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랜 로망 중 하나는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는 것이다. 그냥 ‘가는 것’으로만 치면 아주 어릴 때 아기 띠에 매달고(?) 간 적은 몇 번 있지만, 그런 거 말고. 둘이 함께 책을 고르고, 읽고, 이야기 나누며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코로나 때문에 줄곧 휴관했던 동네 도서관이 드디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아이는 얼마 전에 읽은 그림책 <맥스와 틸라>의 주인공들이 도서관에 가는 장면에 흥미를 보이며 “하늘이도 도서관 가고 싶어.”라고 계속 말해왔기 때문에, 내가 “여기가 바로 도서관이야!”라고 말해주었을 때 굉장히 흥분했다. 그리고 얼마지않아 그동안 상상했던 ‘둘이 차분히 앉아서 함께 책을 읽는’ 건 그야말로 허황된 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깨달음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눈 깜빡이는 소리마저 들릴 듯 조용한 도서관에서 혼자 큰 소리로 떠들며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아이를 붙잡느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다행히 평일 오전 시간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고, 우리 아이와 똑같은 어린이들이 오는 어린이실이었기 때문에 직원분들도 너그러운 눈길로 우리를 지켜봐 주셨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혼이 빠진 나는 책을 대여하는 건 빠르게 포기하고, 일단 회원증만 만들어 가자는 마음으로 아이를 안고 직원분에게 다가갔다. 내가 이 도서관에 마지막으로 온 게 취업 준비한다고 토익 공부하던 때이니까 적어도 10년은 훌쩍 넘었을 거다. 종이를 코팅해서 만들었던 그 옛날 회원증은 벌써 잃어버린지 오래라서 아무래도 재발급을 해야지 싶었다. 역시나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니 너무 오래전에 가입한 회원이라 무슨 번호를 다시 부여해야 한다고 안내해 주셨다. 더불어 아이 책을 빌리려면 아이도 본인의 주민번호로 회원 가입을 따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순간 내 머리에 종이 디잉~ 울렸다.
‘.............에?’
그녀의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내 회원증으로 아이 책을 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나와 한 묶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아이가 내게 속해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엿한 주민 번호까지 있는 아이를 나와 동등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어린이의 세계>라는 책에서 읽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될 때 동네 농협에서 어떤 여자가 어린아이 둘과 함께 줄을 서있었더니 뒤에 있던 한 할아버지가 “거기, 다 마스크 살 거예요? 거 애들도 살 수 있나?” 하고 호통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는, 잠시 당황하던 여자가 이내 침착하게 “그럼요, 얘네도 한 명씩인데요.”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
작가는 그때 함께 줄을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본 뒤 이렇게 상황을 판단했다.
나는 평소에 사람 수를 셀 때 어린이를 ‘한 명’으로 세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분에게는 어린이 둘이 어른에게 딸려 있는 것으로 보인 것 같다. 만일 어린이들 덩치가 할아버지만 했다면 뒤에서 헷갈리지 않았겠지. 할아버지도 한 명, 어린이도 한 명이라는 사실이.
아이가 작고 어리다는 이유로 내게 딸려있다고 무심코 생각했다는 점에서 나와 저 할아버지는 다를 것 없는 어른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부끄럽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었다. 깊이 반성했다. 그리고 작아도 분명히 거기에 있는, 확실한 한 명인 내 아이에게 다가가 꼭 안아주며 사과했다.
하늘아, 엄마가 미안해.
언제나 너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내가 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