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망설임 끝에, 결국 집을 사기로 했다
나는 1 주택자다. 나의 꿈 하나는 집을 하나 더 사는 것이었다. 사실 부동산 투자를 한다는 더 큰 꿈이 있었다. 그러나 다주택자가 죄악시되는 지금, 융통할 수 있는 거금도 없거니와 자칫하면 사기꾼이 될 수도 있는 부동산 투자는 일단 제쳐뒀다. 대신 ‘노후에 자식들에게 짐은 되지 말자’는 취지로 한 채 더 매수하려는 다부진 꿈을 품고 있었다.
‘한국 부동산은 끝났다, 인구가 소멸한다’ 같은 핵폭탄 썸네일을 단 유튜브 영상도 흔하다. 하지만 어쨌든 자본주의를 취급하는 이 나라에서 현물 자산을 보유해 인플레이션을 헤지 하는 건 내 노후를 지키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 꿈을 키우기 시작한 건 코로나로 세상이 어수선하던 20년부터였다. 지피지기, 일단 내가 가진 돈이 얼마인지 정리해 보았다. 흥청망청 쓰진 않았고 눈에 보이는 적금, 예금 통장이 있었기에 현금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정리를 하니 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모아보니 내가 융통할 수 있는 총액이 드러났다.
주변에 물어보면, 돈을 모으거나 불리는 데 관심은 많아도 실제로 본인이 얼마를 갖고 있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도 그 작업을 20년부터 격달에 한 번씩(주식이 오를 땐 신나서 한 달에 한 번씩) 했는데, 처음엔 흩어진 돈을 파악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가용 자금을 확인했지만,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투자처는 없었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19년 잠시 주춤했던 부동산 시장은 20년부터 심상치 않게 오르더니 21년에는 자고 일어나면 5천, 1억씩 호가가 오르던 시장이었다. 내가 자금을 파악하기 시작한 20~21년은 돈도 많이 필요했을뿐더러, 돈이 있어도 각종 규제로 살 수 없는 시장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상황 덕분에 오히려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지금도 뭘 잘 모르지만, 그때는 더 몰랐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그 시절에 못 산 게 내겐 오히려 좋은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23년에 급락한 시장에서 비로소 서울의 어느 구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용기 내서 부동산에 전화를 하고 집을 보러 간 건 24년 상반기였다. 딱 봐도 초짜 티가 줄줄 났을 텐데, 사장님은 친절했고 어떤 분은 인테리어를 보라며 본인 집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그렇다. 그때가 기회였다. 그때 봤던 집들은 지금 다 몇 억씩 올랐다.
24년 7월 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내가 집을 보고 나오면 다른 팀이 대기하고 있었고, 사장님들도 미련 없어 보였다. 그러더니 불장이라며 집값이 올랐다. 부동산에 전화하는 게 겁이 났다. 콜포비아 인가. 날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서로 필요해서 하는 전화인데, 막상 통화 버튼 누르기까지 왜 그렇게 용기가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24년 겨울, 심란한 나라 정세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왔지만, 내 회사 상황도 더 심란해져 부동산을 볼 수 없었다. 구조조정 가능성은 ‘규칙적인 월급의 부재’를 현실적으로 체감하게 했고, 이는 곧 투자에서의 큰 리스크였다. 회사 분위기는 내 일상 전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투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좋은 기회를 또 날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몇 번의 규제, 그리고 그 과정을 지나며 쌓인 불안감. 그러나 이번 불안감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예전엔 ‘사도 되는 거 맞아?’라는 망설임이었다면, 이번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 아닐까?’라는 두려움이었다.
어느 날, 챗지피티에 요즘 유행한다는 프롬프트를 넣었다. ‘Roast me!’ 그는 답했다. ‘그냥 좀 해!’ 그렇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만 움직이며 호갱노노를 뒤적이던 나에게, 챗지피티는 정확히 겨냥했다. 구구절절 5년의 사연은 필요 없었다. 그래, 그냥 좀 하자. 그래서, 진짜 이젠 집을 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