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현 건축가가 말하는 ‘신화리 주택’
에디터. 박경섭 사진. 최진보, 김주영 자료. 에이라운드 건축 a round architects
박창현 건축가는 건축가를 인터뷰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직접 동료 건축가들을 인터뷰하고, 때로는 비평을 하는 그가 자신의 건축에 관해 말할 때는 어떤 모습일까. 신화리 주택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건축의 기능과 비기능, 그 사이 제로의 기능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에이라운드가 관심있는 카테고리로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재료예요. 에이라운드는 사람과 공간, 건축 사이 접점을 만드는 데 감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해요. 최근에는 시간의 흐름을 담아낼 수 있는 소재와 재료에 주목하고 있고요. 예를 들어 문손잡이에 가죽을 덧대어 보는 식으로요. 일반적이지 않은 작업이다 보니, 수작업을 많이 필요로 하죠. (웃음) 핵심은 그런 장치들을 통해 공간이 자연스레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데 있어요.
두 번째는 관계예요. 그간 주거 공간 프로젝트를 많이 해왔는데, 집을 공유하는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공간 차원에서 어떻게 해석할지 늘 고민이었어요. 사람 사이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건물 사이 관계 역시 마찬가지로 집중하고 있는 영역이죠. 관습적인 해석을 답습하기보다 늘 새로운 제안을 해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이 두 가지가 근래 흥미를 느껴 탐구해 온 부분인데, 아무래도 기능적 요소를 강조하거나 특이한 매스를 지향하는 작업에 관한 관심은 많이 떨어졌어요. 그보다는 빛이나 자연 같은 외부 요소와 공간 내부의 쓰임새를 짜임새 있게 가져가는 작업에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작업하는 방식에서 생기는 특징도 있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마다 담당 스태프 한 명을 배속해서, 해당 담당자가 전체 과정을 총괄하게 해요. 건물의 퀄리티는 담당자의 성향, 책임건축가인 제 판단, 클라이언트의 스타일, 시공사의 기술 수준 등이 합쳐져서 종합적으로 결정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담당자의 리드가 중요하거든요. 조직문화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어요. 사고방식이나 의사 결정 과정이 열려 있어야만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니까요. 에이라운드가 맡아 진행한 여러 프로젝트가 조금씩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맞아요. 같은 소재와 같은 기능의 물건이라도 쓰는 이의 특성을 생각하다 보면 달라지는 지점이 생기거든요. 동일한 색이라도 바탕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잖아요. 물론 모든 것을 건축주에 맞춰 따로 제작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지점에서는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해요. 예컨대 촉각과 관련된 것들 있잖아요. 시각적인 것보다 손과 발이 닿는 것에 특히 더 공을 기울이죠. 후각적인 부분도 마찬가지고요. 아까 이야기하신 것처럼 문손잡이에 가죽을 덧댄다거나, 중정을 조성할 때 나무와 식물 사이 향의 조합을 체크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조경의 경우, 계절이 적극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수종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열매가 맺히고 새가 찾아들고, 꽃이 피는 과정에서 거주자와 공간 사이 소통이 활발해지거든요. 연결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고리가 더 많이 생길뿐더러,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지죠.
정말 동의하는 이야기예요. 홈페이지에 현재 스태프들, 이전에 근무하였던 분들, 인턴 학생들 이름까지 다 기록하고 있어요. 저는 어떤 지점에서는 프로젝트 결과물보다 이 기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는 여러 변수에 따라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하기도 하지만, 에이라운드를 함께 만들었던, 만들고 있는 이들을 기록하는 일은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게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소중한 부분이고요.
