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다 Nov 18. 2022

내 아이가 손목을 그었다 2

이제 어째야 하나

울면서 자신이 자해를 한다는 고백을 쏟아낸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 방에서 잠이 들었다. 아이는 끝없이 잠을 잤다. 아이가 잠든 동안 나는 거실에 멍하니 앉아서 생각했다. 어째야 하나.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인터넷에 '청소년 자해'를 검색했다. 여러 블로그, 카페, 홈페이지에서 관련된 내용들이 주루룩 나왔다. 나씩 읽어보 있자니 속이 터져서 미칠 것만 같았다.

인터넷에서 찾은 글들은 주로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1. 아이의 말과 행동 속에 숨은 자해의 표시들을 민감하게 관찰할 것, 2. 아이가 자해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를 다그치지 말 것, 3.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 

나는 아이와 친하다. 물론 엄마에게 화도 내고 비밀도 가지고 있고 소리 내어 싸우기도 하지만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늘 나와 상의하곤 했다. 나는 아이들의 상태를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엄마였고, 아이들도 엄마가 자신들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10대가 된 이후로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나와 완전히 공유하지 않았고, 가족보다 친구들을 더 좋아했지만 자신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늘 나에게 왔다. 큰방 문을 닫고 들어와서 엄마, 하고 부르면 그건 나와 단 둘이 이야기를 하겠다는 신호였다. 그럴 때는 다른 형제들도 엄마를 찾지 않고 기다려주곤 했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정말 전혀 몰랐다. 이 정도의 친밀함을 가지고 있어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찾아낸 단 말인가!

아니다. 그래도 엄마를 믿으니까 나에게 이야기한 거겠지. 지금이라도 이야기하는 건 무언가 도와달라는 표현이겠지. 그러니 뭐라도 해야겠지.

다시 인터넷을 뒤졌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관찰할 것> 나는 아이가 가라앉아 있는 건 알았지만 자해를 할 정도라는 건 몰랐다. 이건 반만 성공했다. <아이를 다그치지 말 것> 이건 성공했다. 아이에게 견뎌주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안아줬다.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할 것> 이제 이 차례다.

인터넷에서 말하는 전문가는 학교의 WEE센터, 각 구별 보건소에 딸린 건강가정복지센터, 사설심리상담소, 정신과병원이 있었다. 대체 이 중에 뭘 선택해야 하나.

학교의 WEE센터는 학교 별로 상담사를 상주시키는 경우도 있고, 몇몇 학교를 묶어서 돌아가면서 관리하는 경우, 교육청에 상담사가 있어서 파견되는 경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일단 아이와 상의 없이 학교 관련 기관에 상황을 알리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아이와 우선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 연락해봐야 할 것 같았다.

건강가정복지센터에 전화를 중학생 아이의 자해 문제로 상담을 희망한다고 하자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상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이가 상담에 동의할 경우 접수가 진행되는데 첫 상담을 실시한 후에 추가적인 검사 진행 여부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혹시 청소년이 자해를 할 경우 정신과 진료가 반드시 필요하냐는 질문에 아이와 상담을 해봐야 할 수 있다고 해서 답답해졌다. 그러나 사람의 상황이 다 다른데 직접 보지 않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담당분야가 따로 있는 듯 담당자가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해서, 그냥 우리 구에 소아청소년을 진료할 수 있는 정신과 명단을 부탁드리고 끊었다.

인근의 사설 상담센터 목록도 인터넷에서 뒤졌다. 요즘은 아이들의 심리문제가 심각해서인지 작은 구역에서 상담센터가 수십 개 씩 조회되어 올라와있었다. 심리상담은 전문으로 하는 이론에 따라서 같은 상황도 해석과 접근이 다르고, 상담자의 역량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라고 들었다. 혹시나 잘 모르는 상태로 내 아이에게 맞지 않는 상담센터를 선택했을 경우, 아이가 다시 상담을 받지 않으려 할까 봐 겁이 났다.

그 찰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보내준 정신과 목록이 문자로 도착했다. 다섯 개의 정신과 목록을 보고 있자니 덜컥 겁이 났다. 이 어린아이를 정신과에 데려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무슨 병이든 빨리 치료하는 것이 예후가 좋고 정신과도 마찬가지지만 정말로, 정말로 아이를 정신과에 데려가야만 하는 일일까. 그냥 지나가는 문제일 수도 있지 않나.

남편에게는 이 일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것인지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절망과 혼란 속에서 얼이 빠져 폰을 붙잡고 있어도 일상은 계속되었다.

막내가 뛰어들어와 녁을 달라고 했고 학원 숙제가 많다고 투정을 부렸다. 남편이 퇴근해서 들어오고, 한밤중이 되자 치진 얼굴을 하고등학생인 첫째가 마지막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싸웠다가 웃었다가 하면서 깨끗했던 부엌에 간식 먹은 흔적을 다시 한가득 만들어놓고 자신들의 방으로 다시 흩어져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옆이 있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자정이 지나 내일로 넘어가는 이 시간 잠들기 직전에 남편과 나누는 짧은 평화와 공감은 내가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이었다.

자기야...... 하고 이야기를 꺼내는데 목이 콱 막혀왔다. 자기야, 둘째가 자해를 했어,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

누웠던 남편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작가의 이전글 내 아이가 손목을 그었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