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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Nov 12. 2020

한국인이 영어, 불어를 배우는 '속도'

30대에 영어, 불어 두 언어를 배우며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는가?

영어 잘하면 몬트리올에서 살아가는데 문제없다.


내가 몬트리올로 이민 오기 전 여러 이민 관련 커뮤니티를 통해 받아들였던 정보였다. 물론 상대방의 의도를 내가 듣고 싶은 쪽으로 해석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살아보니 이민을 고려하는 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몬트리올에서는 불어만 하고 살 수는 있어도, 영어만 해서는 힘들 것 같다.
특히 전문직을 원한다면...


그렇다면 30대에 이민을 와서 영어, 불어 실력을 둘 다 끌어올려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을까?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할 수는 있다'라고 대답하겠다. 하지만 두 언어가 모두 잘 늘지 않는 답답함을 가지고 꾸준히 연습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내가 어떤 점을 개선하면 일의 성과를 좀 더 높일 수 있을까?"

나에게 늘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는 나의 프리셉터에게 물었다.

"공부는 그만하면 됐으니 바이링구어 남자를 한번 만나보면 어때?"라며 농담처럼 대답한다.


그는 '머리로 아는 것을 말로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해 보라'는 말을 내게 에둘러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를 늘리는 데 연인을 사귀는(?)것 만한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나도 영어 '공부'라면 정말 열심히 한 한국인이다. 그래서 읽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듣기, 말하기에 약하다. 문법적으로 '공부'했던 그 부분이 말할 때 내 발목을 스스로 잡을 때가 많다. 즉,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문장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주춤하게 된다. 하지만 조금 틀려도 머뭇거리지 말고 자신감 있게 내뱉는 것이 일할 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듣고 이해했으면 가능한 한 빨리 의견을 입으로 내어 주는 것이 간호사로 일하며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그래도 이렇듯 열심히 '공부'한 영어가 불어를 빨리 배우게 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불어와 영어는 문법과 단어에서 많은 부분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불어 수업을 들을 때 레벨이 높은 반의 친구들은 대부분 영어도 잘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포르투갈어나 스페인어가 영어보다 불어와의 유사성이 더 크다. 그래서 그 언어가 모국어인 이민자들은 불어를 정말 빠른 속도로 배운다. 이처럼 한국인이 영어, 불어를 배우는 '속도'가 유럽이나 남미의 타 언어를 쓰는 이민자들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다. 이 '속도' 때문에 이민 후 삶의 질이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영어와 불어 구사 정도에 따라 어떤 언어에 중점을 두면 좋을지에 관한 나의 생각이다. 단 30대 이상의 나이에 이민 온 한국인이라는 가정을 두겠다.


영어와 불어 둘 다 완전히 기초인 경우

이민 후 두 언어를 기초부터 한꺼번에 배우기는 참 힘들다. 물론 궁극적으로 두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둘 다 동시에 배우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이 경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또한 몬트리올은 그래도 불어가 공용어인 퀘벡이다. 그래서 다소 몸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불어를 하지 못하면 일을 구하기가 힘들다. 불어와 영어가 모두 약하다면 불어를 배우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일을 더 빨리 구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인 대부분 불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하기 때문에 이민 후 우선 일상생활을 위해 영어를 먼저 늘리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어를 제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이 경우 대부분 두 언어를 배우기 버거워하거나 일을 구하기 힘들어 타주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았다.


영어가 중상 이상이면서 불어는 기초인 경우

영어가 기본이 되어 불어를 그나마 빨리 배울 수 있다. 몬트리올에서 일을 빨리 구하고자 한다면 단시간에 불어 듣기와 말하기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불어를 배우는 동안 영어 실력이 줄어들거나 단어가 빨리 떠오르지 않는 기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 영어 실력이면 영어는 그나마 금방 회복 가능하다. 불어를 주로 배우는 여가시간에 영어로 미드를 보거나 영어 방송을 들으며 감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면 좋을 듯하다.


영어가 중상 이상이면서 불어도 중급 또는 불어만 중상 이상

이 정도라면 영어나 불어로 전문직 일을 구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해 본다. 단 어떤 언어를 주 언어로 하여 일을 할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몬트리올에서는 영어가 약해도 불어를 잘하거나 영어를 잘하면서 불어를 일정 이상 하면 전문직으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 본인의 부족한 언어를 배워 나갈 기회는 많다. 단 불어를 잘하면 잘할수록 어떤 직업군에서든지 더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린다.




다소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나는 몬트리올에서 간호사로 일을 구했지만 두 언어를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는 것 같다. 언어를 취미가 아니라 직업을 위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영어, 불어를 배우는 그 '속도'가 타 이민자들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참 아쉽다. 그러면 왜 타주에서 간호사를 하지 않고 몬트리올에 계속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하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불어'라는 애증의 친구를 사귀어 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불어'를 어느 정도 듣고 말할 정도까지 끌어올리고 싶다. 그 친구를 사귄 것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정성을 쏟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아직도 좋아하는 선택과 원하는 선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작가 조승연의 짧은 강의를 보게 되었다. 제목은 '우리가(한국인이) 영어 공부에 실패하는 이유'이나 오늘 내가 쓴 글과 연관이 있는 듯하여 하단에 링크를 걸어둔다.


https://www.youtube.com/watch?v=BtYGcKnY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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