조금 특이한 케이스이긴 하죠. 오랜 친구 관계인 두 부부가 마침 같은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 거예요. 첫 아이들끼리 동갑내기 친구가 됐고요. 함께 육아에 대한 고민을 나누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에 집을 짓고 살자고 의기투합 한 거죠. 마침 첫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집을 지어 대전에서 양평으로 이사하게 된 경우예요. 신화리 주택이 위치한 동네는 양평으로 이주해 단독 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에요. 부근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아이들도 많은 편이고요. 에이라운드는 지인의 추천으로 와보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신화리 주택은 굽은집과 갈래집으로 나뉘어요. 각각 30평, 31평 규모의 집이에요. 60평 규모의 집 한 채를 짓는 것과 30평 규모의 집 두 채를 짓는 일은 전혀 다른 수준의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죠. 나름 경제적으로 지은 집인데, 재미있는 부분이 많은 집이죠. 일단 생김새와 이름이 땅의 모양에서 나왔어요. 중앙 마당을 중심으로 대지 양 끝에 집을 위치시키다 보니, 하나는 굽어지고 하나는 갈라지게 되었죠.
굽은집은 중심이 없어요. 시작과 끝만 있는 선형적 구조의 집이죠. 다만 살짝 굽히긴 했지만요. 반면 갈래집은 확실한 중심이 있죠. 그 중심에서 뻗어 나간 방향성이 있어요. 어떤 게 더 살기 좋고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될 부분은 아니에요. 성향이 다르니까요. 건축 어휘나 재료는 모두 동일해요. 벽과 문, 주로 사용된 재료, 빛을 들이는 방식 등은 모두 같죠. 다만 실질적인 공간의 쓰임새가 다른 것뿐이에요.
초창기 설계안은 두 개였어요. 굽은집과 갈래집으로 나뉘는 현재 모습은 alt 1 모델이에요. alt 2 모델은 직접 보셔야 이해가 빠르실 거예요. alt 2는 급수와 배수를 위한 최소한의 고정 공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열려있는 구조예요. 하나의 지붕 아래에서 각 실이 별도의 벽으로 구분되어요. 실과 실 사이는 외부 공간으로 조경의 영역이고요. 쓰는 방식에 따라 두 가족이 아니라 세 가족이 살 수도 있고 한 가족이 모든 공간을 다 사용할 수도 있겠죠.
신화리 주택 설계안을 고민하면서 두 집 사이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 중요했어요. 그 과정에서 아예 공간 사용에 관한 선택권을 설계자인 에이라운드가 아니라, 거주자들에게 주자는 생각이 들었죠. alt 1과 alt 2 모두 그런 생각을 바탕에 두고 있어요. 최종적으로 선택된 alt 1에서는 링크 스페이스Link Space라는 공간을 통해 거주자들이 공간의 쓰임새를 자유로이 정하게 했죠. alt 1과 alt 2 모두 방향성은 동일해요. 설계 영역에서는 공간의 크기와 비례, 급수와 배수가 이뤄지는 부엌과 화장실 위치 같은 최소한만 정하고, 나머지는 거주자가 알아서 선택하게 했어요.
사실 alt 1을 선택할 거라고 짐작하고 있기는 했어요. alt 2는 경계에 관한 고민을 굉장히 실험적으로 풀어낸 안이었거든요. alt 1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긴 했지만, alt 2에도 큰 관심을 보였어요. 건축주들이 옷을 만드는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분들이라, 그에 맞춰서 실험적인 안을 보여드린 것도 있어요. 노년의 시기를 맞이해 은퇴 후 삶을 준비하는 분들이 왔다면, 제안했을 모델은 아니죠. (웃음)
alt 1으로 방향이 정해지면서 시작된 고민은 거주자들 사이 관계에 관한 거였어요. 신화리 주택은 집 자체가 가족 관계를 재편성하는 지점이 있어야 했거든요. 굽은집과 갈래집에 사는 두 가족들이, 혈연으로 묶인 가족 관계는 아니지만, 함께 공간과 곁을 나누는 식구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신화리 주택은 무척 재미있는 작업이었죠.
