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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서아빠 May 09. 2024

연문위키 - 15편. 너의 이름은?⑥

6) 뒤바뀐 이름. 누가 진짜인가.

인디언이 아니지만 어쨌든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인디언들.

이름을 바꾸는 것은 많은 혼란을 가져다줍니다.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여성이 결혼을 하고, 성을 바꾸는 서양에서는 재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렸음에도 전 남편의 성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어요. 특히 학자나 작가의 경우에는 새로운 이름을 공식적으로 등록하고, 기존의 이름을 모두 바꾸어줘야 하는 불편함이 엄청나게 크지요. 그래서 한번 정해진 이름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인도인 즉, 인디언(Indian)이라고 부르잖아요. 콜럼버스가 잘 못 붙인 이름이라는 것을 누구나 아는데도 말이에요.


호주 원주민 - 이름을 쓰는 것도 미안하다.

제가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호주 수도인 시드니 캔버라에 며칠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호주의 옛 국회의사당 앞에서 텐트 대사관이라고 부르는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던 호주 원주민들이 있어서 봤더니, 그들의 이름이 애보리진(aborigin)이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런 이름이 붙었나 물었더니, 영국에서 호주를 점령할 때 당시 호주에 살던 원주민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원숭이와 같은 동물로 봤었다고 해요. 그래서 부정의 의미의 접두어인 'ab-'에 진짜 사람을 의미하는 'origin'을 붙여 '사람이 아닌'이란 의미의 aborigin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이런 반인륜적인 용어가 버젓이 불리다니 어이가 없었지요. 참고로 호주에서 원주민들에게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법안은 2014년에나 나왔어요. 여하튼 한번 정해지고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게 되면 (말도 안 되는 이름이라도) 그 이름을 바꾼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예외란 언제나, 늘, 항상, 반드시 있는 법이죠. 최근 '아재 판독기'라는 유머를 들어 보셨나요? 학창 시절 배웠던 주요 과학 용어들이 바뀌었는데, 이게 세대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었나 봐요.


지금껏 잘 못 발음해 오고 있었던 이름을 바로잡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일본식 또는 독일식으로 부르든 화학에서 사용하는 주요 원소와 화합물의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사실 이름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부르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게 더 맞을 거예요.


요오드(iodine) → 아이오딘
부탄(butane) → 뷰테인 / 메탄(Methane) → 메테인 / 프로판(Propane) → 프로테인
티탄(titanium)→타이타늄 / 게르마늄(germanium)→저마늄
크세논(xenon)→제논, 망간(Manganese)→ 망가니즈, 란탄 (lanthanum)→란타넘
아밀라아제(amylase) → 아밀레이스
스티로폼(styrofoam) → 스타이로폼

다만, 비타민(Viatamin)과 비닐(Vinyl)은 이미 일반인들이 널리 사용해 굳어진 용어라고 판단해  기존 명칭표기를 계속 유지한다고 해요. 원래라면 바이타민과 바이닐이라고 바꿔야 했거든요.


발음만 바뀐 것이 아니라 아예 용어 자체가 바뀐 경우도 있어요. 척추, 포자와 같은 과학 용어들도 우리말로 바꿔 부르기로 했어요. 좀 더 정확한 발음으로 표준화하려거나, 우리말을 사용해 의미를 더 분명하게 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어요.

척추 → 등뼈
간뇌 → 사이뇌
신장 → 콩팥 / 십이지장 → 샘창자,
포자 → 홀씨
슬라이드 글라스(slide glass) → 받침 유리 혹은 커버글라스(cover glass)
 프레파라트(preparat) → 현미경 표본
 메스실린더(mess-cylinder) → 눈금실린더


그런데 이 이름들이 언제부터 바뀌었는지 아시나요? 무려 19년 전, 2005년입니다. 약 20년이나 지났는 데도 예전 명칭이 더 익숙하시죠? 이렇듯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여간 어렵고, 불편한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무려 수백 년간 다른 이름으로 불리다 이제 남의 이름이 자기 이름이 된 기막힌 사연도 있어요. 바로 감자와 고구마 이야기입니다.




감자(potato)와 고구마(sweat potato)는 모두 15세기 후반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 이후 당시 신대륙이었던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담배, 토마토 등의 작물들과 함께 유럽으로 건너왔어요. 남미의 토종 식물이지요. 기원전 3천 년 경부터 안데스 산맥의 높은 지역에서 재배되었다고 해요.


감자가 처음 유럽에 전해질 때 스페인어로 파파(papa)라고 했고, 고구마는 원주민들이 부르던 바타타(batata)를 파파와 결합해 파타타(patata)라고 불렀어요. 바타타와 파타타라니... 먼가 헷갈릴 것만 같은 이름이네요. 고구마보다 감자가 조금 더 늦게 유럽에 전파된 탓에 고구마를 potato라고 하고, 감자를 white potato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16세기 중반 아일랜드까지 재배가 확산된 감자와는 달리, 더운 지역에서 잘 자라는 고구마는 남부 유럽 밖에서 재배가 잘 되지 않았어요. 게다가 유럽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땅속에서 뽑아 올려 캐야 하는 특성상, '악마의 식물'이라는 오명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저 돼지 먹이 또는 노예나 먹는 비천한 음식으로 생각했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원래의 potato(고구마)를 볼 수 없는 스페인 이외의 국가의 사람들은 white potato(감자)를 그냥 potato라고 부르게 된 거예요. 이후 넓은 지역에서 재배에 성공한 고구마에게는 달콤한 감자라는 의미의 sweet potato라는 억울한 이름을 붙여준 거예요.


