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배낭여행기
영사관은 9시에 문을 연다.
8시 반부터 영사관 앞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여권을 받자마자 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가는 트렘 안에서 불가리아 소피아로 가는 오전 11시 버스를 예매했다.
숙소에 들러 가방을 찾아 곧바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10시 40분이었다.
정작 버스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11시 40분에 출발했다.
터키 버스는 친절과 청결에서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버스를 타면 승무원이 물과 간식을 준다.
전에는 손에 샤워 코오롱을 뿌려 줬었다.
이번에 내가 탄 버스는 10시간 동안 물도 간식도 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승객들이 알아서 물 보관대에서 물을 꺼내 먹고 서로에게 전해 주었다.
중간에 한 승객은 챙겨 온 간식을 승객들에게 돌아다니며 나눠주었다.
나는 비상용 홍삼 캔디를 빨아먹었다.
중간에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휴게소 식당은 터키였음에도 유로나 달러만 받았다.
달러나 유로가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돈을 바꿔 주거나 저녁을 사줬다.
작은 인류애가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미처 안면을 트지 못한 나는 남은 터키 돈을 유로로 바꿔 겨우 화덕에 구운 얇은 빵 반 개를 사 먹을 수 있었다. 빵 위에 치즈를 얹는 사치를 부릴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저러나 이번 여행은 진짜 서바이벌인가?
종일 굶다 먹은 치즈 얹은 빵은 갓 지은 밥에 김치를 얹어 먹는 맛이었다.
한 마디로 꿀맛이었다.
터키에서 불가리아로 막 국경을 넘어왔을 때였다.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돈을 내야 했다.
불가리아 돈이 있을 리가 없어 내야 하는 불가리아 돈보다 액수로는 20배쯤 많은 터키 돈을 보여주며 어떻게 안 되겠냐고 사정을 하니 화장실을 지키는 늙은 여인이 단호하게 노우를 외쳤다.
”여기는 불가리아 야. 불가리아는 리라가 아니라 레프를 써 “
그래 누가 그걸 모르냐고.
정말 급했으면 나에게 인류애를 발하는 불가리아인을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참기로 했다.
그녀.
화장실의 출입을 관장하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그녀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커다란 매부리코에 주름이 가득한 마른 얼굴, 듬성듬성 빠진 머리에 이빨이 없어 안으로 말려 들어간 입술.
옛날 동화책에 나오던 전형적인 마녀를 닮은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힘줄이 튀어나 온 팔은 남자처럼 강해 보였고 담배를 피워 무는 모습은 역전의 노장 같아 보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여성성은 하나도 남지 않은 그녀는 종일 화장실 앞을 지카며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궁금했다.
그러다 그녀의 웃는 얼굴을 봤다.
아주 잠깐 어떤 남자와 얘기하며 웃을 때 그녀의 과거에 빛나던 한때가 있었겠구나! 싶었다.
순하고 부드러운 단면이 아주 슬쩍 비쳐 보였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아직 만나지 않은 불가리아를 생각했다.
꼬박 10시간을 달려 늦은 밤 소피아에 도착했다.
환전을 하지 못해 어두운 밤거리를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