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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Nov 25. 2020

우리는 같은 순간에도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았다

나도 저렇게 태연하게, 남의 일처럼 말하고 싶었는데.


햇살 좋은 가을날의 학교 건물 천장



    내가 교직이수를 포기하기(로 마음 먹기) 전의 이야기이다. 한 학기 휴학을 하고 복학한 3학년의 가을이었고, 나는 극도로 짧아진 머리카락과 화장기 없는 얼굴, 평소에는 입지 않던 편하고 후줄근한 복장을 한 채 매주 7개의 수업에 출석했다. 대개 독강일 수밖에 없는 이중전공(예정) 수업과 교직 수업들이었다. 그중 꽤 인기 있는 교수님이 진행하시는 교육학개론 수업에는 매 수업 첫머리마다 해당 회차의 주제와 관련하여 학생들이 5분 내외의 짧은 발표를 진행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맡은 주제는 '교육은 평등한 기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가'였다.


    할 말이야 많았다. 언제나 많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불만에 찬 비관론자였고 무엇보다 가장 불만을 가진 것은 당연히 내가 피해를 봤다고 느낀 부분, 즉 경제적 격차로 인해 내가 박탈당한 기회들이었으므로.


    그다지 성적에 도움이 되는 것도 열심히 해서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닌 활동이었지만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 너무나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교직 수업에 출석할 때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자주 답답했고, 주위에서 이 정도 대학에 진학했다는 이유로 남들과 구별되어야 하며 남들의 우위에 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지긋지긋했다. 학벌의 차이가 선/후천적 능력과 노력의 차이를 설명해주며, 따라서 이후의 모든 성취는 이에 비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분명 이 강의실 안에서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텐데, 한번쯤은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꼭 그렇게 극단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진 않더라도 강의실 안의 학생들은 (재학생 전체 소득분포를 생각해봤을 때) 대개 중산층, 혹은 특권층 자녀이며 언젠가 선생님이 되고 싶거나 그래도 선생 일도 할 만하겠다 싶으니 교육 전공을 택한 사람들일 터였다. 그러니까, 학생이면서도 학교생활에 불만이 적고, 좋아하고 따르는 선생님도 여럿 있는 모범생으로 살아온 이들이 대부분일 텐데 (편견인가요? 하지만 적어도 내가 교직 수업에서 보고 겪은 이곳의 사대생들은 대개 그러했으며 이에 대한 반박은 받지 않겠다), 나는 이 사람들이 교사가 된다면 그들이 학창시절엔 막연히 쟤는 왜 저래, 싶은 마음으로 바라봤을 학생들까지도 품어주고 이해해주었으면 싶었다.


    발표문을 쓰고, 갈아 엎고, 또 썼다. 이야기하다가 감성팔이로 흐를 것 같으면 다시 뒤집어 엎었고, 너무 임팩트가 부족하다 싶으면 다시 내용을 넣었다. 내가 살던 낙후한 동네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학업성적에서 하위권을 달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와 교사들도 업무가 바쁘다보니 평균 이상의 학생들만 챙겨가고 하위권 학생들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낙오된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공부의 길을 논외로 치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이 모든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 대목은 이런 식이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반드시 공부를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진작부터 공부의 길을 놓고 자신의 길을 추구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적성은 음악이고, 누군가의 적성은 미용일 수도 있죠. 하지만 공부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학생들은 대개 저와 같은 동네 출신,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런 애들은, 애초에 집안의 누구도 그 애의 학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그 애들 자신도 공부하며 사는 삶 자체를 우스운 얘기인 것처럼 여기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직업의 귀천을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런 직업을 택하는 게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라, 모두가 입시 공부만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왜 빈곤층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저임금 업종으로 자신의 길을 택하게 되고 중산층 학생들은 학업성적이 부진해도 끝끝내 인문계와 대학 진학을 택하고 마는지를, 왜 우리는 그 반대는 의문시하면서 이대로는 당연하단 듯 받아들이고 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걸 정말 선택이라고 말해도 될까. 양쪽 모두, 그냥 암묵적으로나 명시적으로나 강요 받고 체념한 결과는 아닐까.


    잘 사는 사람들은 잘 사는 동네의 좋은 아파트, 좋은 학군에서 비슷한 소득 수준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린다. 못 사는 사람들은 낙후된 동네의 그다지 좋지 못한 학군에서 매일 옆집에서 소주병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산다. 누구는 사촌 오빠가 서울대에 갔다느니 의대에 가느니 유학 가느니 소리를 들으며 비교 당하고 살지만, 누구는 고등학교 졸업도 못한 아는 언니가 임신했다는 소리, 우리 형이 일진이니까 니네 다 깝치지 말라는 소리, 쟤가 언니들한테 돈 상납을 못해서 얻어 터졌다는 소리를 들으며 산다.


