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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Aug 02. 2020

불어를 배우면서 나타난 영어의 변화

퀘벡에 사는 이민자의 숙명

커버 이미지로 선택한 크의 '절규'가 아마도 그 당시 나의 감정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듯하다. 몬트리올로 이민 와서 본격적으로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의 나의 감정을...




첫 시작은 이민 온 그 날 토론토발 몬트리올행 비행기 안에서였다. 인천에서 토론토까지는 마일리지를 사용해 무료항공권을 끊었고, 토론토에서 몬트리올까지는 내가 직접 에어캐나다 국내선을 예약했다. 연결 편이 아니어서였는지 그 비행 편은 유독 퀘벡 쿠아 비즈니스맨들로 가득 찼다. 개인 경비행기 마냥 작은 비행기가 엄청 흔들려서 정말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시차 때문에 한 시간 반 정도의 짧은 여정에도 계속 졸다가 음료와 프레즐 과자를 나눠주는 시간에 잠시 잠이 깨였다. 딱히 당기진 않았는데 너무 잠이 와서 그거라도 먹어야 내릴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튜어디스가 불어로 무슨 음료를 먹을지 물어봤다. '그래 퀘벡으로 가는 길이니 연습했던 불어를 쓰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영어로 'orange juice'가 한번 떠올라 버리니 그 간단한 불어 단어 'jus d'orange(쥬도항쥐)'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결국 영어로 주문했는데 정확히, 크게 말해도 그 스튜어디스는 계속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스튜어디스가 왜 그런 객기 아닌 객기를 부렸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 스낵과 주스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쥬도항쥐 그게 안 떠오를 수 있지' 그 생각 때문에 잠을 깰 수 있기는 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시차 때문에 피곤해서 일어난 가벼운 에피소드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몬트리올에 도착해서 호스텔에 일주일여 머물며 렌트도 구하고, 이민 관련 서류들도 처리했다. 정말 형편없는 불어 실력이었지만 관공서에서 나의 방문 목적을 외워서라도 불어로 말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당연히 불어로 대화가 지속되기 어려우니 직원은 영어로 내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해는 했는데 대답을 하려고 하니 갑자기 영어로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몇 문장 불어로 말했을 뿐인데 마치 불어의 뇌가 가동을 시작해 버려서 짧은 시간 내에 영어의 뇌로 옮겨가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당시 나의 영어는 유창하진 않지만 원하는 일처리는 큰 문제없이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간단한 영어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기 시작했다. 심할 때는 불어로 'aller'가 먼저 떠오르면 영어 단어 'go'를 생각해 내는데 한참이 걸렸었다. 그 순간 '어! 이거 뭐지? 내가 'go'를 생각해 내지 못한 거야?' 이때까지만 해도 약간 어리둥절하고 놀라는 정도였다. 



풀타임으로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하니 그 현상은 더 심해졌고 그로 인해 영어 말하기의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단계에서는 좀 우울했던 것 같다. 이민을 오기 전 불어를 배우기 힘들 거라는 각오는 했지만 영어가 흔들릴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해서 우울한 감정마저 들었던 것 같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두 언어를 성인이 된 후 취미가 아닌 생계로 배우며 살아야 하는 삶은 피곤하고 때론 고통마저 수반하는 경험이다. 몬트리올에 살면서 프랑스어와 영어를 둘 다 잘하면 그만큼 기회가 많아진다. 하지만 외국인들 중에는 직업적 특성에 따라 영어만 하거나 불어를 본인이 필요한 정도는 알아듣지만 말하기는 불어로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있는 분들도 계신다. 나도 간호사를 하기 위해 불어를 어느 정도는 말해야 했고 영어는 더더욱 잘해야 했다. 그래서 풀타임으로 불어를 배우면서도 그 하루의 나머지 시간에는 영어를 연습하는 시간을 빠트리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두 언어를 연습하는 기간이 약 6개월 정도 지나니 그래도 '영어의 뇌'와 '불어의 뇌'가 그나마 빠르게 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 중에 '영어만 하는 사람' 또는 '불어만 하는 사람'이 섞여 있어도 그럭저럭 두 언어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물론 두 언어 모두 말하는 속도는 빨라지지 않았다. 간혹 러시안들이 영어도 불어도 아주 빠른 스피드로 말하는 것을 볼 때면 모국어 속도가 빠른 러시아어의 특성이 외국어를 배우는 데도 적용이 되는 건가 싶어 신기하다. 



그러던 중 풀타임 간호사 과정을 영어로 듣게 되었다. 집중코스라 시험이나 숙제에 치여 초반에 불어를 연습할 짬이 나지 않았다. 영어는 불어를 배우느라 한동안 못 해도 금방 다시 돌아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불어는 새로 배우는 언어이다 보니 잠시만 안 하면 '공든 탑이 무너지듯' 다시 원점으로 무서운 속도로 질주한다. 뭉크의 '절규'처럼 머리를 싸 잡아 매고 소리치고 싶은 순간들이 온다. 어쩔 수 없이 좀비같이 퀭한 눈에 흐느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저녁시간에 파트타임으로 불어 수업을 들었다. 열심히 했다고는 말을 못 하겠다. 강제적으로 나를 몇 시간이라도 불어를 듣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떨어뜨려 놓았을 뿐... 


당시 불어 수업 선생님 눈에 내가 성실한데 피곤에 절어 보였던 모양이다. 나를 따로 부르셔서 낮에 뭘 하냐고 물어보셨다. 제1의 언어가 프랑스어이고, 이민자에게 프랑스어 교육을 무료로 제공해 주는 퀘벡의 특성상 영어로 학교를 다닌다는 말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선생님들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내가 주저하다가 대답을 했더니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불어만 1년에서 2년 정도 그 머리와 성실함으로 했으면 불어로 간호사 과정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특히 간호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영어를 하려고 하니 아쉽구나" 그 날 왠지 모를 미안함과 함께 그 퀘벡 원어민 선생님께서는 역시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시지 못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꽤나 무거웠다. 내가 영어를 주 언어로 선택한 이유는 간호사 이야기에서 다시 하겠다. 내가 간호사만 아니었다면 나도 그 선생님의 조언대로 한번 도전해 보았을지 모르겠다. 



생각과 걱정이 많은 나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퀘벡에서는 쉬는 날이 온전히 쉬는 날이 아닌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영어와 불어를 둘 다 해야 하는 상황이, 그리고 '가랑비에 옷이 젖듯' 늘어가는 언어의 특성 때문에, 쉬는 날 왠지 불어나 영어로(특히 불어로) 뭔가를 듣거나 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퀘벡으로 이민을 온 이상 두 언어와 함께 살아가는 숙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로 인해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과도 잘 지낼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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