 유래
- MacLaren : Mc 또는 Mac은 스코틀랜드에서 "~의 아들"을 표현하는 접두사
- O'Brien : O는 아일랜드어로 "~가문의"를 표현하는 접두사
- de la Cruz : 스페인어로 "십자가의"라는 의미로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가문이라는 의미


아버지와 같은 성과 이름을 쓰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또, 아예 선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주는 경우도 있어요. 대부분 가문의 유산을 물려받을 장남에게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선대와 완전히 동명이인이 되기 때문에 Senior(Sr.)나 Junior(Jr.)을 붙이기도 합니다.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John Downey Jr.)의 아버지의 이름은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Robert John Downey Sr.)에요.


즉, surname은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이름이라면 family name은 부모(또는 조부모)가 물려준 이름이지요. 그래서 서양 문명 중 가장 번창했던 로마의 번영 시기에 조상과 가문의 이름을 동시에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어요.  고대 로마인은 "이름이 곧 운명(Nomen est omen)"이라는 격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대의 명문가들은 가문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의 앞에 가문을 내세웠어요.


대표적인 로마 시대의 가문 이름으로는 율리우스(Julius), 르넬리우스(Jornelius), 파비우스(Favius), 발레리우스(Valeriu), 클라우디우스(Claudius), 유니우스(Junius) 등이 있어요. 특히, 율리우스는 로마 시대 마지막 집정관이자, 제국의 발판을 마련한 카이사르의 가문입니다. 카이사르의 정식 성명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입니다. 가이우스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고 율리우스는 씨족, 카이사르는 가문의 이름입니다. 


그러니 지금도 공식적으로 잘 드러내진 않지만 미들네임(middle name)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그만큼 로마의 관습을 따르는 국가들이 많았던 증거겠죠. 다들 로마의 후예를 자처했으니까요.

서양의 유명인 중 미들네임(middle name)을 가진 사람은 의외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톰 크루즈(Tom Cruise)의 원래 성명은 토머스 크루즈 메이포더 4세(Thomas Cruise Mapother IV)이고, 브래드 피트(Brad Pitt)는 윌리엄 브레들리 피트(William Bradley Pitt)예요.

물론 지금은 씨족의 이름 이외에도 부모님/조부모님의 이름, 특별한 사람의 이름, 세례명, 별명, 여성의 경우 결혼 전 가졌던 성을 미들네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렇게 지 마음대로 다양하게 사용하는 이유는 미들네임이 잘 쓰이지 않는 이름이기 때문이에요. 대개 공식적인 서류에만 등장하는 이름이지요. 


합스부르크 성

하지만 귀족이 아닌 사람들이 성씨를 가지게 된 건 14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아마도 11세기까지는 웬만큼 잘 나가는 집안도 이름만 존재했던 것으로 보여요. 로마 시대의 전통 귀족들 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을 가지지도 못했지요. 


하지만 중세 유럽의 봉건 영주들이 점차 자신이 다스리던 땅 이름을 자신의 이름 뒤에 붙임으로써 '성'이라는 개념이 일반인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인식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합스부르크 가문(Haus Habsburg)도 슈바벤(Schwaben) 지방에 세워진 합스부르크성에서 유래되었지요. 

봉건 영주(領主, feudal lord)

영지(領地)를 소유한 주인을 말합니다. 영주는 지역 사회 주민을 장악한 유력자가 왕에게 공식적으로 영지를 하사 받음으로써 지명이 됩니다. 이렇게 영주에게 왕이 가진 통치의 권한을 위임하여 다스리도록 는 하는 정치 체제를 봉건 체제(feudal system)라고 해요.


14세기 이후에는 마을이 점차 커지면서 같은 이름의 사람들이 점차 생기게 됩니다. 봉건 영주 입장에서는 영지민들을 노역에 동원하거나,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하는데, 동명이인이 많아 정확한 구분이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일반 서민들도 성을 가지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주로 하는 일을 기준으로 성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Smith(대장장이), Gardner(정원 관리인), Taylor(재단사), Baker(제빵사), Cooper(술통 만드는 사람), Mitchell(양을 기르는 사람), Foster(어린이를 돌보는 사람), Shepherd(양치기), Kennedy(경비병), Gallagher(외과의사)는 선조의 직업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surname입니다. 

메간 폭스(Megan Denise Fox) - 여우상인가요?

이후 도시가 발달하면서 점차 동일 직업의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특정 인물을 직업만으로 특징짓기가 어렵게 되자 얼굴 생김새, 신체 특성, 사는 곳의 특성을 살려 성을 붙이기 시작했지요. Hill(언덕), West(서쪽), Brooks(개울가), Bradley(broad ley, 넓은 평지)처럼 자연환경을 나타내거나, Phillips(웨일스 지역의 지명), Washington(영국의 워싱턴 지역)처럼 사는 지역을 나타내는 성도 있었어요. 이외에도 Small, Long, Young, Fox(여우상), White, Brown(주로 갈색 피부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Armstrong(팔 힘이 센 사람)처럼 사람의 신체적 특성을 가진 성도 있었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럽의 유명한 가문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피렌체의 메디치(Medici) 가문은 중세 이탈리아에서 의사로서 시작하여 후에 귀족 가문으로 발전하여 의사라는 뜻의 Medici를 surname으로 사용했어요. 또한, 돌아가신 엘리자베스 2세의 가문이기도 한 윈져(Windsor)는 영국의 버킹엄셔(Buckinghamshire)에 있는 윈저 성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지금도 엄청난 부자로 유명한 록펠러(Rockefeller) 가문 역시 그 어원은 '보리밭'이라는 뜻이에요.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장. 라틴어로 협조, 완전, 근면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어요.

사실 서양에서 '성'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필요에 따라 이렇게 성을 만들었기 때문일 거예요. 세계적인 금융 가문으로 유명한 로스차일드(Rothschild) 가문의 성은 1대 로스차일드가 아버지의 고물상 앞에 놓여있던 붉은 방패(Red Shield)를 보고 이 것을 자신의 성과 가문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해요. 먼가 중2병 같지만...


이런저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마침내 18세기 무렵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성을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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