    롤모델의 결여, 정보의 격차, 학업에 무신경하거나 적극적으로 자녀의 앞길을 막아버리는 집안 분위기. 그런 이유로 대학에 가고/가지 않고, "높은" 대학에 가고 아무 대학에나 가는 것이 어느 순간 반쯤 강제되어 버리곤 하는데, 이걸 그냥 노력과 재능의 문제로 치부해도 될까. 어쨌거나 공교육은 누구에게나 제공되며 누구나 꿈은 가질 수 있는데 그저 그들이 그런 것을 꿈꾸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런 애들은 소질이 그런 데 있을 뿐이라고 말해도 될까. 한둘쯤 있기 마련인 "개천룡"을 핑계 삼아 이런 기회의 불균형을 넘겨도 될까.


    중학교에 진학한 후부터 내가 느낀 위화감은 그런 것들이었다. 그렇게 인문계와 전문계, 인문계 내에서도 탑 랭크와 하위 랭크의 사람들이 거주지와 진학수준에 따라 서로로부터 유리된 까닭에 누구는 "나 정도면 금수저는 아니지 저 위엔 어나더 클래스가 있다구요," "저는 10분위고 집안에 돈이 없어요 그거 다 빚인데"하고 더 위쪽을 바라보는 반면, 그들을 금수저라 생각하는 누군가는 "나 정도면 흙수저까진 아니지. 이 동네에 나보다 못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고 그들이 굴러 떨어질지도 모르는 아래를 보며 위안 삼는다는 것. 누구나 자신의 위치를 축으로 삼아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인데, 그 자리의 평균치라는 게 그렇게나 상이하다는 것.


    우리의 공감의 지평이 이렇게 좁아져버려도 괜찮냐고, 묻고 싶었다.


    우리 앞에 보이는 균일한 정상성을 가진 현실이, 정말로 균일하고 정말로 정상적이지는 않다고.

    그리고 당장 이 자리에도 그 가장된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다고도. 말하고 싶었다.





언젠가 어디선가 지나가다 학교 안에서 발견한 석호 /  몇 주 전 오후의 캠퍼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 글로 쓴다면 또 모를까, 사람과 얼굴을 맞댄 자리에서 내게 수치스럽거나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건 어쩐지 어색하고 괴롭고 버겁다. 동정이 돌아오는 것도 무관심이 돌아오는 것도 그 외의 어떤 반응도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발표에서 나는 나의 이야기를 썼다.


(...) 고작 700원인 버스비가 없어 야자를 마치고는 매일 한 시간씩 걸어서 집에 돌아오며, 집에는 늘 술에 취한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성적과 낮은 소득 덕에 장학금을 여러 곳에서 받고 있지만, 그건 고스란히 집안 생활비로 나갑니다. 집에서 싸움이 벌어지거나 빚 독촉장이 날아올 때는 자신의 미래가 불안하게만 느껴져 공부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만약 A가 한때 지망했던 외고나 자사고 같은, 입학 전 사교육이 당연시되는 학교를 다녔다면 과연 이 내신의 반의 반이나마 얻을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A는 그런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내신 점수를 따냅니다. 하지만 그 애가 다니는 학교는 인서울 합격자를 배출해본 기억이 아득한 수준으로, 선생님들도 입시 정보를 그리 잘 알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모의고사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A는 서연고서성한…으로 시작하는 대학 서열부터 시작해 각 입학 전형까지, 모든 정보를 혼자 알아내야 합니다. 대학 입학 원서를 넣을 때엔 돈이 문제가 됩니다. 전형료도 아까워서 손이 덜덜 떨리는데, A가 사는 지방에서 서울로 면접을 보러 가려면 아무리 돈을 아껴도 회당 15만원은 기본으로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당장 교통비 마련부터 막막한 A는 자신에게 유리한 전형보다는 돈을 아낄 수 있는 전형을 위주로 지원서를 넣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가정환경은 A의 진로선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A는 한번도 변호사나 의사 같은 직업을 자신의 미래로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지, 된다면 어떤 일을 하는지, 그런 정보들은 찾아보면 분명 어딘가에는 나왔겠지만 그 애에게 그런 직업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주위 어른 중에는 제대로 돈을 벌어 사는 사람조차 드무니, A는 자신이 의사나 변호사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합니다. 남들이 추천하는 안정적인 일자리인 공무원, 교사도 엄두 내지 않습니다.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몇 년 간 시험에만 매진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A에게 실패란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당장 다음 달의 생존을 걱정하게 만드는 위기입니다.

