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축하드립니다

이제는 선택해야 했다, 매물을 결정할 시간

by 오프닛


내 마음속 마감일자를 정해놓으니, 행동의 속도와 집중도가 높아졌다. 몇 년을 '목표'라는 단어로 멋들어지게 포장해 놓고, 희망사항으로 예쁘게 두었단 사실을 ‘진짜’ 하려는 마음을 먹고 나서 알았다.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 건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할 때는 늘 갈팡질팡이다. 이번 역시 그랬다. 이론으로 다 배워서 아는 것 같았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구멍 투성이었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이 오가는 거래이므로 꼼꼼하게 체크했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몇 개의 매물을 손에 쥐고 협상을 동시에 진행해야 된다 배웠지만, 내 예상보다 매물은 훨씬 빠르게 사라졌다. 매물은 거래로 사라지거나 다시 매도자의 손으로 돌아갔다. 혹은 가격이 올라갔다. 상상 속에서 아름답고 우아하게, 우위의 포지션에서 협상을 걸고 있는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보고 있던 지역마다 약간씩 분위기가 달랐고, 협상에서의 우위성 또한 미묘하게 달라졌다.

이런 와중에 더 좋은 매물을 찾기 위해 후보 매물을 넓힐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매물은 끝이 없었다. 어느 정도는 나만의 마감기한을 놓아야 했다. 행동이 조금 더 빨라졌다. 평일 퇴근 후에도 며칠 동안 계속 매물을 보러 다녔다. 예전의 나는 주말에만 임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애들과 나들이를 가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는 사실 또한 이 기간을 지나며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할 시간조차 없었다. 좁혀진 4가지의 매물을 놓고 협상을 시도했다. 1순위 매물은 구축이지만 위치와 교통이 좋았다. 호가보다 1~2천만 원 낮게 사고 싶었지만, 직전에 거래된 물건이 5백만 원 정도 협상이 되어 실거래가가 찍힌 터라 아무래도 호가에 살 각오도 해야 했다. 사진으로 확인한 매물의 수리 상태 또한 우수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세를 맞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집을 내놨다는 말도 못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집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안 보고 사는 대신 몇 천만 원 협상을 해볼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투자 고수도 아닌 우리가 집을 보지도 않고 산다? 일 이만 원도 아닌 집을?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판단이었다.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집을 보여달라고 여러 번 요청 했지만, 워낙에 손님이 많던 곳이었기에 사장님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1순위 매수 기회는 우리 스스로 문을 닫았다.

2,3순위 매물은 신축에 교통이 좋고 일자리가 풍부한 지역이었다. 다만, 세대수가 적었다. 그렇기에 입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일 수 있었다. 가격은 정직하다. 투자는 내 취향이 아니라 대중의 선호를 따라야 한다. 입지와 가격, 주변 시세를 비교했을 때, 괜찮아 보였다. 다만 세대수가 적어 환금성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정말 낮은 협상가를 제시했다. 이 정도 가격이어야 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조금만 지나면 분명 매수자들이 나타날 것 같았고,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호가에 살 것 같았다. 역시나 협상은 잘되지 않았다. 결국 한 달 뒤, 2순위 매물은 내가 제시한 금액보다 딱 500만 원 더 높게, 3순위 매물은 호가 그대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아쉽지는 않았다. 환금성은 내 마음속 짐이었을 테니까.

4순위 매물은 준신축에 대단지, 그리고 초품아였다. 이곳을 처음 임장했을 때 여기에 '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평일 오후 시간에 놀이터에 놀고 있는 유아들과 엄마들 무리, 책가방 메고 집에 가는 초등학생, 제법 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중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동네에 활기를 더했다. 3~4인 가족이 계속 살기 위해 찾아올 만한 단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보 중 입지는 가장 떨어진다고 판단해 4순위였지만, 이 시기에 우리가 시도해볼 수 있는 매물이었다.

바뀌고 있는 주변 환경, 가까운 학교로 인한 끊임없을 가족 단위의 거주 수요, 대단지 1군 브랜드. 앞서 보았던 1,2,3순위 매물은 하면 안될 결격 사유가 있었지만, 이 매물은 결격 사유가 없었다. 협상의 전화를 걸었다. 이곳도 투자자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좋은 매물이 순서대로 사라지고 있었다. 낮부터 시작한 협상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완전히 원하는 만큼의 가격은 아니었지만 호가보다 내린 가격에서 계좌가 나왔고 우리는 밤 10시가 넘어 가계약금을 송금했다.

얼떨떨했다. 몇 년 동안 목표로 한 그 순간, 그리고 몇 달동안 에너지를 쏟아낸 결과가 몇 번의 전화 끝에 종결되었다. 허무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이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몇 년을 되뇌고, 책을 읽으며 마인드를 다져왔다. 하지만 고민한 몇 년 동안 뒤바뀐 똘똘한 한 채라는 대명제 트렌드를 과감히 무시한 채 정말 이게 맞는 건가 라는 원론적인 질문이 들었다. 매물 결정만 하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다. 퇴근 후 아이들 공부를 봐주고, 책도 읽고, 남들처럼 맥주 한잔하며 넷플릭스도 보는 이런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생활을 되찾을 줄 알았다.

아니, 전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새벽에 선잠에서 깼을 때 엄습한 오만가지 상상 속 불안감은 내 잠을 앗아갔다. 이 불안감에서 벗어나고자 빨리 계약서를 쓰고 싶었지만 매도인 사정으로 일주일이 미뤄졌다. 그 사이 공급 정책이 발표됐다. 시장이 요동쳤다. 잠재 수요자들이 집을 사러 뛰어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매수한 동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약서 쓰기 전 날, 우리 거래 가격보다 더 높은 실거래가가 떡하니 찍혔다.


계약서를 쓰러 간 날, 사장님이 말했다.

"실거래 뜬 거 봤죠? 어제 매도인 전화 왔는데, 저는 실거래 찍힌거 보고 계약 취소한다는 전화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계약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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