감자와 고구마의 이름의 기구한 사연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남미를 무력으로 점령한 스페인은 아시아 식민지 확장에도 앞장섰어요. 필리핀의 마닐라를 점령하여 당시 명나라 상인들과  멕시코산 은(silber) 교역을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갈레온(galen)이라는 배를 이용한 이 무역을 갈레온 무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6세기 후반부터 이 무역을 통해 감자와 고구마가 중국으로 전래되었어요.


먼저 감자는 청나라 시대에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었어요. 중국에서도 중국 내륙 고원지대에 재배되다가, 청나라 시절 인구가 급증하면서 구황식물의 역할을 위해 만주까지 진출했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조선의 가장 북쪽 지역인 함경도까지 전파되었죠. 이때 감자의 공식 명칭은 땅속 식물이라는 의미의 '저(藷)'였는데, 우리나라 국경을 기준으로 북쪽의 청나라를 통해 들어왔다고 해 주로 북저라고 했어요.

구황작물(求荒作物, famine food)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가 원산지인 감자, 고구마, 옥수수를 '구황작물'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밀이나 쌀보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면적으로 두 배나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구황(구할(구), 거칠(황))이라는 말은 '굶주림에서부터 구한다'는 의미로 인류가 굶주리지 않고 번영하는데 큰 도움이 된 작물이지요. 특히, 감자는 추운 지역이나 4,000m 고산지대에서도 재배가 가능하고, 3개월이라는 단기간 내에 수확이 가능하며, 양분을 땅속에 축적하여 전란에도 피해가 적다는 장점이 있어요.

남미의 경제나 농업기술 발전이 같은 시기의 유럽이나 아시아에 비해 상당히 늦은 것도, 지형이 남북으로 길고 기후대가 다양하고, 높은 산맥이 있다는 지리적 이유도 있겠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구황작물이 많아 다른 농사 기법을 연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류큐 왕국에는 고구마 왕자도 있었다.

반면 고구마는 더운 곳에서 더 잘 자라는 특성 탓에 중국 남쪽의 강남지역에서 재배되다 현재 일본의 오키나와인 류큐 왕국에 전래되었어요. 이 고구마가 류큐 왕국을 점령한 일본을 거쳐 대마도에도 전래되었는데 조선 영조 때 일본으로 보낸 통신사가 대마모에서 고구마를 가져오게 된거죠. 그래서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의 남부 지방(부산, 제주도 등)에도 전래가 되게 됩니다. 이때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달콤한 저'라는 의미에서 감저(甘藷)라고 불렀어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고구마라고 부르는 sweet potato가 '감저(달콤한 저)'였고, 감자는 '북저' 또는 '저'라고 했던 거예요. 지금부터 이름이 막 바뀌어 헷갈리니 잘 따라오셔야 해요. 북저(감자)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청나라에서 전래되었어요. 하지만 청나라는 당시 조선에서 오랑캐로 취급했기 때문에 조선 사대부들이 북저(감자)라는 작물 자체를 싫어했고, 또한 공식적으로 승인받지 못한 외래 작물 재배가 금지였기 때문에 함부로 재배하거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함경도 사람들은 북쪽의 날씨에도 잘 자랐던 potato를 재배하다가 관리에게 걸릴 경우, 북저(감자)가 아니라 감저(고구마)라고 둘러대면서 점차 북저(감자)를 감저(고구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게다가 감자는 줄기식물이라 수시로 잘라먹고 다시 심으면 되지만, 고구마는 뿌리 식물이라 재배하는데 상대적으로 오래 걸렸기 때문에 먹을게 풍족하지 못했던 시기에 북저(감자)가 전국적으로 더 유행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감저(고구마)를 재배하는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북저(감자)를 감저라고 부르게 되면서 고구마는 감저라는 이름을 잃게 된 거에요. 이후에 감저가 감자로 변한거죠.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저라고 한다.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고구마에게 다른 이름이 붙여졌어요. 위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고구마는 일본 대마도에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는데, 대마도에서는 고구마를 고귀위마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이를 음차하여 '고금아'를 거쳐 '고구마'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그래서 원래 고구마를 많이 재배했던 일부 남부 지방과 제주도에서는 아직도 고구마를 감저라고 부른다고 해요. 


지금까지의 말을 종합해보면 감자와 고구마는 모두 고구마를 뜻하는 말이에요. 감자(달콤한 저)는 고구마의 중국식 이름이고, 고구마(고구위마)는 일본식 이름인 거죠. 참고로 일본에서는 고구마를 규슈 최남단의 사쓰마번에서 가져온 식물이라는 뜻에서 사쓰마이모(サツマイモ)라고 부른다고 해요. 그러고 보니 potato도 원래 고구마를 잃컫는 말이니, 감자, 고구마, potato, Sweet potato 모두 고구마의 이름이었네요. 이쯤되면 감자가 불쌍한 건지, 고구마가 불쌍한 건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오늘의 결론
 감자는 사실 진짜 이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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