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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Sep 23. 2021

오조준 등원 길

   


얼마 전 도쿄 올림픽 양궁 국가대표들이 방송에 나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 그를 통해 양궁에 ‘오조준’이라는 용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조준은 기후 등 주변 환경을 고려해 일부러 틀리게 겨냥하는 것을 말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 비나 눈이 내려 화살에 실리는 무게 등을 헤아려 과녁의 중앙이 아닌 곳으로 활을 쏘는 것이다. 선수들은 말했다. 양궁은 누가 더 자신을 믿고 과감하게 틀리느냐가 관건이라고. 그래서 양궁을 정신의 대결이라 부른다고.      


그들의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등원 길을 떠올렸다. 내 과녁은 어린이집 현관문이다. 내 화살인 우리 아이는 활인 내게서 일단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활과 화살의 사전 협상이 이루어진다. 가는 길에 놀이터에 들를 것인지, 빵집에 들를 것인지 등등이 이때 정해진다.      


오늘은 카페 들렀다가 어린이집 갈까?”     


작고 귀여운 화살이 말한다.      


나는 어린이집이라는 과녁에 도달하기 위해 과감히 집 앞 카페를 조준한다. 총총총 신나는 발걸음으로 카페에 들어서는 화살은 즐거워 보인다. 주스와 커피를 한 잔씩 시켜 앞에 놓고 알콩달콩 한참 놀다가 화살의 기분이 한껏 올랐을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말한다.     


어머비 오네우리 차에 있는 장화로 갈아 신고 첨벙첨벙하러 어린이집 앞에 가볼까?”     


두 번째 오조준이 들어갔다. 비가 올 땐 ‘첨벙첨벙’이 언제나 먹힌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나의 노하우이다. 집 앞 카페에서 어린이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까지 화살이 달린다. 성공적으로 과녁까지의 거리를 좁힌 나는 초조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짐짓 태연한 척 시계를 확인한다. 집에서 나온 지 40분이 지나고 있다. 괜찮다. 목표했던 등원 시간을 생각하면 이미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아직 점심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다. 밥이라도 얻어먹고 와라. 집에 밥 없다.     


내 분주하고 복잡한 마음을 알리 없는 천진한 나의 화살은 장화를 신고 웅덩이라는 웅덩이는 다 밟으며 뛰어다닌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참 구경하고, 꽃이랑 나뭇잎에 인사를 건네고, 비에 젖어 있는 벤치에게 우산을 가져다주겠다 약속하고, 갑자기 주차해 둔 차로 돌아가 킥보드를 꺼내 탄다. 순간적으로 그냥 화살을 번쩍 안아 들고 뛰어들어가 어린이집에 넣어 버릴까, 충동이 스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는다.      


화살에겐 화살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아주 급한 일이 없는 한 그 시간을 존중해 주고 싶다. 나는 그런 내 믿음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럴 수 있을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내 처지에 감사하며, 평온한 마음으로 화살이 날아가고 싶은 대로 쌩쌩 날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본다. 집에서 나온 지 1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화살은 본인이 하고 싶은 건 얼추 다 해서 마음이 흡족해진다. 더불어 부드럽지만 단호한 내 태도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거나 어린이집에 안 가는 변수는 없다는 걸 스스로 깨닫는다. 내가 별말을 하지 않아도 스리슬쩍 제 발로 정확히 어린이집 현관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른다. 내 품에 안겨 사랑한다 말하고 손을 흔들며 웃는 얼굴로 작별 인사를 한다. 명중이다.     


몇 초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과녁에 꽂히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양궁과 달리 나의 등원은 활을 떠난 화살이 과녁에 가닿기까지 짧게는 40분에서 길게는 1시간 반의 시간이 걸린다. 기후와 주변 환경뿐 아니라 화살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다채로운 오조준의 변주가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내 안에선 양궁 못지않은 정신의 대결이 펼쳐진다.     


조금 더 멀리 보면 어떨까.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아이가 자신의 과녁을 찾아 날아가는 몇  십 년의 시간 동안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과녁을 코앞에 끌어다 두고, 화살을 소중히 품에 감싸든 다음에... 바람 한 점, 비 한 방울 안 맞게 조심조심 옮겨서 정확히 정중앙 예쁘게 꼭, 꽂아주고 싶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내가 나 자신과 아이를 믿고, 혹시 아이가 틀린 길로 가는 것 같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지켜보기를. 아이의 과감한 오조준의 과정을 그저 유일하고 아름답다 여기며 영혼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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