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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서아빠 Apr 30. 2024

연문위키 - 15편.너의 이름은?⑤

5) 니가 무슨 이름을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조선시대에 불렀으면 바로 잡혀갈 그 이름.

이름의 경우에는 성보다 더 종류가 다양합니다. 유교 문화 중심이던 시대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겼기 때문에 다양한 이름의 형태가 생겼어요. 그래서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더라도 이름 대신 자나 호로 불렀지요. 게다가 왕의 이름을 막 부르면 어디론가 끌려가 고초를 치뤘겠지요.


식당에서도 외국에서처럼 웨이터라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손윗사람이나 낯선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적절한 호칭이 생각나지 않아 망설여지는 경험이 다들 있으실 거에요.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호칭을 실수하면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상황에 맞는 여러 이름을 준비하고, 때와 장소에 따라 달리 부르기로 했지요. 한번도 없는 사람이라도 부를 때는 '아이, 꼬마, 학생, 젊은이, 누나/언니/형/오빠, 이모, 삼촌,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 선생님, 사장님 등'의 호칭 중에서 적절한 하나를 골라야만 했어요. 이도 저도 싫으면 아예 '저기'나, '저...' 정도로 호칭을 대신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름에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호칭이 있었어요. 원래 이름이외에도 아명(兒名), 관명(冠名), 자(字), 호(號), 시호(諡號) 등으로 불리지요. ① 아명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정에서 불려지는 이름으로써, 천한 이름일수록 역신(疫神)의 시기를 받지 않아 오래 산다는 믿음에서 천박하게 지었어요. ‘똥개, 쇠똥이, 개똥이’처럼 막 불렀지요. 저도 어린 시절 친척 어른들께서 '만득이'라고 부르셨는데 왜 그런지 아직도 잘 몰라요. 참, 태어나기 전에 부르는 이름인 태명(胎名)도 있지요.


10살 전후로 홍역을 치를 나이가 지나 서당에 가게 되면 비로소 정식 이름을 얻어 족보에 기재됩니다. 이후 관례를 치르고 어른이 되면서 새로 이름을 짓는데 그게 바로 ② 관명입니다. 이 때 보통 항렬에 따라 '항렬자'로 이름을 짓지요. 보통 이름의 가운데나 끝자를 돌림 형식으로 같은 이름을 사용하여 가문 내 서열을 표현합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경우, 신(臣)자를 돌림자로 사용했어요. 가족이 많은 대가문일 수록 돌림자를 통해 서열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이름을 듣고도 누군지 못 알아보는 건 꽤나 실례거든요. 이 관명은 호적에도 함께 올라갑니다.


홍역(measles)

 홍역의 이름인 “붉은 역병”은 환자의 전신에 발생하는 붉은 발진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홍역은 일반적으로 1~6세에 감염되는데, 고열과 전신에 급성 발진의 증상이 나타나는 급성 전염병입니다. 최근에는 대부분은 백신을 접종하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백신이 등장하기 전에는 가장 무서운 질병중에 하나였어요. 얼마나 무서웠냐면, 아직도 엄청 힘든 고생을 하고 나면 '홍역을 치뤘다'라는 말이 남아 있을 정도에요.
관례(冠禮)

예전에 남자나 여자가 성년에 이르면 성인(成人)이 된다는 의미로 행하던 의례입니다. 일종의 성인식이지요. '성년례(成年禮)'라고도 합니다. 남자의 경우,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땋아 내렸던 머리를 올려 상투를 틀고 갓을 썼습니다.

대부분의 선비들은 성공하여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것(입신양명)을 삶의 목표로 했기 때문에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는 관명을 부르지 않았다고 해요.


중국 문인들과 필담으로 통성명한 필담첩. 추사는 김정희의 '자'였음이 밝혀졌다.

요즘에는 본명과 관명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이름을 지을 때 항렬자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관명은 어른으로서 불리는 이름이지만,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함부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지요. 그래서 관례 이후에 사용하는 이름이 ③ '자(字)'입니다. '자'는 가까운 친구간이나 이웃에서 허물없이 부르는 것으로, 대개는 이름을 깊고 빛나게 하기 위해서 화려하게 짓습니다. 우리가 호로 잘못 알고 있는 김정희 선생의 자가 바로 '추사'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자는 여해이니 이순신 장군의 친구들은 '거기 여해있는가?' 라고 했겠지요.


④'호'는 문과 덕행이 높아져서 이웃에 널리 알려지고 존경을 받게 되면 얻게 되는 이름입니다. 아무나 가지는 이름이 아니지요. 대게 남을 가르칠만한 자리에 이른 사람만이 가지는 영예인데, 스승이 지어주거나 가까운 친구가 지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짓기도 한다고 해요. 율곡 이이, 퇴계 이황, 포은 정몽주처럼 위인전에서 주로 만나는 분들의 호는 아주 유명하지요. 여성은 신사임당(申師任堂) · 가효당(佳孝堂)· 의유당(意幽堂)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당, 재, 헌'와 같이 집이나 공간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나이면서 최초로 문집을 간행한 여성 시인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원래 이름은 허초희에요. 이쁜 이름이지요.


이순신 장군의 시호는 '충무' 이며, 사후 추존된 작위는 '공'이다.

'자'가 그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드러내고 본명이 함부로 불리지 않기 위해 지었고, 호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을 나타내기 위해 지었다면, ⑤ 시호는 그 사람이 살았던 생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명성황후와 같이 시호로 불리기도 해요. 사실 시호에는  이름으로 그 사람의 일생을 심판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좋지 않은 시호는 자손 대대로 불명예이기 때문에 살아 생전에 더 잘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간신이나 악신에게는 의미가 안좋은 시호를 주거나, 아예 시호를 내리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인간계에서 최고 높은 직위인 왕의 경우에는 시호도 더 많습니다. 시호(諡號), 묘호(廟號), 능호(陵號), 전호(殿號), 추상존호(追上尊號), 추상시호(追上諡號)와 같이 다양합니다. 하지만 왕조의 마지막 왕은 대부분 시호가 없습니다. 고구려의 보장왕이나 백제의 의자왕처럼 '이름 + 왕'으로 불리지요. 새로운 왕조에서 기존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해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름이외에도 그 사람을 잘 나타내는 별명인 별호(別號), 사는 사람의 집이나 관직명을 부르는 택호(宅號), 불교에서 부르는 법명(法名), 가짜로 사용하는 예명(藝名)과 가명(假名) 등이 있어요. 이렇게 이름의 종류가 많고 다양한 것은 한국인들이 이름에 대하여 얼마나 진지하고,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어요.


최근 직장에서 직급을 부르지 않고 호칭을 통일하는 캠페인을 하기도 하는데 (저희 회사는 '이름 + 님'), 우리나라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 것도 상황에 맞는 호칭을 부르는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호칭을 부르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기업 문화 차원에서 더 효율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 가지 호칭으로의 통일보다는 좀 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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