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어가 다 그렇겠지만 듣기 실력이 중급 이상 되면, 방송을 듣거나 상대가 말할 때 안 들리는 '단어' 자체를 캐치해 낼 수 있는 것 같다. 즉 안 들리는 어떤 소리가 '단어'라는 걸 안다는 말이다. 간혹 그 단어가 내가 모르는 지역, 사람 이름과 같은 고유명사 일 때, 듣는 순간 '혹시 뭔가를 나타내는 이름인가?'라고 빨리 생각하게 되면, 그 고유명사가 일반 단어인 줄 착각하여 그 뜻을 생각하느라 뒤 따르는 문장의 문맥까지 놓치는 오류는 범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프랑스어 실력처럼 현재 알고 있는 표현이나 단어 자체가 많지 않은 경우 듣기가 참 힘들다. 안 들리는 것이 '단어' 인지 'Chunk(덩어리)' 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으니, 심할 때는 짧은 문장 전체가 하나의 모르는 '긴 단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특히 프랑스어처럼 'Liaison(연음)' 이 많은 경우 더 심하다. Conjugaison(주어에 따른 동사 변화), 정관사, 명사의 단, 복수형에서도 그 연음이 생기는데, 우선은 그 동사나 그 명사 단어 자체를 알아야 콩주게종을 추측이라도 하고 연음인지를 깨닫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 그 Chunk 전체가 내가 모르는 길이가 긴 한 단어로 느껴지게 된다.
한 가지 더 경험한 것은, 프랑스어를 모국어만큼이나 많이 쓰는 나라 사람들, 모로코나 알제리에서 온 친구들은 퀘벡 쿠아들의 프랑스어 발음이 독특해서 안 들린다고 불평을 많이 한다. 이 불평 자체가 듣기가 이미 중급 이상 된다는 말이다. 밴쿠버에서 1년 일할 때 나의 영어가 그랬지 않나 싶다. 소위 코캐이시언이 늘 들어왔던 토익 테이프처럼 발음할 땐 엄청 잘 들리는 것 같은데, 악센트가 강한 중국인들 또는 인도 사람들이 말할 때는 다시 물어볼 때가 많았다. 그래도 그 단어나 표현을 아니깐 '아! 그 단어를 저 사람들은 저렇게 발음하는구나' 바로 느끼게 되고, 빠르게 적응이 되어갔다. 나중엔 어느 정도 성대모사도 가능할 정도가 된다^^
그러나 나의 프랑스어 실력처럼 듣기가 중급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퀘벡 쿠아가 말을 하나, 모로코나 알제리에서 온 그 친구들이 말을 하나, 프랑스 출신 학교 선생님이 말을 하나 발음에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워낙 모르는 단어나 표현이 많으니 발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제 하나를 잡고 따라가기 바쁘다. 하지만 듣는 도중에 아는 표현이나 단어는 '툭' 튀어나와 그냥 들린다. 발음의 차이가 들리는 데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같다.
소위 '총알'이 적어서(알고 있는 단어나 표현이 적다는 뜻) 듣기 실력이 취약한 단계에서는 상대방과 대화만으로 실력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될 수는 없겠지만 효율면에서 떨어진다. 본인이 언어는 못하지만 굉장히 유머러스해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거나,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이 많은 이성이거나, 상대방이 인내심이 강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화가 오랜 시간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어를 집에서 공부할 때 지문이 있는 걸 보면서 많이 듣고, 그 똑같은 것을 지문 없이도 들어보고, 나에게 흥미가 있고 수준에 맞는 불어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발견했을 때는, 아주 꼼꼼히 단어나 표현을 찾아가며 반복적으로 읽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친구, 선생님, 원어민과 대화하며 눈과 귀로 읽힌 표현을 입으로 연습해 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이런 '훈련'을 통해 어제보다 오늘 조금이라도 더 들리는 것이 '귀가 뚫리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