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여섯 친구의 특별한 공동체 생활
에디터. 김윤선, 박종우 사진. 노경, 최진보 자료.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자다 부스스한 머리로 함께 아침밥 지어 먹기, 퇴근 후 둘러앉아 소소한 대화 나누기, 흘러간 1990년대 가요에 맞춰 다 같이 막춤 추기···. 흡사 청춘 시트콤에 나올 법한 유쾌한 장면이 펼쳐지는 이곳은 건축주인 패션 디자이너 이명신을 주축으로, 그의 남편 건축가 손진원, 오랜 친구인 건축가 박여진과 비주얼 디렉터 박진선, 회사원 전환균, 음악가 김윤호가 모여 사는 집이다. 어느 토요일 아침, 햇빛이 가득 드는 테라스에서 여섯 친구들과 이 집을 설계한 비유에스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이하 비유에스)의 박지현 소장, 조성학 소장을 만나 이들의 특별한 공동체 생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명신 특별한 계기나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돌이켜보니 생각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따라갔던 것 같아요. 땅을 매입할 당시에는 신축을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죠. 1년 이상 어떤 집을 지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건축가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예전에 꿈꾸었던 집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고,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모여 살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원래 있던 박공지붕 집을 단독주택으로 리모델링하려다 신축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갑자기 규모가 커진 탓도 있었죠.
박여진 그 바람에 같이 살고 있던 저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예정이었던 진선까지 다 같이 모이게 됐어요. 사실 저희 셋은 물론이고 지금 여기 모인 친구들이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었어요. (웃음) 명신과 연애하던 진원도 거의 매일 봤고, 환균도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박지현 저희는 원래 서촌에 있는 한옥에서 집과 사무실을 겸해 살고 있었는데, 주인 분 사정으로 집을 빼야 했거든요. 마침 1~2층이 근린생활시설이었고, 사무실은 물론 저와 조성학 소장의 방 두 칸이 들어갈 만한 자리가 보이더군요. (웃음) 명신도 흔쾌히 응해주어서 공사 중간에 설계를 바꿨죠.
이명신 말하자면 길어요. (웃음) 진선과 저는 현재 같이 회사를 운영하는 동업자이자 친구예요.
박진선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친해졌죠. 여진과 저는 고등학교 친구고요.
박여진 대학 때부터 서로 잘 알고 지냈고, 집 짓기 전까지는 명신이랑 둘이 같이 살았죠.
손진원 여진과 지현은 저와 같은 회사 출신이에요.
조성학 그 회사에서 제가 두 달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고요. (웃음)
이명신 환균은 어떻게 친해졌더라?
전환균 기타 교습소 다닐 때 알게 됐지.
박진선 저와 윤호는 베를린에서 유학하다 만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같이 살게 됐어요.
박여진 저는 서른 살까지 부모님과 아파트에 살았어요. 다양한 집을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다른 집에 대한 갈급함이 늘 있었죠. 제가 독립을 준비할 즈음 진선은 한 원룸에 살았는데, 너무 좁았어요. 이참에 넓은 집에서 같이 살자고 꼬셔서 이태원에 한 다가구주택을 찾았죠. 예산을 초과하는 데다 되게 낡은 집이었는데도 거길 택했던 건 작은 테라스가 있어서였어요. 거기서 파티도 참 많이 했어요.
박진선 몇 달을 걸려 찾은 집이었죠. 저도 신도시 아파트 생활을 오래 했어요. 그러다 독립해서 홍대 근처에 5평짜리 풀옵션 원룸에 살았는데, 세탁기 문을 다 못 열 정도로 좁았어요. 그 집에선 가스레인지를 켜본 적도 없어요. 사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돼 한창 일에 집중할 때라 바쁘기도 했지만, 좁고 답답해 집에서 뭔가 할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고요. 여진과 집 구할 땐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집을 찾았어요.
박여진 안전도 중요한 문제였는데, 오피스텔 같은 곳은 너무 많은 익명의 사람이 모여 있어서 오히려 더 위험하게 느껴졌어요. 반면 다세대, 다가구주택은 세대 수가 적으니 서로 다 알 수 있고, 잘 몰라도 눈인사 정도는 하는 분위기라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 같았죠. 다음 집은 경리단길 근처 1969년에 완공된 아주 오래된 아파트였고, 거기에서 이 집 짓기 전까지 명신과 같이 살았어요.
