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심리학이다

사람과 숫자 사이

by 오프닛

처음 매물을 보러 가던 날, 남편과 함께 지하철에 올랐다. 서울 안쪽의 괜찮은 입지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집에서 제법 거리가 있다 보니 마음까지 멀게 느껴졌다. 깜깜한 지하철 창밖을 바라보다 도착한 역의 바깥 세상은 내 마음처럼 흐렸다.


흐리고 더운 여름날, 오락가락 비 속에서도 역 앞 광장에서는 작은 가족 행사가 한창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페이스페인팅과 풍선이 눈에 들어오자 집에 두고 온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다. 평일엔 일하느라 바쁘고 주말에 겨우 시간을 내는데, 집을 보겠다고 애들끼리 두고 온 게 괜히 마음에 걸렸다. 워킹맘에게 늘 따라붙는 익숙한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부동산 문을 열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았다. 우리가 돈을 들고 온 손님인데도 사장님의 응대는 시큰둥했다. 문의가 너무 많아 문자에는 답도 못 한다며 불만 섞인 푸념을 늘어놓더니, 오늘 보기로 한 매물은 갑자기 못 보게 됐다고 했다. 대신 비슷한 구조의 다른 집 두 군데를 보여주겠다고. 애들까지 두고 지하철 타고 달려왔는데 허탈했다. 미리 알았다면 오지도 않았을 텐데. 그때 마침 지방에서 올라온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괜히 그분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사람 마음이란 참 단순하다.


비를 맞으며 본 첫 매물은 깔끔히 수리돼 있어 괜찮았다. 혼자 사는 여자분 집이라 전세 낼 때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다른 한 매물은 오랫동안 살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수리비가 많이 들 것 같았다. 집을 둘러보며 나는 슬쩍 물었다. “주인분은 왜 파세요?” 혹시 협상에 유리할 힌트를 얻을까 싶어서다.


그때부터 였을까, 사장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내 옆구리를 툭 치며 “저기 봐봐, 이게 이 집 장점이야”라며 귓속말을 하고, 나는 “아 진짜요? 어쩐지~” 하며 맞장구를 쳤다. 남편 눈에는 내가 사장님과 꽤 친해 보였다고 한다. 처음엔 무심했던 사장님이 점점 말이 많아졌다. 동네 장단점을 줄줄 풀어놓더니, 갑자기 “다른 타입 하나 보여줄까?”라며 사이트에 없던 장부 매물을 보여줬다.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대화 덕분이었는지, 못 보여준 매물에 대한 미안함이었는지. 어쨌든 우리는 약속에 없던 매물까지 보게 됐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많은 생각이 스쳤다. 부동산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의 거래다. 법칙이나 매뉴얼로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말 한마디에 수천만 원이 오가고, 말 한마디에 장부 매물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집값이 오를 땐 보기로 했던 집도 감춰지고, 시장이 한산할 땐 주인 집까지 보여준다. 같은 아파트인데도 시장이 상승할땐 그렇게 좋아보이더니 시장이 안좋을땐 참 별로같다. 이렇게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결국 부동산은 숫자보다 마음에 좌우되는 심리의 영역이었다. 인문학일까, 아니 심리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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