A는 다행히도, 입시에서는 성공을 거둬, 나름 대한민국 탑에 가까운 ㅇㅇ대학교에 입학합니다. 신이 나서 대학생활을 즐기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째서인지 친구 세 명 중 한 명은 꼭 외고 출신이곤 합니다. 서울 출신도 많아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울말이 입에 익습니다. A가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집세나 식비 같은 생활비를 충당한다고 하면, 친구들은 놀란 표정으로 왜냐고 묻거나, 촉촉한 눈으로 A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말해서 분위기를 숙연해지게 만듭니다. A는 새삼 주위 친구들에게서 거리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딱히 불쌍한 이야기도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그러리라고 순진하게 믿기에는 이 대학에 들어온 후 내가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생활비를 직접 번다는 이유만으로 받은 동정이 너무도 많았다). 감정에만 호소하고 싶지 않아서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가명을 썼고, 그런 일이 어디 있어, 드라마 쓰네,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까봐 발표 끝에 A가 나임을 굳이 밝히기도 했다.


    약간의 쾌감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하, 니넨 몰랐지! 니네들은 니네가 안전하게 살아왔다는 것조차 몰랐지! (그런 나도 아버지가 남긴 보험금과 국가가 제공하는 생활급여, 각종 단체가 지급하는 장학금으로 보호받았지만...) 그런 마음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일단은, 그냥 말해주고 싶었다. 이런 게 봉준호 감독의 영화 속에나 있을 법한, 아니면 무슨 인간극장이나 다큐멘터리나 지식채널e에만 나오는 일이 아니라 당장 당신의 눈앞에 있는 나부터가 그런 사람이라고. 그리고 나의 경험 또한 특별한 것이 아니며 다만 여기 이곳의 우리가 느끼는 '평범'의 기준선이라는 게 너무도 협소하게 그여있을 뿐이라고. 늘 마주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사연 한둘 없는 사람 어디 없겠느냐고, 그냥 개인의 역사에서 튕겨나와 꼬질한 행인1로 스쳐지나갔을 뿐이지, 인지하지 않았을 뿐이지 다 존재한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들이었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조건이 아주 조금이라도 어긋났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있지 못했을 것임을 압니다. 제가 장녀였다면, 제 언니처럼 저는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을 것입니다. 어중간하게 공부를 잘했다면 어중간한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쯤 상고를 졸업하고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겠죠. 운 좋게 내신 성적을 따기 쉬운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면 수시로 이곳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운 좋게 ㅇ대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외부장학금을 타기 더 어려웠을 테니, 어쩌면 대학 진학을 다시 고려해봤을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가진 'ㅇ대’라는 타이틀은 앞으로 우리의 인생에 큰, 그것도 대체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학벌을 얻는 과정은 누군가에게는 쉽고, 누군가에게는 어렵습니다. 모두가 죽도록 노력해서 대학에 오지만, 그리고 그 노력의 양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흔히 말하는 “대치동, 목동, 외고”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노력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공교육은 모두에게 같은 교육과정을 제공하지만, 그 교육을 받는 이의 환경까지 섬세하게 고려해주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평등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한발 더 나아가, 학벌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이 현실을, 흔히 생각하듯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준비해온 발표가 끝난 뒤 나는 예상했던 것처럼 슬퍼졌다. 그러니까 내 이야기가 그 어떤 인상도 남기지 않을지도 모르며, 수업을 듣는 사람 중 누군가는 "아 존나 말 길게 하네"라든지, "감정팔이 오진다," "왜 이렇게 TMI 남발하지 자의식 과잉인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아니 수업을 듣는 서른 네 명의 학생 중 몇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예상했다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수치심은 아니었다. 누군가 한 명 정도는 발표를 귀담아 듣기라도 했을까,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결과를 가져올 이야기를 위해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멋지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창피했다. 나도 평소에 발표를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아닌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왜인지 다리가 덜덜 떨렸고 목소리도 사정없이 갈라졌고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말은 자꾸 더듬고 버벅거렸다. 얼른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에 랩을 하듯이 말이 빨라졌다. 그렇게 초라한 발표를 했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하고 싶지 않던 이야기를 이렇게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발표한 거지. 애초에 이런 걸 나는 왜 하려 한 거지. 그냥 아무 주제나 맡아서 대충 발표하고 말 것이지 왜 굳이 내 상처를 드러내고 보여준 거지.