이명신 여진이 진짜 재밌게 살아요. 취미도 많고, 친구도 많고. 인생을 즐기는 법을 아는 사람이죠. 저는 여진 만나기 전까지 엄청난 워커홀릭이었어요. 주말에도 스트레스 받으면서 계속 일하고. 그래서 진선이 유학 가면서 저를 여진에게 맡겼죠. (웃음)
박진선 “명신 좀 부탁해. 같이 살면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떻게 쉬는지, 노는지 좀 알려줘.”
박여진 토요일에 기타 배우러 교습소에 같이 다녔는데, 겨우 1시간인데 그 시간을 못 내더라고요. 제가 맨날 그랬어요. “명신, 잠깐만 멈추고 와.” 그러면 기타 배우고 다시 회사 가곤 했죠.
이명신 그때 급속도로 노는 방법도 배우고 사회성도 길렀어요. (웃음)
전환균 저는 이태원에 있는 한 단독주택에서 살았어요. 윗집은 주인 할머니가 사시고, 그 아랫집에서 친한 형들과 셋이 살았죠. 집에 큰 차고가 있었는데 주차만 하기에는 아깝더라고요. 친구들이 집에 자주 놀러 오기도 해서 아예 차고를 포장마차처럼 꾸몄어요. 시멘트 부어서 바닥도 평탄하게 만들고, 인조 잔디도 깔고, 천막도 두르고, 테이블도 놓고.
손진원 진짜 제대로 놀아요, 저 둘은. 포장마차처럼이 아니라 진짜 포장마차였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기웃대면서 물어봤어요. 술 파는 곳이냐고. (웃음)
전환균 그러다 기타 교습소에서 이 친구들을 알게 됐고, 알고 보니 집도 근처라 모여서 자주 놀았어요. 그때 여진과 명신이 우리 집 이름을 ‘이태원 그 집’이라고 지어줬어요. 사실 여진이 제 ‘놀 모델’이에요. 롤 모델 아니고 놀 모델. (웃음) 제 놀 모델을 따라 후암동까지 왔죠. 여기서도 그때처럼 1층 필로티 아래서 캠핑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고 그래요. ‘후암동 그 집’이죠.
이명신 처음 동네를 봤을 때 느낌이 참 좋았어요. 골목마다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풍경이 특히 마음에 들었죠. 오랜 정취가 묻어 있는 적산가옥과 크고 오래된 나무, 이탈리아 마을 같은 로터리, 남산 타워··· 파리 생투앵 빈티지 거리가 떠오르는 골목도 있죠. 일명 ‘후암 8경’이라고 저희만 아는 아름다운 곳이 몇 군데 있어요. 동네에 연고가 없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있어 안정감이 생겼죠.
박진선 높은 건물이 없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옛날 동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점도요. 어르신들이 항상 골목에 나와 계셔서 그런지 안전한 느낌도 들고요. 이명신 또 하나 독특한 건 다양성이 있는 동네라는 점이에요.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나이도, 인종도 다양해요. 프랑스 사람이 빵 만드는 집, 호주 사람이 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어요.
조성학 하교 시간에 여러 인종의 친구들이 같은 교복 입고 삼삼오오 걷는 풍경이 이색적이에요.
박지현 여긴 명절 때가 더 붐벼요. 동네 토박이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이 동네가 고향 집이자 큰 집이라 각지에서 온 차들로 학교 운동장이 완전히 주차장이 돼요. 서울이지만 시골 같아요.
손진원 집 앞에 화분이나 벤치도 많이 놓으시는데, 각자 소유지만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있어요. 동네 할머니들이 지나가다 마른 풀 있으면 뽑아주시기도 하고, 일요일마다 동네 쓰레기 치우는 자원봉사자분들이 계실 정도로 동네에 애정 있는 분들이 많으세요. 이명신 그렇다 보니 오랫동안 여기 있었던 집을 허물면 일종의 상실감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저희도 살기 좋은 집이면서 동네 분들이 보기에도 좋은 집을 짓자고 마음먹었죠. 보답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마음이 사실 건물 밖에 심은 식물에 담겨 있어요. 입주 후에 저희가 다 같이 직접 심었어요.
