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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어렵다. (3/5)

(3) 영어무오류설

지난 글에서는 영어 사대주의를 짚어보았어요.

영어가 권력을 상징하는 힘센 언어라서 우리 한국인들이 영어를 어렵게 대한다는 글이었어요.


이번 글에서는 영어가 왜 어려운지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인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동북아시아의 수천 년 역사나 근현대사처럼 거대한 이야기보다는 조금 더 '나'와 가까운 이야기가 될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가 영어를 어디서 어떻게 접해 왔는지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해요.

많은 분들이 학교에서 여러 해 동안 영어를 반 강제적으로 공부하셨을 테고, 시험을 보셨을 거예요. 대학생 또는 성인이 된 이후로는 아마 여러 가지 영화나 미드, 신문 등 미디어에서 영어를 접하셨겠지요. 영어학원을 다니신 분들도 많을 테구요. 아주 많은 분들이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영어 시험을 공부하고, 응시하고, 점수를 받으셨을 거예요. 학업이나 업무 관련해서 영어로 된 문서나 책을 읽으셔야 했던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요.


여기까지는 아주 익숙한 현대 한국인의 모습인데요. 자, 여기서 공통점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접한 영어의 대부분은 '교재' 였어요. 알파벳을 처음 접할 때부터 우리는 영어를 '교재'로 접해요. 학교에서도 교재, 학원에서도 교재, 심지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영어공부하려고' 보잖아요.


그게 뭐가 문제냐구요? 교재이기 때문에 비판없이 그냥 읽고 공부해버리는 게 가장 큰 문제에요.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power language인 영어의 권위도 막강한데, 그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공부의 대상, 교재, 시험으로만 접하니 영어로 쓰인 내용은 자동적으로 '다 맞는 말'이 되어 버려요.


아래 지문 한 번 천천히 읽어 보시겠어요?


'볼빨간사춘기'의 '우주를줄게' 라는 곡의 가사 번역본입니다. 굉장히 잘 알려진 노래지만, 이렇게 보니 새롭죠? 이 글을 읽어 내려 오면서 갑자기 한글로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심장이 막 두근대고 잠은 잘 수가 없어요 한참 뒤에 별빛이 내리면 난 다시 잠들 순 없겠죠' 라는 내용이 나왔으면 "무슨말이야, 왜 갑자기 그런 얘기를 하지?" 하셨을 거에요. 그런데, 네모 박스 안에 세리프체로 쓰인 영어를 읽으면 그런 의문 없이 자동적으로 독해 모드가 되죠.


영어가 그래요. 교재로만 보아 왔고, 공부 대상으로써, 문제풀이 대상으로써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메세지나 의미가 아닌 '독해 대상'이 되어 버려요.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영단어를 한글로 바꾸고, 주어와 동사의 위치를 찾아 가상의 화살표를 그어 가며 영어 문장을 한글 문장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나'는 감정도 의견도 없는 객관적인 수험생이 되어서 문장을 해독하고 주제문을 찾는 독해를 해낸 후, 그 내용을 수용해 버리지요. 진지하게, 심각하게, 각잡고, 끄덕끄덕. "다음 중 틀린 내용을 찾으시오."와 같은 문제가 주어지지 않는 한 지문 자체를 비판적으로 읽는 사람은 잘 없어요. 의심하지 않고 빨리 읽고 파악하도록 오랜 기간 훈련되어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교재와 시험 지문은 대부분 올바르고 좋은 이야기를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놓았지요. 오타도 잘 없어요. 즉,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영어는, 교재에서 접한 영어는, 99.99%가 객관적으로 올바른, 너무 고급진, '잘난' 이야기예요. 그래서 영어는 항상 옳고 항상 맞는 말만 하는 재수 없는 친구, 선생님, 또는 부모님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려요. 부담스러운 거죠. 그래 너 잘났어. 아 그래 니 말이 맞아. 그 앞에서 수험생은 자기도 모르게 항상 주눅이 듭니다. 영어 앞에서 우리는 "넵."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영어 듣기나 대화는 더 어려워요. 텍스트는 그나마 다시 읽을 수라도 있지, 수능 듣기나 토익 리스닝은 한번 지나가 버리면 문제 틀리잖아요. 그러다 보니 영어 원어민과 대화할 때 우리는 너무나도 공손해집니다. 원래 가지고 있는 한국인 특유의 상대방에 대한 겸손에, 영어에 대한 겸손에, 훅 지나가는 영어 소리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함까지.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무식한 소리를 해도 두 손 맞잡고 경청하게 됩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2000년대 초중반에 한국에 굉장히 많았던 원어민 강사들이 그래서 한국이 천국이라고 했었어요. 영어학원에서 준비 열심히 해서 외국 유학간 친구들 이것 때문에 고생 굉장히 많이 해요. 상대방은 나를 놀리는 중인데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경청하니까요.



자, 이래서 영어가 더욱더 어렵습니다.

언어로써, 도구로써 편하게 재미있게 사용해본 경험은 거의 없고, '너무 옳은' 교재로써의 영어만 빠르게 파악하고 수용하는 훈련을 오래 거치니 영어로 된 내용은 그저 진지하게 '훌륭한' 내용으로 인식합니다. 영어로 된 말글은 오류가 없다고 오랜 기간 주입받았으니까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다음 글에서는 문제풀이 위주의 시험영어가 어떻게 영어를 어렵게 하는지 더 깊이 파고들어 볼게요.



지문 출처: https://lyricstransl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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