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다 지나간다. 나무에 있어야 할 잎들이 바닥에 여기저기 누워있다. 어제 온 비에 낙엽들은 여고생 이마의 깻잎머리처럼 바닥에 바싹 붙어 있다.
이런 낙엽들은 내 국민학교 일기에 가끔 나오곤 했다. 전날에 놀다가 자서 아침에 부랴부랴 쓰던 일기. 새벽에 뭘 쓰겠는가? 마당에 있는 낙엽을 일기장에 넣어서 "가을에는" 이란 말로 시작하는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런 숙제로 썼던 일기들을 어머니는 6년 동안 모아 놓으셨고 나 결혼할 때 잊지 않고 주셨었다.
30년이 넘었기에 노랗다 못해 시커메진 종이들. 사진이 인쇄되어 있던 앞면은 반질반질 해지고, 뾰족했을 양 모서리들이 둥글둥글해졌다. 그래도 일기를 잘 썼었나 보다. 있는지도 몰랐던 자식 일기를 모아두셨으니. 그래도 6년 치 공책을 보면 나만의 역사가 있는 듯해서 마음이 든든해지고는 한다.
아이들도 일기를 썼으면 했다. 일기 써서 좋은 점이야 차고 넘치니까. 사춘기인 큰아들에게 일기를 쓰라고 하면 입이 더 튀어나올 듯하다. 요즘 초등학교도 사생활 침해라고 일기대신 일주일에 한 번 주제 글쓰기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온몸을 검은색 옷으로 가리고 다니는 중학생에게 하라고 한들 하겠는가.
대신 세줄 쓰기라도 하자고 했다. 잠시 쉬긴 했지만 다시 쓰자고 하니 별말 없이 적고는 한다. 고마웠다. 아들이 쓴 세줄 밑에 호들갑을 떨며 긴 댓글을 달아주고는 한다.
아들의 글을 보면 이럴 거면 하지 마라 라는 말이 입술 끝까지 도달할 때가 종종 있다. 삐뚤빼뚤 쓴 글자. 좋았다. 싫었다. 정도로 적혀 있는 감정 표현. 한숨이 나올 때도 있지만, 칭찬할 거리가 있는지 매의 눈으로 예리하게 째려본다.
7월에 처음 시작했을 때는, 심심하다. 배고프다. 할 일이 없다 등등 가슴을 칠 만한 단어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해볼까?라는 단어가 가끔 눈에 보인다. 이런 말이라도 적혀 있는 게 어딘가.
그 밑에다가 "오!!" "정말!!"이라는 말로 온갖 나의 관심을 표현해 준다. "해볼까?"가 "했다."로 바뀌기를 바라면서..
좌우여백과 칸은 무시하는 가지각색의 크기를 가진 아들의 글자들이 꼭 그의 마음 같다. 너도 참 고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