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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정 Dec 19. 2020

실패의 경험담도 듣고 싶은가요?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실패감을 안긴 2020년

한국에 있는 새언니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나도 작가다> 공모전 책이 집으로 왔다고 한다. 태어난 후 영상으로만 봐 온 귀여운 조카의 손가락이 함께 찍혀왔다. 언니는 책만 찍으려고 했는데 조카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어쩔 수 없었단다. 그런데 나는 조카의 그 손가락 덕분에 이 사진이 더 귀하게 여겨진다. 고모의 눈에는 조카의 손가락마저도 어쩜 저리 이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2019년부터 몬트리올에서 간호사 일을 시작한 후 2020년에 누릴 유급 휴가를 고대하고 있었다.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입사 첫 해에는 다른 간호사들의 휴가 기간이 내게는 곧 근무하는 날이었다. 병동에서 연차로는 거의 막내였기 때문에 무급 휴가를 신청할 짬밥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들, 가족 특히 이 손가락의 주인공인 꼬물이 조카를 보러 한국에 갈 희망에 마음이 들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코로나로 인해 언제 한국을 갈 수 있을지, 휴가는 얼마나 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팬데믹 상황에서 일 년여 쉼 없이 일하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거의 소진되었다. 얼마 전 많은 고민 끝에 그만두고 잠시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사직을 고려하게 된 이유는 정말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하다. 나는 늘 실패를 통해 배우는 사람이었다. 소위 말해 '복기'를 잘하는 인간이다. 그 '복기'의 과정이 나 스스로를 격려해 주었고 그로 인해 힘을 얻었다. 또한 그 과정이 크고 작은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복기'를 할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거의 고갈된 상태이다. 나에게는 '백신을 곧 투여받을 수 있다는 희망 = 한국을 곧 방문할 수 있다'와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나의 이 매거진은 시작하기도 전에 하위 주제까지 계획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인맥 관리, 자원봉사, 일 구하기, 인터뷰 준비, 경력 인정 및 관리, 급여, 연차, 휴가 체계, 영주권과 시민권의 선택, 퀘벡 간호사의 장단점 등등 아직 쓰지 못한 많은 내용이 남아 있다. 처음에는 나의 시행착오에 관해 가감 없이 써 보려고 했다. 그 첫 시작의 글이 실패를 주제로 한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제출한 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쓰다 보니 솔직히 나를 드러내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니 사직을 결심하는 과정에서 더더욱 글을 올리기가 주저되었다. 


구독자의 대부분이 간호사로 이민을 희망하는 분들인 것을 알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정보 제공 더하기 성공담(?)으로 이야기가 흘러간 면도 적지 않았다. 나도 그랬던 것처럼 인간이 무언가를 희망하면 이루어 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실패담을 듣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래서 시중에 그렇게도 많은 자기 계발서가 나온 것은 아닐까 한다. 물론 이민 생활에 있어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무엇인지 나 자신조차도 아직 고민 중이다.


하지만 사직을 고려하며 보낸 시간 동안 나는 간절히 실패담을 찾았다. 자기 계발을 독려하는 글은 나를 더욱더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는 이런 순간이 오면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는 '실패라 느껴질 지라도 자신이 가장 중요한 순간은 이러한 때이다' 등의 솔직한 실패담이 듣고 싶었다.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나의 감정이 타당한 것임을 이해받고 다시 '복기'에 쓰는 에너지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쓰기 시작한다.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써내려면 상당 부분 좋게 보면 시행착오요, 나쁘게 보면 실패로 보일 이야기가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이민을 와서 간호사로 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없다. 엎친데 덮친 겪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생에 불쑥 예고 없이 찾아왔다. 물론 내 인생에만 온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2020년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는 성공담보다 실패한 이야기가 더 많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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