alt 1 모델에 기초한 현재 구조에서 링크 스페이스는 신화리 주택에서 유동적 공간성을 만드는 중요한 영역이에요. 붙박이장 가구의 문이자, 벽의 기능을 하는 판의 움직임에 따라 모양새가 바뀌는 공간이에요. 판으로 양 끝 공간과 완전히 분리하면 제3의 방이 나오고, 판을 벽에 붙이면 끝과 끝을 잇는 통로가 되어요. 판을 완전히 닫지도 열어두지 않으면, 통로와 방 사이의 모호한 공간이 되고요. 기능이 없음으로써 기능하는 영역인데, 비기능과는 다른 개념이에요.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제로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퍼즐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퍼즐을 맞출 때 피스 한 조각을 옮길 수 있으려면 반드시 비어있는 곳이 있어야 해요. 그 비어있는 지점 하나가 전체 구조의 숨통을 틔워주는 동시에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거예요. 말했지만 링크 스페이스는 별다른 기능이 없는 곳이에요. 기능적 특성이 뚜렷한 공간은 링크 스페이스 양 끝에 붙어있죠. 그런데 기능적 공간이 바로 이 링크 스페이스를 통해 연결됨으로써 전체 공간이 완성되어 돌아가요. 바로 이 지점에서 제로의 기능이 작동하죠.
건축 과정에서 설계자가 공간을 구분 짓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잖아요. 여긴 부엌이고, 저긴 침실이고 그 사이 공간은 거실이라는 식으로요. 생각해보면 되게 이상해요. 부엌, 침실, 거실 같은 단어는 어디서 나온 것이며, 왜 그 단어로 공간의 성격을 규정지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기능으로 공간을 명명하고 싶지 않았어요. 기능적 특성으로 이름 붙여진 공간은 그 이름에 의해 기능이 제한되어 버리거든요. 거주자들이 공간을 바꿀 여지가 사라지죠.
유동적인 공간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거주자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었어요. 링크 스페이스라는 공간을 구성하게 된 동력이 되기도 했고요. 신화리 주택에서 에이라운드는 설계자이지만, 최대한 결정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 공간에서 살 이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으니까요. 공간의 성격, 기능, 형태 등 모든 면에서요.
굽은집과 갈래집 가족 모두 옷을 만드는 일을 하는 분들인 만큼 패브릭 소재가 친숙한 분들이죠. 친숙한 걸 넘어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고요. 집 내부 공간이 조금 더 입체적인 물성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구를 모두 벽 쪽으로 몰아, 가구의 문이 벽을 겸하도록 했죠. 문이자 벽에 하나하나 마 소재의 패브릭을 씌웠어요. 페인트로 칠해진 벽과 비교했을 때, 텍스쳐를 느낄 수 있는 입체적인 구조물인 셈이죠. 패브릭 소재이다 보니까 시간 흐르면 당연히 더러워지겠죠. 더러워진 부분을 닦으면서 닳는 부분도 생길 테고요. 거주자들의 삶의 시간, 일상의 순간이 집 내부에 자연스레 묻어나는 거예요.
건물 형상이 정해지고 난 뒤에 지붕 모양은 다소 자유롭게 구상했어요. 반면 조경 영역은 건물을 부드럽게 감싸는 모양으로 만들자는 방향성을 가지고 접근했죠. 각지고 단단한 콘크리트 건물 분위기를 조경을 통해 누그러뜨리고 싶었어요. 외부와 집이 맞닿는 경계 부분에 마운딩을 조성함으로써 자연스럽고 완만하게 경계 지어 봤는데, 아이들에게는 놀이터 기능도 있어요. 신화리 주택이 아이들이 편히 바깥에서 놀기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곳이다 보니까 당연한 일이겠죠. 마운딩 안에 파이프를 삽입한 것도 아이들에게 놀이와 탐험의 장소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어요.
스케일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면도 있지만, 상대적인 차원에서 체감되는 것도 커요. 원래 큰 스케일감의 공간에서 자란 이들은 스케일감의 변화에 무뎌요. 반면 자라난 공간의 스케일감이 작은 이들은 본인의 성장에 따라 공간의 스케일감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죠. 먼 미래에 아이들이 추억으로 간직할 집의 첫인상이 자라고 난 뒤에 느낄 인상과 다르기를 바랐어요. 예를 들어 아이들과 마당의 나무는 점점 자라되, 집의 공간은 예전과 동일해서 스케일감이 점점 작게 느껴지길 원한 거죠. 건물의 인상 역시 고정된 게 아니라 시간과 함께 계속 바뀌도록요. 그 때문에 공간을 설계할 때, 거대한 부분 속에 작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어떤 지점에 집어넣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 지점이 두 부부가 요구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어요. 아파트와는 다른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요. 두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그럼 반대로 아파트는 어떤 공간인지 살펴보았죠. 말씀하신 것처럼 아파트는 세대별로 평면이 대동소이해요. 굽은집과 갈래집의 생김새나 구성을 달리한 이유죠. 또 아파트는 바닥과 천장이 수평을 이뤄요. 수평 관계의 두 면인 거죠. 신화리 주택에서는 지붕과 천장 형상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수평 관계에서 벗어나게끔 했어요.
