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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Sep 29. 2021

아기가 울면 개는 짖는다


출산 후 가장 고민했던 것 아기와 개들의 합사(?) 시기였다. 마음 같아서는 최대한 빨리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조금 힘들게 아이를 낳은 케이스였기 때문에 회복이 더뎠던 나는 안 아픈 곳이 없는 몸으로 ‘엄마’라는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기 바빴다. 그러다 아이가 70일 정도 되자 고맙게도 통잠 비슷한 걸 자기 시작했다. 덕분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개들을 데리고 오는 걸 더 늦추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혼자서 아기 한 명을 돌보는 지금 이 상태에 적응하면 안 돼. 나에게 두 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나는 한층 더 힘들어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망설이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개들을 부탁했던 본가에 연락했다. 엄마는 나를 걱정하며 조금 더 몸조리를 하고 아기 100일 지난 뒤에 데리고 가라는 달콤한 제안을 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어차피 언제든 내가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 하나, 나중에 하나 힘든 것 똑같을 거 같았다. 그렇게 아기가 생후 75일이 되는 날, 개들이 집으로 왔다.


첫 만남은 생각보다 별일 없이 진행되었다. 개들은 아기의 냄새를 몇 번 맡아보더니 그 뒤로는 큰 관심이 없는 듯 보였고, 인터넷에서 본 영상처럼 막 소중히 다루는 것 같지도 않았다. 특이 사항이라면 리따와 치코의 반응이 조금 다르다는 것 정도였는데, 바로 아기 옆에 드러누워 편하게 쉬는 치코와 달리 리타는 아기를 살짝 경계하는 눈치였다. 아기 곁에 다가가지 않고 살짝 거리를 두고 앉아있다가 아기가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일어나서 서성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안에는 ‘그래도 별문제 없이 잘 지내겠지...’하는 안일한 희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희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조용히 꼬물대던 아기가 우는 순간, 리따가 맹렬히 짖었다. 정확히 아기를 향해 짖었다. 내가 우는 아기를 안아 올리자 점프하면서 코로 아기를 툭 치며 짖었다. 온몸의 피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름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한 상태였기 때문에 각오는 어느 정도 되어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리따가 아기를 다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공포와 절망이 엄습했다. 


처음엔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찾아보았다가 그보다는 더 빠르고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아 전문 훈련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분의 말로는 리따가 자신이 우리 가족을 이끄는 우두머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운 구성원의 등장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아기가 울면 ‘감히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하다니, 내가 행동에 주의를 좀 줘야겠군!’하는 생각으로 아이를 향해 짖거나 코로 쳐서 주의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훈련사의 지시에 따라 패트 병에 콩을 넣은 기구를 만들었다. 그걸 흔들거나 손바닥에 치면 큰 소리가 났고, 리따는 그 소리를 무서워했다. 리따가 아기를 향해 짖거나 위협적으로 다가오면 그 기구를 들어 올려 소리를 내거나 입으로 쉿! 하고 경고를 해서 아기 곁에 오지 못 하게 하고, 리따가 아기 옆에 가만히 있을 땐 간식을 줬다. 아기를 눕혔다가 안고 일어나면서 리타에게 간식을 주는 훈련도 반복했다. 안 그래도 관절이 삐걱삐걱인데 아기를 안은 채 계속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게 무척 고됐다. 


2시간가량 방문했던 훈련사는 돌아가면서 일상에서도 지속적인 훈련을 해야 행동 교정이 될 거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그의 말대로 열심히 훈련을 했지만 리따는 훈련사가 있을 대만큼 큰 행동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고, 나와 남편은 리따를 계속 겁주고 혼내는 훈련 방식에 회의를 느꼈다. 그러고 나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페트병을 들지 않았고 리따도 아기를 향해 짖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드는 생각은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가고, 안 먹으면 7일 간다’는 말처럼 개들에게도 그냥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굳이 매섭게 콩을 흔들고, 간식을 주지 않았어도 결국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또 한 번 절박한 마음으로 엉엉 울면서 방문 훈련사에게 전화를 할 거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이런 순간이 참 많은 것 같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울고불고 난리굿을 치다 문득 고개를 드니 시간이 알아서 다 해결해 주고 가버린 순간들. 그러다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혼자 슬그머니 북이랑 장구를 챙겨 드는 순간들. 그래서 가끔 허탈할 때도 있지만 어쩌겠나,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며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만큼의 내공이 안 되는 걸. 


오늘도 아기는 울고, 개는 짖고,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시간이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비웃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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