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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막히는 이유 #1

짧게 말하려고 한다

갑작스럽게, 또는 예상대로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왔어요. 원어민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근하게 "Hi!"라고 인사를 건네고, 나도 우물쭈물 인사를 받아 주었어요.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막혔어요. 흐지부지 대화를 종료했고, 서로 어색하게 웃기만 했어요.


단어를 외우신다는 분, 문법책을 다시 보신다는 분, 전화영어나 원어민 회화를 한다는 분들 대부분이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공부하시는 것 같아요.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 막히지 않기 위해서, 웃으며 대화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영어로 이기고 싶어서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시겠지만 핵심은 이거죠. "윽..." 하고 막히지 않기 위해서. 어색한 웃음으로 때우기 싫어서.


막히는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해요. 우선, 영어 자체가 어려워서 막히죠. 영어가 어려운 이유는 5편에 걸쳐 자세히 설명해 두었으니 확인해 보시구요. (링크) 이 글에서는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볼게요. 이걸 이해하고 나면 즉시 문제가 개선될 수도 있어요.




짧게 말하려고 한다.


마이크를 넘기고 싶어서


대화 중에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는 가장 큰 이유는 짧게 말하려 하기 때문이에요. 영어 대화 자체가 부담스럽고 어렵기 때문에 빨리 그 대화를 피하고 싶거든요. 이 마음은 대화 전체에도 적용되지만 내가 말해야 하는 순간순간에도 적용돼요. 이것을 "마이크"로 설명해 볼게요. 마이크가 상대방에게 있을 때는 열심히 들으면 되지만, 마이크가 나에게 넘어와서 내가 말을 해야 할 때는 여러 가지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나를 긴장시켜요. 내 발음이 웃기지는 않은지, 문법은 맞게 말했는지,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듣긴 할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앗차 방금 그 단어 틀리게 쓴 것 같은데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나는 점점 위축됩니다. 말하면 할수록 엄청 힘들어져 본 적 있으신가요? 그만큼 긴장하고, 긴장을 이겨내면서 억지로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니 힘이 들었던 거예요.


이미지 출처: www.pxhere.com


그러다 보니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점점 더 빨리 마이크를 상대방에게 넘기고 싶어져요. 즉, 내가 마이크를 쥐고 있는 시간을 줄이고 싶어요. 마이크를 쥐고 있을 때 나는 틀리고 실수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안전하지 못한 상황이 되기에, 본능적으로 불안해지는 거예요. 대화는 해야겠는데 마이크는 빨리 넘기고 싶으니 나도 모르게 내가 해야 할 말을 마구 압축해요.


예를 들어볼게요. 상대방이 나에게 "점심시간이 몇 시야?"라고 물어봤어요. 점심시간이 열두 시면 "12."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겠지요. 문제없어요. "It's 12 o'clock."라고 여유 부릴 수도 있죠. 그런데 만약 원래 점심시간은 열두 시인데 오늘은 대표님이 다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고, 대표님이 아침 미팅 끝나고 회사 복귀하면 한시 반쯤 되니까 아마 한시 반쯤 다 같이 나갈 때 나가면 될 것 같은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영어에 자신 있는 분들이라면 이 모든 이야기를 영어로 해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얘기를 다 영어로 하는 것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는 이 이야기를 압축하겠지요. 아마 "오늘은 한 시 반" 정도로 압축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렇게 압축하는 과정에서도 필연적으로 "어..."가 나오기 마련이죠. 최악의 경우, 스스로의 "어..."에 당황해서 패닉할 수도 있어요. 내용 압축이 성공할지라도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죠. "Uh... today, it's, uh... maybe 1:30."라고 말해놓고 찝찝하실 거예요. 친절한 상대방에게 불친절하게 "No."로 대화를 끝내 버린 기억 다들 있으시잖아요? 비슷한 경우예요.




하고 싶은 말은 10칸, 내 '캐파'는 3칸?


"영어가 항상 제자리예요."내지는 "맨날 똑같은 말만 해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많으신데요. 일단은 대화 자체는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아쉬움이 생기는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내가 말하고 싶은 디테일을 다 전달하지 않았을 때 그런 마음이 듭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10칸인데, 내 전달 '캐파'는 3칸밖에 안된다고 판단하고 말할 내용을 3칸으로 압축해서 말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안전하다'라고 판단하는 내 영어의 길이가 3칸 정도인 거죠.


이미지 출처: www.pxhere.com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정공법밖에 없어요. 패닉하며 압축하지 말고, 용기 내어서 더 많이, 더 자세히 이야기를 시작해야 해요.  4칸, 5칸, 6칸으로 늘려가 보세요. 한 문장에 다 말하려 하지 말고, 문장 갯수 늘어나는 걸 각오해 보세요. 


Usually, it is 12 o'clock. But, today, the boss wants to have lunch together. And he will come at 1:30 because he has a meeting. So, we can leave when everyone leaves.

And, but, because, so 4가지만 잘 써도 단순한 문장들로 하고 싶었던 말이 전달 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The lunch is usually at 12 but I think we can go for lunch after 1:30 when everyone is ready since the boss will arrive at around 1:30 after his meeting and he wants everyone to have lunch.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한 문장에 욱여넣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말은 전달할 수 있어요. 




Comfort Zone을 벗어나라


문장 여러 개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용기가 필요할 거예요. 나 스스로 정해 놓은 'comfort zone'을 벗어나야 하니까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3칸으로 말할 수는 없잖아요. 머릿속에 생각나는 모든 이야기를 전부 다 영어로 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대화가 끝난 후 스스로 "이 정도면 할 말은 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디테일은 전달해야 내 마음속 점수판에 "또 패배 1회"라고 기록되는 것을 피할 수 있어요. 시작이 어렵지, 하다 보면 늘어요. "그게 되겠어?"라는 생각에 지레 포기하고 있는 것을 이제 시작해 보시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무엇보다, 이렇게 접근해서 칸 수를 조금씩 늘려가야 머릿속 하얘지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어요. 무설탕 조언이에요.


짧게 말하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또 다른 시도가 있는데, 그건 다음 글에서 이야기해 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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