    나를 더욱 서럽게 한 것은 내 뒤에 이어진 다른 학생들의 발표였다. 내 다음으로 강단에 선 3명의 학생은 예외 없이, "저는 외고라 제 주변에는 그런 학생들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저도 외고를 나와서... 그런데 주위에 이런 친구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저도 외곤데..."로 시작하는 발표를 조금도 떨지 않고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서 끝냈다.


    아, 나도 저러고 싶었는데.

    나도 저렇게, 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참 불공평하지 않냐고. 어쩌면 우리가 무관심했을 뿐이지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남의 이야기처럼, 아니 남의 이야기로나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나는 그 태연함이,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너무도, 치가 떨리게 부러웠다.






    발표가 끝나고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한참을 집중하지 못하다가 잠시 나가서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짧게 울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그날은 그래야 했다. 저들 가운데 끼어 있는 내가 불쌍했고, 치졸하게도 다른 수강생들에게 열등감을, 그리고 자기연민을 느끼고 마는 내가 수치스러웠다.






    수업이 끝나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위로는 받고 싶은 마음에 친구들에게 몇 번 그때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꼭 붙잡은 손과 날 안아주는 어깨에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문득 그 애들이 돌아갈 집을 생각하곤 했다. 중산층이 많이 사는 깨끗한 동네의 주택 또는 아파트, 거실에는 TV와 소파가 있고 카펫이 깔려 있고, 저녁이면 둘러 앉아 갓 지은 밥을 먹겠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 자리에 함께 있을 테고, 힘든 일이 있으면 밥상머리에서 슬쩍 말을 흘릴 수도 있을 거야. 애정 넘치는 따뜻한 가정은 아니더라도 뼈저리게 혼자인 순간은 많지 않을 테지. 집주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혹은 자취방 싱크대 물이 역류할 때 한밤중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거야.


    "대학일기" 속 가정만큼 친밀하진 않더라도 기댈 수는 있는, 그런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온 애들이 풍기는 아늑하고 안온한 공기. 그러니까 오랫동안 내가 가져보지 못한 안정감. 나는 그런 것에 위로 받고 그런 것에 또 슬퍼지곤 했다.


    내가 위로 받은 친구,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친구들조차도, 그들의 가족이 겪었던 그 모든 시련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낀 것과 같은 수치심은 느끼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 내가 들려준 이야기로 나의 삶을 추측하고 공감해보려 노력할 수는 있어도, 내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것. 그러니 나의 일반화되지 못한 설움에는 언제나 자세한 설명이 따라붙어야 한다는 것. 설명 없이는 내가 느끼는 이 기분이 무엇인지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언어화하지 못한 슬픔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했다.


    나는 왜 항상 해명하고 설명해야 하는 사람일까.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절대적인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설명이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순진무구한 "왜?" 라는 물음엔 답할 말이 없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을 뿐인데, 그 어쩔 수 없었던 것들에 따라붙는 질문에 해명하고 설명하고 나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피곤하다. 공감받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는 기분이 지긋지긋하고, 그런 처지를 핑계삼아 죄 없는 타인을 질투하고 못내 자기연민을 느끼고 마는 나 역시 싫어진다.






몇 달 전 비 오는 날엔 혼자 산책을 나갔다. 닫힌 적 없는 창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그 발표로부터 대략 2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나의 경험을 멋있게 이야기할 줄 모른다. 나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한꺼번에 밀려오는 수많은 생각과 기억들 때문에, 무엇보다 시간관계로는 떨어진 모든 사건이 때로는 밀접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촘촘한 인과관계를 구성하며 모든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경험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한번에 조리있게 말할 수는 없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떠올리는 모든 기억 하나하나, 한 순간 한 순간이 내게 너무도 아픈 탓에. 나는 성급하게 단어 몇 개를 입 밖에 내었다가 그냥 그랬어, 하고 얼버무리며 대뜸 입을 꾹 닫아버리고 만다.


    나는 아직도 이런 글을 쓴 다음이면 너무 창피해져서 몇 주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런 수치심을 어떻게 감내하고 살아야 하지.


    




    그렇지만 내가 이야기를 멈추고 입을 닫아버릴 때 괜찮아? 하고 물으며 손을 잡아주고 무슨 일이 있었어?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하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 내가 언젠가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 때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털어놓은 것 없이도 괜찮아진 마음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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