이명신 집마다 테마가 있어요. 4층은 차와 가드닝gardening을 즐기는 부부의 집, 5층은 아티스트의 집, 3층 여진네 집은 바bar, 환균네 집은 캠핑남의 집. 비유에스는 관리사무소. (웃음)
박여진 입주하고 몇 주간 감동의 연속이었어요. 가구 수납부터 동선까지 모든 게 저에게 맞춰져 있으니까 엄청 편리하고 삶의 질이 올라가더라고요. 우리 집은 테라스를 기준으로 침실과 거실 겸 주방을 분리한 게 큰 특징이에요. 그건 비유에스가 제안해줬는데, 지금도 제일 만족하는 부분이죠. 거실과 주방이 같이 있으면 보통 공간을 넓게 쓰려고 싱크대를 벽에 붙이는데, 저는 거실에서 싱크대가 보이는 게 싫어서 아일랜드island형으로 만들었어요. 술 마시는 바bar처럼요. 여유 공간은 좁아져도 그게 훨씬 더 쾌적해요. 테이블에 앉은 사람과 대화할 수도 있고요. 테라스는 지붕이 둥근데, 굳이 왜 그렇게 했을까 싶었거든요. (웃음) 가끔 누워서 보면 하늘이 둥글게 보이는 게 신의 한 수예요. 정말 예뻐요.
박지현 여진네 집이 일종의 ‘앵커 시설’이에요. (웃음) 거기에서 친구들이 자주 모이더라고요. 전환균 한번은 모여서 이런 얘길 했죠. “이럴 거면 한 집으로 크게 짓지, 왜 집을 네 개로 나눴어?” (웃음)
박진선 공유주택 맞아요. 비밀번호도 서로 다 알아요.
전환균 ‘비번 공유 주택’이죠. (웃음) 박진선 가끔 가전제품이나 가구도 공유해요. 여진네 집에 유일하게 전자레인지와 건조기가 있어서 자주 빌리러 가요. 손님 오면 의자도 빌리고.
이명신 “모든 걸 다 각자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 얘길 많이 했죠. 박여진 자주 쓰지도 않는 가전제품을 각자 가지고 있는 건 낭비라고 결론 내렸어요. 이 집은 전자레인지, 이 집은 믹서기, 이 집은 에어프라이어··· 이렇게 살림을 나눠 쓰기로 합의했죠. (웃음)
전환균 경리단 집에서 여기로 이사할 때 이삿짐센터를 안 불렀어요. 퇴근길 배낭에 가구를 접어 넣어서 마을버스 타고 옮겼죠. 그렇게 네 번 하니까 이사가 끝났어요. 처음에 건축주님··· 우리 ‘주님’께서, (웃음) 붙박이장 넣어줄까? 냉장고 넣어줄까? 하면서 신경을 많이 써줬어요. 평소에 집에서 쓰다가 캠핑할 때도 들고 갈 수 있는 가벼운 가구로 채울 생각이라 필요 없다고 했죠. (웃음)
이명신 사실 이상한 거 갖다 놓을까 봐, 그게 보기 싫어서 그랬지. (웃음) 빌트인으로 다 맞춰서 넣어준다고 했는데, 싫다더라고요. 언제라도 집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분이라···
박진선 베를린에 있을 때, 지금 이 집처럼 원룸형에 층고가 높은 집에 살았는데 속이 너무 시원하더라고요. (웃음) 특별히 큰 옷장도 필요 없었어요. 옷가게처럼 옷걸이에 듬성듬성 여유롭게 걸어 놓는 걸 좋아하거든요. 처음에 주방은 싱크대를 벽에 붙여서 거실 공간을 넓게 쓰자는 계획이었는데, 주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좋지만, 주방이 너무 좁아지고 화장실을 갈 때 언제나 주방을 거쳐 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더라고요. 그러다 거실과 주방을 통합해 싱크대를 가운데에 길게 놓고, 그 옆에 테이블을 두어 카페처럼 작업도 하고 쉴 수도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이 문제로 다 같이 회의를 많이 했죠.