또 아파트에서는 내가 쓸 수 있는 외부 공간이라는 게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처마를 길게 빼고 다양한 방향으로 출입구를 뚫었죠. 처마 밑 공간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처마가 있는 집과 없는 집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커요. 공간의 활용도나 분위기를 많이 변화시키죠. 처마를 만드는데 생각보다 꽤 품이나 비용이 들어간다는 게 문제이지만요. (웃음)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공간이 사람을 기른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벽으로 막혀 있는 획일화된 공간이 아니라, 직접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을 경험하면 교육적으로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링크 스페이스, 마운딩, 처마, 그리고 자연의 풍요로운 공간감을 느끼며 자란다면 훨씬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자라나지 않을까요.
그 지점에서 중앙 마당 영역이 중요해요. 마당은 두 집이 만나는 중립 공간이거든요. 갈래집의 현관문을 설계할 때, 의도적으로 마당 안쪽으로 끌고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동선이 길어지면서 마당을 가로질러 집을 오가다 보면 굽은집 가족과 동선이 겹치거나, 시선이 마주치는 일이 생길 테니까요. 접점이 늘어나는 거죠. 신화리 주택뿐만 아니라 공용 주택의 공용 공간을 설계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에요. 동선을 일부러 길게 만들거나, 돌아가게끔 하는 거죠. 효율성을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러 명의 거주자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서는 시도해볼 만한 일이죠.
저는 주택을 비롯한 건축이 시대의 변화와 필요에 따라서 계속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계자로서 나름의 의지와 행동을 바탕으로 만든 집이 아니라, 건축주의 요구 조건만을 가이드라인 삼아서 만든 획일적인 집은 좋은 집이라고 보기 힘들어요. 시대적 변화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설계자로서 제안해야 한다고 봐요. 설령 나중에 그 제안이 그리 좋은 제안이 아니었다고 이야기되더라도, 일단 제안이 있어야 다음 과정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니까요. 공간은 사람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어요. 어쩌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그리 좋지 못한 공간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반성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건축가의 제안이 거주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인 것은 아녜요. 그 당시에는 아무리 좋아 보였던 아이디어와 설계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점 뒤에 숨어 있던 불편한 점이 나오게 되잖아요. 이런 부분은 살면서 변화시켜야죠. 옛날처럼 어떤 선생님께서 남긴 작품이니 손톱 하나 바꿔서는 안 된다는 건 지금 시대와 맞지 않다고 봐요. 변화는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다만 그 변화에 대해 거주자와 건축가가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죠.
우리는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공간에 의한 변화를 겪어요. 집을 예로 들면, 집은 매일 같이 자고 머무르는 곳이잖아요. 매일 사용하는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사고나 행동이 바뀔 것이고요. 형태나 기능에 대한 의심이 그래서 필요해요. 의심이 있어야만 자신만의 해석과 제안이 나올 수 있거든요. 우리 사회에서 집과 공간에 관한 이야기가 아파트 위주에서 벗어나 더 다채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돈으로만 이야기되잖아요. 어떻게 하면 더 싼 가격으로 더 큰 평수를 펼칠 수 있는가만 계속해서 이야기한다면, 삶과 공간 사이 접점은 점점 옅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일상과 경험의 공간으로서의 집, 그 지점을 바탕으로 건축가들의 의심이 시작되기를 바라요.
*책 자세히 보기 https://magazine.brique.co/book/vol-4-2/
<브리크 brique> 더 많은 사진과 원문 보러가기 : https://bit.ly/3ePcs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