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에게 말했다.
"가방에 다 넣어서 와."
둘째는 너무나 당연한 듯 "응"이라고 한다. 내가 말한 거를 다 넣어서 왔을까?
지난주 가족들과 함께 강화도에 있는 형님네 집에 갔다. 하룻밤을 자고 하고 와야 하기에 내 노트북, 둘째 게임용 노트북, 태블릿과 전원 코드, 충전기 등을 가방 하나에 다 넣었다. 나 어렸을 때 놀러 가자 하면 옷을 먼저 챙겼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핸드폰과 충전기가 우선이다.
도착하자마자 방에서 자기 노트북만 꺼내 마인크래프트를 하던 둘째. 텐트로 짐을 옮겨야 하기에 둘째에게 가방에서 빼논 거 다 넣어서 잘 챙겨 오라고 했다. 조그만 몸으로 큰 가방을 낑낑 대며 들고 온다. 너무나 당연한 얼굴로 가방 다 챙겼다고 하면서 다시 마인크래프트만 한다.
방 정리를 하러 갔던 아내가 내 노트북 전원 코드와 충전기를 가지고 나온다. 분명히 둘째가 챙겼다고 했던 장비들이다. 둘째에게 다시 물었다.
"다 챙겨서 나왔다며?"
"응, 저건 내 거 아닌데."
둘째는 자기가 쓰던 노트북과 전원 코드만 가지고 나왔다. 믹스커피를 끓일 정도의 온도까지 올라오던 화를 누르며, 다시 한번 둘째에게 가방에 있던 건 다 넣었어야지라고 물었다. 게임만 하면서 내 얼굴은 보지 않은 채 똑같은 대답을 한다. "내 거 아닌데."
믹스커피를 탈 물 온도는 컵라면에 부을 온도를 지나 봉지라면을 끓일 온도까지 올라갈 뻔했다. 가스불을 끄며 다음엔 잘 챙겨라고 말하니, 둘째의 영혼 없는 "응"만 들려온다.
"가방에 (있었던 모든 거, 네가 뺐던 거 그대로 챙겨서) 다 넣어서 와"라고 말했었는데, 내가 말이 너무 짧았나 보다.
아직은 눈앞에 있는 자기 게임만 보이는 아들에게 다른 기기들까지 기억하고 있으라고 하기에는 내 욕심이 조금 컸었나 싶다.
다음에는 아빠가 아주 시시콜콜 하나하나 다 말해주마.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