박여진 명신이 자기 집 고민 제쳐두고, 계속 501호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어요. (웃음)
이명신 제가 같이 살자고 했는데 불편할까 봐 마음이 많이 쓰였죠. 다 같이 만족하면서 잘 살고 싶어서. 박진선 작업 공간에 대해서도 명신이 아이디어를 많이 냈어요. 원래 윤호가 런던에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귀국하면서 기존에 휴식 공간으로 쓰려 했던 곳을 급하게 작업 공간으로 바꿨거든요.
김윤호 저는 주로 집에서 일하는데, 원룸이지만 공간이 분리되어 있고 무엇보다 낮게 벽을 둘러 작업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아요. 진짜 DJ 부스는 아니지만, 음악 틀어달라고 다들 자주 올라와요. (웃음)
이명신 업무상 해외 출장이 잦아서 에어비앤비를 통해 특이한 집을 많이 경험해봤어요. 층고가 높은 집, 구조가 특이한 집, 테라스가 넓은 집··· 짧게나마 다양한 집에 살아보면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원하는 모습을 조금씩 담아왔었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빛이에요. 큰 창과 넓은 테라스에서 바깥 공기와 햇빛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집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죠. 무엇보다도 남산이 있어 계절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요. 가끔 남산타워를 볼 때면 프랑스 출장 갔을 때 에펠탑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도 떠오르고요.
손진원 집 안 어느 한구석 빛이 들지 않는 곳이 없어요. 비나 눈이 올 때도 운치가 있고요. 둘 다 가드닝을 좋아해서 테라스에 식물이 계속 늘어나고 있죠.
박여진 패션 디자인을 하는 친구들답게 취향도 예민하고 보는 눈도 남다른데, 건축가와 소통에 갭이 있었거든요. 제가 통역사 내지는 중재자 역할을 했죠. 그런데··· 너무 힘들었어요. (웃음)
박지현 처음에 대화의 출발점이 좀 달랐는데, 옷을 예로 들자면 명신은 단추에서 시작하는 반면, 저희는 형태에서 시작하는 식이었죠. 그런 걸 조율해주는 역할을 여진과 진원이 해줬어요.
조성학 그 둘이 없었다면 중간에 어떻게 됐을지··· (웃음)
이명신 보통 건축주가 건물 짓는 걸 처음 해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두 번 세 번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저도 처음이다 보니 건축에 대한 이해나 정보가 별로 없었어요. 건축가와 사고방식도 다르고 세세한 과정을 잘 몰라서 답답한 부분이 많았는데, 남편과 여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이건 왜 이렇게 못하느냐”라고 물으면 “안돼. 그건 비유에스가 맞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서운한 적도 있었지만 왜 안되는지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훨씬 납득하기 쉬웠죠.
박여진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도면을 직접 캐드로 그려서 보여준 적도 있어요. (웃음)
손진원 여진도 저도 현업에서 항상 건축가 입장이었지, 건축주 입장이 되어 본 적은 없어서 그 경계선에 있는 느낌이 묘했어요. 이명신 난 오빠가 건축가 쪽에 더 가깝다고 느꼈는데? (웃음)
손진원 아니야. 난 상당히 중립적인 입장이었어. (웃음) 저로선 건축주의 생각과 입장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명신 건축주가 집을 지을 때 10년 늙는다고들 하는데, 건축가를 비롯해 친구들이 다 같이 나눠 늙은 것 같아요. (웃음) 다른 건축주에 비해 고민을 많이 덜었죠. 비유에스가 어려웠던 점은 건축주가 많았던 점, 그러니까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던 점일 거예요. 제가 취합을 해서 말하고 싶지만 각자 개성이 넘치고 원하는 부분이 많아 그게 잘 안됐죠. 비유에스에게 아주 힘든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이명신 다가구주택에서 건축주가 사려 깊게 한 집, 한 집 생각하는 건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죠. 오히려 그걸 거주자에게 맡기고 선택권을 주니까 각자 적극적으로 고민을 해줬어요. 심지어 쓰레기통 위치까지 고민한 흔적이 남아 있죠. 덕분에 고유의 취향이 느껴지는 개성 있는 집이 나온 것 같아요. 그런 집이 진짜 좋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걸 시도할 때마다, “나중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살게 되더라도 이 공간을 좋아할까?”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서울 하늘 아래 누군가는 이런 집을 마음에 들어 할 거고, 그런 사람이 집을 더 아끼고 사랑할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손진원 결국 일반적이지 않더라도 각자의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공간을 만드는 게 지금도, 나중에도 훨씬 좋을 거라고 판단했죠.
