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퇴직금을 받았다.

by 송이

내 소개를 하자면 모두가 그렇듯 나의 인생 히스토리는 참으로 복잡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를 만큼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지금의 31살 내가 되었고, 얼마 전에 대기업 계약직 사원증을 5년 만에 내려놓은 백수가 되었다. 하하


계약직의 세계에도 나름 시스템이 있다. 우선 파견업체 소속으로 들어가서 대기업에 파견직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2년 뒤 파견회사를 퇴사하고, 그제야 대기업의 계약직으로 소속된다. 난 처음부터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과 일하지만 그 절차라는 것이 그렇다더라. 파견직/계약직은 고용규정 상 2년 이상 고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퇴직금을 받게 된다. 이 때만 해도 '개이득'이라고 여기며, 그 해 여름 유럽여행 자금으로 잘 사용하였다.


계약직 역시 2년이 최대 근무기간이다. 그 이후 무기계약직이라는 정규직 비스무리한 것으로 전환이 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칼같이 퇴사 메일을 써야 했다. 내가 그 소수의 전환자가 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손도 빠른 편이고, 일머리도 좋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계약기간이 되기 전에 잠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지만 결국엔 엎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퇴직금이었다.


퇴사가 다가오자 난 오래된 장거리 연애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남자 친구를 따라 서울에 정착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대기업은 여러 계열사가 있어서 보통 계약직 여직원들은 퇴사 후 계열사만 2-3군데를 돌며 10년 넘게 일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신혼집에서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였지만 어리지 않은 30살에 생전 살아보지도 않은 서울에서 맨땅에 헤딩하기에는 너무 두려웠다. 또다시 나는 파견업체 소속의 대기업 파견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1년 만에 퇴직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겠다. 그동안 계약직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했고, 잘 적응하며 살았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계약직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작은 희망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왕복 3시간이라는 거리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시 그 희망이 엎어졌다.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계약직이니까. 내가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나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일을 동료 직원에게 전해 들었다는 점이다. 좋은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는 좋은 소식은 앞장서 말하던 팀장님은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참다못한 나는 면담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결국 나의 모자람을 탓하는 뿅망치 세례였다.


팀장님의 말에 상처 받아서 퇴사를 결정했냐고? 그건 아니다. 그저 이제는 왕복 3시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며 희망만으로 이 회사를 다닐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 근무 날 회사를 나서면서 크게 아쉬운 감정은 없었다. 나 역시 언젠가 끝이 있음을 알면서도 대기업 계약직을 5년 동안이나 뛰쳐나오지 않았던 이유도 분명 있었다.

진급, 연봉협상은 없었지만 또한 평가나 경쟁도 없었다. 상사의 평가에 자유로웠기 때문에 억지로 사회생활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내가 맡은 바를 열심히 일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하지 않아도 됐다. 난 계약직 사원이니까. 또한 나도 당신들한테 피해 주지 않을 테니 당신들도 나에게 '계약직' 그 이상의 일을 바라지 말아 주세요. 라는 나의 소심한 반항심일 수도 있다. 계약직이었지만 대기업의 복지의 대부분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내가 5년 동안 뛰쳐나오지 않았던 이유였다.


퇴사를 결정하기 전 회사를 탓하기도 해 보고, 팀장님을 탓하기도 해 보고, 더 나아가 이 시대를 탓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직접 제출한 지원서에는 '계약직'이 명확히 명시되어있었으며, 정규직 전환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퇴직금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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