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는 사람의 온도가 있다

숫자보다 감정이 앞섰던 그날의 임장기

by 오프닛

앞서 봤던 부동산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사장님을 만났다. 친절하고, 조금은 수다스러웠다. 나도 몇 번 다녀보며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다.


첫 번째로 본 집은 인테리어가 되어 있다는 주인 실거주 매물이었다. 집에 들어선 순간, 주인분의 스타일과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나를 압도했다. 아무리 비싼 인테리어여도 무난함을 넘어선 스타일은 독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은 순정 집이 낫다. 집을 보러 다니는 사람을 따라다니며 설명할 정도로 주인분이 집에 애정이 많으면, 한걸음 뒤로 물러서게 된다. 나중에 가격 협상도 잘 안되고, 갑자기 매물을 거두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사장님께 전해 듣기론 실제로 그 집 사겠단 사람이 나왔는데, 그 자리에서 5천만 원 호가를 올렸다고 한다.


다음 집은 사장님이 미리 말했다.

‘짐이 좀 많긴 한데, 애들이 셋이라 감안하고 봐요~ 집은 좋아요~’

이런 집은 정말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야 한다. 예전에 짐이 좀 많다던 집을 들어갔더니 벽마다 책장과 짐으로 꽉 차 있었고, 심지어 제일 작은 방은 입구부터 짐이 있어서 들어갈 수도 없었다. 다행히 이번 집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짐이 많은 집을 보면 꼭 우리 집 상태를 반성하게 된다. 집이란 게 사실 큰 하자가 있지 않고서는 짐 빼고 도배하면 다 똑같다. 내가 살 땐 그걸 감안하고 짐만 많아서 인기 없는 집을 잘 협상해서 사야 되고, 내가 팔 땐 집에 꺼내놓은 짐을 줄여야겠다 생각한다.


다음으로 본 매물은 사이트로 볼 때 위치도 좋고, 층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좋았다. 기대감을 갖고 집을 보러 갔는데 세입자가 깨끗하게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베란다 문을 열었는데, 천장에 곰팡이가 퍼져있었다. 집을 보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먼저 그러신다. ‘베란다에 곰팡이 그것 때문에 집주인이 좀 깎아줄 생각이 있나 봐요~’ 다들 그 하자 때문에 마지막까지 매수를 망설였던 듯하다. 나 또한 아직은 매물을 좀 더 볼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 매물은 후순위에 두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일 때문에 매물은 꼭 발품 팔아 내 눈으로 직접 보고사 야한다.


마지막으로 위치가 제일 좋았지만 가격은 제일 높았던 집을 보았다. 역시 부동산은 입지인가, 높은 가격 자체가 왜 이 매물이 이 가격인지 스스로 입증하고 있었다. 집 상태도 너무 좋고, 세입자의 요건 또한 내가 찾던 딱 그 조건이었다. 이거구나 싶었다. 그 눈빛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무덤덤하게 ‘근데 좀 비싸긴 하네요’라는 말을 건넸다. 사장님 하시는 말씀이, “그 집주인 욕심쟁이에요. 팔려다가도 산다 하면 가격을 또 올리고, 또 올리고… 결국 못 팔았어요.” 사장님 입장에서 협상하기 껄끄러운 상대인 듯했다.


집을 다 보고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이 동네는 늘 탐났다. 업무지구도 가깝고 역도 가깝고 연식 역시 만족스러웠다. 단점은 아니 문제점은, 예산을 좀 벗어난다는 거다. 하지만 바로 옆동네 구축이 실거주로 살기 좋고 유튜브에 많이 소개되기도 해서인지, 꽤 많은 거래와 함께 내가 본 이 아파트 가격을 부쩍 따라잡았다. 옆 동네도 좋은 동네지만 상대적으로 이 아파트의 가격이 요즘 매력적이라 판단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 예산을 벗어나는데 욕심이 났다. 아니, 내 예산을 벗어나서인지 더 욕심이 난 것 같다.

'남들은 영혼도 끌어모은다는데, 난 그 정도는 아니잖아?‘

이런 생각이 드니 문득 무서워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동안 그 두려움 때문에 레버리지 활용을 못해 놓친 기회들이 떠올랐다. 그때 조금만 더 용기 냈더라면, 지금쯤 자산이 더 커졌을까. 두려움과 욕심 사이에서 하룻밤을 서성였다.

감정적으로 안정적이고 이성적인 신랑은 예산을 넘지 않길 바랐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집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며칠 후, 사장님께 전화가 먼저 왔다.

"사모님, 의사를 표현해 줘야 내가 일을 하지~ 마음에 드는 거 얼마 생각하는데요?"

결국 협상을 시도했다. 큰 기대는 없었다. 신랑을 간신히 설득했기에 가격 하한선이 있었고, 무엇보다 욕심 많은 집주인이라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 해보면 후회할 것 같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다른 데는 어때요? 6층이랑 11층도 괜찮았잖아요.”

다른 집들도 나쁘지 않은 컨디션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집이 아니면 하고 싶지 않았다.

"아 그렇긴 한데 전 그 집이 제일 하고 싶네요. 저 사장님이랑 꼭 하고 싶었는데.. 그게 너무 아쉽네요"

물건보다 사람이 더 아쉬웠다.

"그러게요, 나도 그러네. 또 통화해요"


그 뒤로도 물건이 나오거나 봤던 물건에 매수세가 붙으면 나에게 한 두 번 더 전화를 주셨다. 거래를 성사시키고 전화를 준 것이겠지만, 왠지 그렇게 생각하기 싫었다. 나처럼 뭔가 나에게 끌려서, 더 생각나서 전화를 해준 거 길 내 멋대로 생각해 본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웃음이 났다. 이렇게 감정에 휘둘리는 나란 사람은 엄청나게 큰돈 벌긴 그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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