이명신 나중에 새로운 사람이 오더라도 취향이 비슷하고 결이 맞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애초에 집을 지은 이유가 서로 소통하고 모이는 커뮤니티가 중요했으니까요. 아는 사람이나 친구라면 더 좋겠죠. 저희끼리 가끔 관리비나 개선 사항에 대해 토론하면서 나름의 주민 회의도 하거든요. 그런 커뮤니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집으로 계속 남았으면 좋겠어요.
이명신 지금은 제가 결혼을 했지만 원래 이 집의 콘셉트는 ‘결혼하지 않은 싱글과 커플이 모여 사는 집’이었어요. 집이 지어지기 전, 후암동 시세로 전세금을 책정하면서 그런 얘길 했었어요. ‘살고 싶은 만큼 살 수 있고, 전세금은 인상하지 않겠다. 다만 결혼을 하면 나가야 한다.’ (웃음) 전혀 모르는 배우자가 이 집에서 함께 살 수도 있는데, 커뮤니티 일원이 될 수 있을지 판가름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 이유로 재미있지만 나름 진지한 특약사항이 있었죠.
박진선 저와 윤호는 비혼 커플이에요. 결혼식을 올릴 생각은 별로 없고, 앞으로도 이런 형태로 함께 지내고 싶어요. 지금이 좋아요.
박여진 저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반드시 결혼하겠다는 생각도 없어요. 연애는 하겠지만 굳이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못 느껴요. 지금의 삶이 정말 좋거든요. 제가 만약 오피스텔에 혼자 살았다면 너무 외롭고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을 것 같은데, 이 집엔 친구들이 항상 함께 있으니까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랄까. 흔히들 결혼하면 안정감을 느낀다잖아요. 저는 이 집에서 그런 안정감을 느껴요.
박여진 2025년이면 다 40대인데, 다들 아파트로 가 있는 거 아니야?
박진선 역시 아파트가 최고야! 이러면서.
전환균 이왕이면 한강 보이는 아파트가 어떨까?
일동 (웃음)
이명신 지금 임신 중인데, 아기가 태어난 후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공간을 어떻게 써야 하나 싶고.
박여진 우리가 같이 아기를 돌봐주면 명신이 여기에서 오래 살겠다고 했어요. 공동 육아 가능할까?
김윤호 영어 알려주는 삼촌, 기타 알려주는 이모.
이명신 돈 열심히 벌어서 나중에 더 큰 집을 짓자는 얘기도 했어요. 이 집은 어쩌면 저희의 30대를 위한 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이렇게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 살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오겠어요. 무척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죠.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재미있게 살면서 우리의 40~50대 중년을 위한 집, 그 이후 노년을 위한 집을 생각해보려고요. 죽기 전에 한 세 채 정도? (웃음) 저만의 라이프사이클에 따라서 집을 짓고 싶어요. 그래서 건축가 남편과 결혼한 것일 수도 있어요. (웃음)
손진원 다음번엔 제가 직접 설계해보려고요. (웃음)
박여진 나에게 잘 맞는 집. 내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는 집. 너무 식상한가요? (웃음) 아무튼 저한테 잘 맞는 이 집이 저에게는 지금 가장 좋은 집이에요.
이명신 중간에 공사비가 꽤 많이 늘어났어요. 예산에 맞추려면 어느 정도 포기하는 부분이 필요한데, 어느 것 하나 쉽게 포기가 안 되더라고요. 만족할 만한 집을 지으려면 내게도, 건축가에게도 너무 빡빡한 예산은 힘들겠구나 싶었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현실적인 준비가 되어 있어야 실현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온전히 내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반영한 집을 지을 수 있고, 그런 집이 결국 좋은 집이겠죠? 또 한 가지는 이 집에 살면서 느꼈는데, 누군가는 항상 집에 있다는 거,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늘 집에 있다는 게 심적 위안을 주더라고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집.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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